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바바리맨의 기억

머니투데이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 | 2013.10.08 06:00
허리 꼿꼿한 초로의 바바리맨이 빌딩 앞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가볍게 미소 짓는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축. 창업 25주년’이라는 현수막. “다음은 최운 예비역 장군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축사를 하기 위해 일어선 사람, 빌딩 앞 그 바바리맨이다.

축사를 위해 그가 바바리를 벗자 너무도 정갈한 군인 예복과 휘장이 눈길을 끈다. 여기까지 보면 기업의 일반적인 기념행사 모습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날의 바바리맨 최운 장군과 그를 VIP로 초대한 50대 중반의 오승훈 회장 이야기는 두 사람의 우정을 넘어 우리의 현대사를 품고 있다.

살을 에는 추위와 싸우며 전방부대 보초 근무중인 오승훈 일병. 그깟 추위는 살아온 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먹을 것을 찾아 집 부근의 미군 부대 철조망 아래를 들락거렸다. 운이 좋다면 떨어진 초콜릿도 주울 수 있겠지만 적어도 동네에는 아예 씨가 말라버린 쑥이나 나물들을 뜯어 집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그날만큼은 허기 속에서 잠을 설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나도 어른이 되었네”라고 생각하며 미소 짓는데, 정적을 깨는 묵직한 소리. “오승훈 일병, 춥지 않나?”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이마엔 말똥 두 개, 감히 눈조차 마주치기 힘든 대대장이다. 그가 한낱 사병 나부랭이인 내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간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그날 이후로 일병 오승훈은 마음 먹는다 “저 사람을 평생 기억하며 살리라.”

부하들로부터 참군인으로 존경 받았던 최운 중령은 장군으로 예편하였고, 가난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오승훈 병장은 맨손 창업 25년 만에 5개 계열사의 회장이 되었으며, 그렇게 치열한 극복의 역사를 기념하는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자신의 축하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지 고민하던 최장군이 내린 결론은 평생의 명예이자, 작고하신 부친의 자랑거리였던 군인 예복을 입는 것이었고 결국 바바리맨의 모습으로 기념식장에 나타난 것이었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경험했던 한 시골 노인, 그의 바람에 따라 육사에 진학한 후 군인으로서 평생을 나라에 헌신한 아들 최운 장군, 그리고 지독한 가난을 이겨낸 오승훈 병장. 그날 바바리맨의 기억 속에는 국권상실·전쟁과 가난·산업화·현대화에 이르는 우리의 지난 100년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요즘 역사 교육의 필요성에 관한 문제, 그리고 어떠한 역사교과서여야 하느냐의 문제에 관해 말들이 많다. 청년=진보, 기성세대=보수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보니 애 어른 할 것 없이 인터넷으로 논쟁하고 대립하다 현피(오프라인에서 만나 대결하는 것)하며 목숨까지 잃는다. 격한 용어가 오가는 논쟁에는 과거에 대한 진정한 평가와 미래를 위한 성찰은 없다. 진영논리가 득세하고, “그런 주장을 하니 너는 그런 놈”이라는 동일화의 언어 폭력 앞에 존엄해야 할 개별의 삶과 가치는 속절없이 무너져 버린다.


불가피해 보였던 시대적 소명과 극복의 성과마저 폄훼하는 진보의 주장에 우리의 자존감은 무너지며, 미래를 향한 진보적 성찰 앞에 “이만큼 잘 살게 된 게 누구 덕인데” “나 때는 이 보다 더 한 것도 견뎌냈어”라는 보수의 일갈은 참으로 무망하며 무용하다.

사실 치열한 논쟁은 최선의 결과를 위한 과정이며 그 자체가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과거에 대한 이해와 존경, 그리고 화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언젠가 들은 얘기인데, 이스라엘 청년들은 사우나에서 살에 검은 반점이 많은 노인들을 보면 목례를 한다고 한다. 지나친 노동이 만들어 내는 피부의 검은 반점에 목례하는 것이다. “당신들로 인해 오늘의 나와 이스라엘이 있다”는 감사의 표시라는 게다. 그러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에 논리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우리는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겠다”는 수형번호 264번, 이육사의 절규를 기억해야 하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젊음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전장에서 산화한 젊은 병사들이 죽음으로 지켜 낸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또, 자식에게만큼은 가난을 대물림 않겠다고 이 꽉 물고 살아온 산업화 세대의 곤궁했던 삶에 머리 숙여야 하며, 독재의 광기에 굴하지 않고 죽음으로 저항한 광주시민과 민주화 세대의 용기에 가슴 따뜻한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 역사를 향한 우리의 첫 마음은 그러해야 한다.

과거와 화해하고 미래를 향해 치열하게 성찰하는 이러한 어른들의 마음이 젊은 세대에게 역사에 대한 당당함과 자긍심으로 흘러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공부의 시작이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 것이다. 어른들의 생각과 자세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본받아야 할 역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많은 논쟁들 속에서도, 나라 지키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온 보수주의자 최장군이 지긋한 미소로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는 건, 지독히도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국가로부터 도움 받은 거 없어 보이는 오승훈 회장의 주택 2층 테라스에 오늘도 변함없이 커다란 태극기가 펄럭이는 걸 보는 건 여전히 내가 당당한 극복의 역사와 미래의 희망을 보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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