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거품론에 거품은 없을까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 2013.11.01 11:23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43>

거품이 무서운 것은 터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 차례 거품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끔찍한 후유증이 뒤따르지만, 뜨거운 붐이 불고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거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미국 주식시장의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늘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거품의 후유증을 미리 조심하라는 경고인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다우존스 지수 등 주요 지수에 대한 경계감이라고 이해하면 제일 무난하겠지만, 연방준비제도(Fed)의 출구전략에 사전 대비책을 마련하라는 주문일 수도 있고, 또 공매도에 베팅한 숏셀러(short-seller)들의 겁주기 예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든 거품은 비유적인 표현일 뿐 엄격한 의미에서 경제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를 쓴 찰스 킨들버거의 표현을 빌자면 “거품은 경기순환의 광기 국면에서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범주적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거품이 발생하면 투자자들은 주식이 됐든 부동산이 됐든 그 자산을 보유하는 데서 얻는 수익 때문이 아니라 그 주식이나 부동산을 다른 누군가에게 더 높은 값으로 팔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사들인다. 대다수 투자자들이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매수하려고 안달을 하고, 너도나도 미친 듯이 사들이다 보니 거래량도 폭발해 사회 전반의 분위기마저 흥청거린다. 그렇게 해서 거품은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이다.

거품이 잔뜩 낀 비싼 값으로 주식이나 부동산을 매수한 투자자는 반드시 더 대단한 바보(the greater fool)가 나타나 더 비싼 값에 매수할 것이라고 믿는데, 이 같은 가격 상승세가 멈추는 순간 거품은 종말을 맞고 급격한 가격 하락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처럼 거품이라는 용어 자체가 기본적으로 눈앞의 현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곧 터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거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에는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비합리적 성격을 보여준다.

킨들버거는 거품이 형성되기 위한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았는데, 첫째는 라디오나 인터넷 같은 혁신적인 신기술 개발 혹은 파생금융상품의 등장 같은 금융시장의 대변혁이다. 둘째는 신용 팽창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 셋째는 이전의 거품을 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 즉 적어도 한 세대는 지나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 이것을 미국 주식시장의 요즘 분위기와 비교해보자. Fed가 한 달에 850억 달러씩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으니 주식시장 주변의 자금은 넘쳐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거품의 핵심은 뭔가 새로운 변위요인, 즉 신기술이나 대변혁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꿈 같은 환상을 현실화해 줄 획기적인 계기가 있어야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기시장으로 몰려들어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저 주식시장에 돈이 모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거품을 기억하고 있다. 닷컴 붐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0년 초의 첨단 기술주 붐은 지금도 많은 투자자들에게 아픈 상처로 남아있고, 나스닥 지수는 그때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에 비해 아직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됐던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여전히 그 여진이 가시지 않고 있다.

거품의 특징은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했다. 서양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는데, 불에 한 번 데어본 아이는 불을 조심한다(A burnt child dreads the fire.)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이상 과열과 단기 급등은 경계해야 마땅하겠지만 그럴수록 거품의 형성 요인부터 잘 따져봐야 한다. 카산드라의 예언 같은 거품론에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거품이 아니라 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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