[명사칼럼]열정의 '기업가정신'은 어디로 갔을까?

머니투데이 윤용로 외환은행장  | 2013.11.06 06:00
윤용로 외환은행장 /사진제공=외환은행
1980년대 중반 유학시절에 보았던 영화 한 편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역전’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는데 원래 제목은 ‘거래하는 곳들(Trading Places)’이라는 영화였다.

증권거래소의 큰 손인 듀크 형제는 엘리트 백인인 증권회사 사장과 거리의 흑인 노숙자가 각각의 타고난 본성으로 인해 사장과 걸인이 된 것인지, 아니면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 논쟁을 벌이다 단돈 1달러를 걸고 내기를 하게 된다. 두 형제는 계략을 써서 사장과 걸인의 자리를 바꾸어 놓았고, 졸지에 걸인이 된 사장과 갑자기 사장이 된 걸인은 처음에 변화한 환경에 당황하다가 서서히 적응해 나간다. 결국은 환경의 중요성에 베팅을 한 사람이 이기게 된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였다.

영화의 제목이 복수인 ‘곳들(Places)’로 쓰인 것은 거래소가 주식을 거래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듀크 형제가 두 사람의 직업과 인생을 맞바꾼 곳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 속의 주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진 의문이기도 하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도 상황에 따른 대처가 다른 것을 보면 ‘본성’의 역할이 큰 것 같다. 반면, 같은 본성을 가졌을 쌍둥이도 어릴 때 헤어져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 아주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이처럼 필자가 볼 때 ‘본성’과 ‘환경’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럼 사람들의 집합체인 국가는 어떠할 것인가? 개개인의 ‘본성’의 집합이 ‘국민성’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그 국민의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이며, 그 국민이 살고 있는 ‘환경’은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을까?

최근 업무 협의차 여러 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특히 체코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에는 경영환경을 설명할 때 사회주의 시대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는 국가적 특성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필리핀과 브라질 등을 갔을 때에는 과거 식민시대의 유산을 특성으로 얘기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국가는 비록 흥망성쇠를 겪을지라도 그 땅에 사는 민족들은 변함없이 그 곳을 지켜왔다. 그런데 이처럼 시간적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짧은 근년의 그런 체제(사회주의·식민지)가 왜 현재 그들의 삶을 더욱 크게 지배하고 있는가?

우리의 경우를 보자. 많은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새로운 국가로 독립을 했지만, 우리나라는 그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으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로 발전하였다. 이런 「기적」에는 분명히 우리 민족 특유의 열정적 ‘본성’이 커다랗게 작용을 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런 우리 민족이기에 최근 ‘기업가정신’이 많이 쇠퇴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으면 의문을 갖게 된다. 또한 우리 젊은이들이 정부와 공기업, 대기업 등 ‘안정성’ 위주의 취업을 추구하는 경향이 대세인 것을 보게 되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경제발전 초기의 이병철, 정주영 등 엄청난 열정을 가진 기업가들과 열사의 현장과 힘든 작업환경에서도 온 몸을 바쳐 일한 우리의 선배 세대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분명히 우리 젊은이들도 기성세대들과 같은 우리 민족의 열정적 ‘본성’을 갖고 있을 텐데, 한 세대 만에 이렇게 ‘추구하는 삶’이 변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단언컨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분명 기성세대와 같은 우리 민족 고유의 열정적 ‘본성’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분출할 수 있는 여러 ‘환경’이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그들의 밑바닥에 움츠리고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환경에는 교육과 제도,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감춰져있는 열정적 ‘본성’을 깨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저성장 시대로의 전환을 막기 위해, 바로 지금 그 해답을 찾는데 우리 모두가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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