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소리… 콜센터女 전화 끊었다가 '혼쭐'

머니투데이 이슈팀 방윤영 기자, 이시내 기자 | 2013.10.29 06:20

[두번 죽는 성추행 피해자 ②] 고객에 성희롱 당하는 여성들

서울시 120다산콜센터 직원(위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함) /news1=조현정 기자


# 파견업체 소속 요양보호사 A씨(65·여)는 지난해초 자신이 간병하는 남자 환자에게 강제로 끌어안기는 등 수차례 성희롱을 당했다. A씨는 환자를 돌보는 7개월 동안 언어적, 육체적 성희롱을 견뎌야 했다. 자신을 고용한 용역업체에 이 같은 사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만뒀다. 재계약에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서다.

# 보험설계사 B씨(33·여)는 지난해말 50대 남성 고객으로부터 "모텔로 가서 이야기하면 보험에 가입해주겠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주면 더 비싼 보험도 들겠다"는 말을 들었다. B씨는 지독한 수치심을 느꼈지만 "고객이라 화도 못 냈다. 보험설계사들은 고객이 전화를 하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적지 않은 수의 여성들이 자신의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고 있지만, 미비한 제도로 인해 좀처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성희롱 처벌·징계의 근거인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은 성희롱 피해자와 가해자를 '직장 내 근로자'에 한정하고 있다. 직장 상사, 동료 직원 등 근로자에게 성희롱을 당한 경우에만 재발 방지 약속 등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도 성희롱 가해자를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근로자'로만 한정하고 있다. 가해자가 고객인 경우에는 법 적용이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07년 12월 '남녀고용평등법'에 '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 방지'(제14조 2항) 조항이 신설됐다. 이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가 성희롱 피해를 입었을 때 근무장소 변경, 배치 전환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의무'가 아니며 '사업주가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 사항으로만 명시돼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고객에게 성희롱을 당할 경우 이에 대한 대응을 전적으로 '사업자'의 재량에 맡기고 있어 실제로 지켜지는지는 알 수 없다"며 "성적 착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가 사용주의 아량에 달려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직원이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하려는 사업주는 많지 않다. 대리운전 콜센터 직원 C씨(26·여)는 지난 9월 술취한 고객으로부터 이상한 신음소리를 듣고 놀라 전화를 끊었다. 이에 콜센터 사장은 "장사 말아먹을 일 있느냐.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를 먼저 끊으면 안 된다"고 호통을 쳤다. 이후 C씨는 거의 매일 이를 악물고 성희롱 전화를 견뎌야 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상담사례집'에 따르면 지난해 '고객에 의한 성희롱' 상담은 전체 상담 건수 가운데 9.2%를 차지했다. 집계가 시작된 2009년 이후 꾸준히 10% 안팎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송은정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부장은 '고객에 의한 성희롱'에 대해 "제도적으로 무방비 상태"라며 "여성 노동자에게 '인내'를 강요하는 등 현실적인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가해 고객에 대해 서비스 이용에 제한을 주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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