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은 원조벤처, '죽음의 계곡' 넘은 방법은?

머니투데이 이하늘 기자, 강경래 기자, 배소진 기자 | 2013.10.11 05:37

[창조경제 벤처시대<2부>]수차례 위기 넘어선 1세대 벤처, 글로벌·사업다각로 지속성장 준비

편집자주 | 1990년대 중반 이후 불어온 인터넷 벤처 열풍에 이어 10여년 만에 젊은 창업가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스마트모바일 시대를 맞아 열정과 창의력, 역량을 갖춘 청년들이 창업에 속속 나서고 있다. 정부도 이런 시장에 호응해 '창조경제'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며 청년창업 지원에 나섰다. 창업지원 정책이 '창업기업 확대-고용창출-중기업으로 성장' 등 생태계 조성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10여년전 정부가 추진한 벤처 정책에서 범한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달라져야할 것은 없을까. 본지는 특별기획을 통해 창조경제의 주역이 될 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점검한다. 이미 벤처로서 성공한 기업들의 성장과정 분석과 미국 실리콘밸리 및 독일, 이스라엘 등 다른 나라의 벤처산업 현황을 함께 고찰해 벤처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갖기 위해 갖춰야할 요소가 무엇인지도 살펴본다.

1998년 벤처붐 시대. 수많은 창업자들이 대박의 꿈을 찾아 '골드러시'에 나섰다. 정부는 IMF이후 청년일자리 창출 및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벤처산업 진흥에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정부의 자금지원이 쏟아졌고, 민간자금 역시 넘쳤다. 특히 상호에 '닷컴'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투자자금이 쏟아졌다. '눈먼 돈'이 넘치면서 벤처버블도 이어졌다. 내실이 없는 기업들도 수십억 단위의 자금을 쉽사리 확보할 수 있었다. 한때 벤처기업가는 결혼정보업체 조사에서 전문직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1990년대 벤처기업을 창립한 한 벤처 인사는 "홍보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투자자금 확보가 쉬웠기 때문에 내실을 다지기 보다는 당장 회사 이름을 알리고, 정부자금을 운용하는 투자자들과 친분을 갖기 위해 하루에도 2~3차례씩 유흥업소를 전전한 벤처 창업자들도 많았다"며 "이들 가운데 절대다수는 모두 시간이 지난 뒤 실패를 경험했지만 당시 정부자금 가운데 상다수가 기술개발이 아닌 이들 사업주들의 '먹튀'에 유용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자금은 풀렸지만 실제로 벤처사업을 묵묵히 진행하던 기업들은 오히려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이들 '먹튀' 벤처들로 인한 거품이 하루아침에 빠지면서 건실한 기업들마저 돈줄이 막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골드러시'를 꿈꾸던 벤처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빠지고 말았다. 창업 후 아이디어 창출이나 기술개발에 성공했지만 사업화를 위한 자금조달 실패 등으로 도산하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움을 뚫고 현재까지 살아남아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이들 역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고비를 만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을 겪었고, 이를 극복했다.

물론 이들 가운데 여전히 '피터팬 콤플렉스'에 빠져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답보상태를 거듭하는 곳도 상당수다.

◇ 1세대 벤처에 찾아온 '죽음의 계곡'=1989년 5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창립한 휴맥스는 한국 벤처의 효시 격이다. 하지만 휴맥스는 탄생 순간부터 쉽지 않았다. 창업 당시 변대규 휴맥스 대표는 대학 졸업 직후 회사를 차리겠다고 5000만원짜리 보증서를 신청하기 위해 기술신용보증기금을 찾았다. 하지만 하숙생인 변 대표는 흔한 등기부등본 조차 없었다.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연대보증과 담보의 벽은 창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것.

다행히도 휴맥스는 한우물 경영을 통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창업 초기 노래방기기 사업에 주력했지만 디지털방송 전환에 발맞춰 셋톱박스 사업에 뛰어들면서 500억원대의 매출은 2000년 1400억원으로 급증했고, 2001년 3000억원을 넘어섰다.

국내 대표 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은 1995년 창립 이후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1999년 상 최고 공모가인 3만6000원을 기록하며 코스닥 시장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하지만 2001년 최대 반도체장비 공급처였던 삼성과 거래가 중단되면서 이후 3년 동안 누적적자가 3000억원에 달했다. LCD장비 기업으로 발 빠른 체질전환에 나섰고, 기술력을 인정받아 LG디스플레이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2004년 매출도 16600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한국 인터넷 대표기업인 네이버 역시 숱한 위기를 겪었다. 1999년 삼성SDS에서 독립한 네이버는 당시 국내외 선발 검색포털 서비스에 밀려 만년 5위에 익숙한 군소 서비스였다. 검색기술력을 자부했지만 이미 다른 포털 서비스에 익숙한 이용자들을 네이버로 끌어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네이버는 2000년 4월 100만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한게임과의 합병을 결정했다. 하루에도 10만명씩 가입자가 급증하던 한게임과 투자자금 여력 및 검색.포털 기술력을 갖춘 네이버의 결합은 결국 대한민국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의 진화의 발판이 됐다.


한때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실적이 미미한 기업들도 있다. 네트워크 통신장비 개발 기업인 다산네트웍스는 1993년 창립 이후 2007년까지 고속성장을 하며 연매출 2000억원 이상의 성장을 눈앞에 뒀지만 이후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1997년 다산은 IMF로 부채가 한달만에 8억원이던 부채가 한 달 만에 18억원이 됐다. 하지만 미국 마이크로텍 VRTX고도화 프로젝트 참여 및 정통부 지원 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 인큐베이터 센터에 입주해 SW판매로 매출을 올리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지난해 1226억9700만원, 올 상반기 584억3600만원의 매출을 거두는데 머물렀다.

안랩 역시 '이름값'에 비해 다소 뒤처지는 성과를 냈다. IMF 당시 적자로 직원 월급도 못 줄 형편이었다. 글로벌 보안기업인 맥아피의 인수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무차입 경영과 R&D에 집중하던 안랩은 바로 이어진 정부의 벤처지원과 코스닥 열풍 덕에 살아남았다. 국내시장 비중이 과도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난해 안랩의 해외매출은 86억8200만원으로 전체 매출의 6.59%에 그쳤다. 지난해 연결기준 1317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국내 보안기업 최초로 매출 1000억원 돌파를 했지만 아쉬울 수밖에 없다.

닷컴벤처의 맏형 격이었던 새롬기술의 몰락도 뼈아프다. 새롬기술은 한때 시가총액이 5조원을 넘어서는 국내 최고 벤처기업이었다. 새롬기술은 네이버와 다음에 투자를 진행하고 인수합병까지 노렸다. 하지만 기대를 모은 인터넷전화 서비스 다이얼패드가 기술부족 및 당시 인터넷망 미비로 부진한데다 경영권 분쟁 및 뒤늦게 발각된 창업자의 분식회계로 인해 무너졌다. 새롬기술의 후신인 솔본은 현재 시가총액이 1000억원을 겨우 넘어선다.

◇ 두번째 위기 '캐즘'을 넘어라='죽음의 계곡'에서 살아남은 이들 기업에게도 또다른 고비가 있었다.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서비스의 활성화 단계에서 다수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하거나 시장상황 및 글로벌 경기의 변화에 따라 존폐 위기에 직면했다.

휴맥스는 2005년 디지털TV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대기업의 벽에 막혀 고전했다. 2010년까지 사업을 이어갔지만 결국 휴맥스는 결국 철수했다. 다행히도 고화질(HD) 방송 전환 등 셋톱박스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가 발생해 휴맥스는 2010년 이후 1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이어가고 있다. 휴맥스는 이어 자동차 전자장치(전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분야에서 기술력과 유통망, 노하우를 갖춘 대우아이에스의 경영권도 획득했다. 2015년 목표는 셋톱시장 1조8000억원, 자동차 시장 5000억원 등 총 2조3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것이다.

주성 역시 지난해 반도체와 LCD, 태양광 등 주력하는 모든 장비분야가 동반 침체를 겪으면서 전체 인력의 40% 가까이를 구조조정했다. 순손실은 무려 1146억원,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은 200%에 달했다. 다만 올해 들어 부활의 신호가 미력하나마 시작됐다. 지난 2분기 2011년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7분기 동안 이어진 적자에서 벗어난 것. 특히 반도체·LCD·태양광에 이어 광다이오드(LE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비 등 차세대 신시장을 개척했다. 특히 불황으로 해외 경쟁사들이 R&D에 주춤하는 동안 체력을 길러 기존 반도체·LCD에서는 대등한, 신규산업에서는 오히려 이들을 앞서는 기술력을 갖췄다.

다산네트웍스는 계열사 포함 3000억원에 불과한 연매출을 2018년 1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2011년 그룹웨어와 업무프로세스관리(BPM) 국내 1위 핸디소프트를 인수했고, 자동차 부품업체 동명통산(현 디엠씨)을 인수했다. 판도라TV와의 합작사 '팬더미디어'도 설립하며 점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기존 셋톱박스 역시 SK브로드밴드와의 공급계약 및 다변화된 해외공급에 힘입어 4분기 실적개선을 앞두고 있다.

안랩은 해외진출에 사운을 걸었다. 국내시장에 안주해서는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안랩은 2015년까지 해외매출 비중을 3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이미 제품 라이선스 유통과 판매 위주의 사업으로 실패를 맛본 일본에서는 보안관제 및 모바일 보안으로 전환,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에서도 APT 대응 솔루션이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대형유통업체와의 V3클릭 등 보안솔루션 공급이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

네이버는 수차례 상장심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상장요건을 충족했다는 평가였지만 벤처버블로 인한 편견에 시달린 끝에 2002년 10월 가까스로 상장에 성공했다. 최근 네이버는 일본을 필두로 한 글로벌 시장에서 '라인'사업 성공을 거두며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했다. 10년 이상 적자를 감수하고 일본 진출에 매진한 결과다. 1단계 성장의 파트너였던 한게임과 분사, 규제 리스크 분산도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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