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와 한 남자 인생을 바꾼 실리콘밸리 여행기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 2013.09.30 06:00

[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64> 인생을 바꾼 실리콘밸리 여행기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리스트 최나리씨, 박태웅 전 KTH 부사장 이야기

최나리(왼쪽) 실리콘밸리 엑스시드캐피탈의 벤처캐피탈리스트와 박태웅 전 KTH 부사장. /사진=유병률 기자
실리콘밸리에 있으면 각양각색 스토리의 사람들과 마주친다. 최근 만난 두 한국인 이야기이다. 한 사람은 젊은이들의 롤모델이, 또 한 사람은 중년들의 롤모델이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유명인사도 아니다. 어쩌면 평범한 쪽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그 스토리가 손에 잡히고, 기억에 남는다.

그 여자에게서는 처지에 주눅 들지 않는 것, 무리들의 경로를 따르지 않는 것, 욕망의 진행 경로를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 이 세 가지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느껴졌다. 한국의 지방에서 자라고 쭉 공부했던, 그 여자는 대학 때 2주간 경험했던 실리콘밸리 여행을 평생 있지 못했다. 서른넷이 되어 실리콘밸리로 다시 왔고 얼마 전, 백인들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의 투자가가 되었다.

쉰둘의 그 남자는 여러 벤처기업 사장, 부사장을 지냈다. 하지만 주인도 주주도 아니었다. 일을 내려놓은 뒤 공백과 불안이 엄습했고, 그러던 어느 날, 무작정 운동화 신고 유스호스텔과 모텔에 묵으며 3주간 실리콘밸리 여행에 나섰다. 20대들이 창업하는 데 기웃거리며 3주를 채운 날, 그는 "나는 중년이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다"며 귀국길에 올랐다. 남의 꿈이 아니라 내 꿈, 내 회사를 만들어보겠다면서 말이다.

#1. 그 여자의 여행 편-엑스시드(XSeed)캐피탈의 최나리 벤처캐피탈리스트

최나리(35)씨가 대학(부산대 컴퓨터공학과)을 다니던 때만 해도 해외연수를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90년대 말 IMF위기가 한창이었던 탓도 있었지만, 지방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최씨는 세계무대가 어떤 것인지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부모님에게 기댈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LG글로벌챌린저 프로그램과 학교의 해외탐방 프로젝트에 응모해, 두 번이나 해외를 다녔다. 1999년 2주간 여행을 왔던 곳이 바로 실리콘밸리.

"완전히 다른 세상 같더군요. (창업해서) 실패해도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는 곳. 꼭 한번 이런 곳에 와서 경험하고 싶었어요. 간절하게. 한국은 공부 잘하면 의대 가야하고, 좋은 대학 못 가면 인생이 끝난 것 같고, 가난해서 대학도 못 가면 진짜 인생이 끝나잖아요. 그게 틀렸음을 꼭 한번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실리콘밸리는 그렇게 최씨에게 가슴 두근거리는 숙제가 되었다.

졸업 무렵, 전국에서 단 한 명 뽑았다는 도로공사 5급 기술공무원에 합격했다. 집에서는 경사가 났다. 부모님은 본인들보다는 고생 덜 하면서 살기를 원했으니까. 하지만 실리콘밸리를 잊을 수 없었던 그는 도로공사 5급 대신 곧이어 붙은 삼성전자를 선택했다. 기술은 세계 공용이니까 언젠가 그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는 삼성의 5년, 10년 뒤 먹거리 기술을 발굴하는 CTO 전략실에서 10년을 일했다. 10년을 끝내고 나올 때까지 가장 막내였다. 사내 수많은 엔지니어들과 대화하고, 기술논문을 읽고, 비즈니스화까지 생각해야 하는 핵심 부서였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들을 만나면서 삼성에서밖에 일할 수 없는 사정들이 안타까웠어요. 그 뛰어난 기술로 자기회사 차리면 훌륭한 기업 만들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 하지만, 나가면 투자 받을 데도 없고, 나가서 잘 된 케이스도 없고, 실패하면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그런 벽들 밖에 안 보이는 거죠. 실리콘밸리처럼, 나가서 회사 차려서 키우면 일자리도 만들고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구조도 바꿀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최씨가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을 꾸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다. "회사 다니면서도 1999년 실리콘밸리의 기억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언젠가는 실리콘밸리 같은 환경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실업계고를 갈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 이런 친구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 일단 벤처투자가로서 성공사례를 만드는 것, 실리콘밸리의 허와 실을 보다 분명히 경험하는 것,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년째 되던 지난해 6월, 그는 사표를 던지고 실리콘밸리의 스탠포드대 1년 MBA(경영대학원)과정에 진학했다. 회사에서는 가고 싶으면 차라리 휴직을 하라고 했지만, 최씨에겐 당장 퇴직금이 필요했고, 다시 돌아갈 데가 있다는 핑계거리를 없애고 싶었다.

"뒤돌아보면 1년을 참 절박하게 산 것 같아요. 학업도 하면서, 일자리도 찾고, 스타트업(초기벤처) 이벤트에 끊임없이 다니며 사람들도 만났어요. 이제껏 모은 돈, 학비와 생활비로 다 들어갔고,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것에 아주 조금 다가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최씨는 지난 6월 졸업해 엑스시드라는 벤처캐피탈(VC)에 들어갔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곳 벤처생태계 핵심에 있는 미국계 VC이다. 백인 스탠포드대 출신들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이곳 VC에 드디어 입사하게 된 것. 삼성에서 기술전략업무를 했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최근에는 자신이 발굴한 스타트업에 투자도 했다.

최씨는 1999년 2주간 학교에서 보내준 실리콘밸리 여행이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많은 젊은이들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젊은 친구들이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정신을 경험하고, 가슴 두근거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더 독하게 도전할 수 있거든요. 직접 보게 되면, 꿈을 꾸게 되고, 꿈을 꾸면 믿게 됩니다. 그러면 길이 보이는 것이죠. 저처럼 말이죠."

#2. 그 남자의 여행 편-박태웅 전 KTH 부사장
박태웅(52) 전 KTH 부사장이 3주전 막 실리콘밸리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직접 스타트업 창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주 작았을 뿐"이었다. 비록 인티즌 사장, 안철수연구소 이사, 엠파스 부사장 등 벤처기업 두루두루 전문경영인을 해봤지만, 자신이 직접 창업을 한다는 것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업에 다섯 번이나 실패해서 친척집으로 도망 다녔죠. 그 기억이 트라우마였습니다. 창업은 굉장히 어렵고, 힘들고,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찔리는 게 있었는데, 스티브 잡스가 했던 '왜 남의 꿈을 꾸느냐?'는 질문이죠. 이 말만 나오면 제가 대답을 못하는 거에요."

그런데, 3주간의 실리콘밸리 여행은 평생 그를 사로잡았던 트라우마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그는 실리콘밸리 최대행사가운데 하나인 테크크런치 디스럽트를 찾아 실리콘밸리의 박진감 넘치는 창업문화를 느꼈고, 트위터 페이스북 넷플릭스 에버노트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았고, 한국 출신의 엔지니어들을 만났다. 그는 "내 일생의 바꿀 수 없는 소득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아, 저렇게 하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던 거죠. 와서 보니깐, 창업이 굉장히 즐거운 일이고, 빨리 하는 일이고, 일단 '워킹(working)'하는 것을 만들어 놓고 고쳐나가면 되는 일, 그런 거였어요. 뭐 저걸 가지고 창업하나, 저건 나도 할 수 있는데,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왜 내가 겁을 내지? 즐겁잖아? 내가 다 아는 일이고, 나는 더 잘 할 수 있는데, 자신감이 생겼죠. 트라우마에 종지부를 찍은 겁니다."

그는 "아이디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는 점도 실감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더 중요한 것이 '우리 삶에서 무엇이 불편한데?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건데?"라는 질문이라는 것이죠. 여기에 답할 수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2주째 어느 날 새너제이 모텔 방에서 순식간에 세가지 창업 아이템을 써 내려갔다. "내가 질문을 던지고 대답한 거죠. 뭐가 문제인데? 어떻게 해결할 건데? 그래서 어떤 건데? 라고 말이죠. 이런 식으로 만들어 가면 아이디어가 없어서 (창업을) 못하지는 않겠다 싶었죠. 다음 날 읽어봐도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실리콘밸리 창업이 어떤 건지, 듣고 읽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면서 문리(文理)가 트였다고 할까요!"

그는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을 보면서, 한국의 IT기업들도 다시 보였다"고 말했다. "크든 작든, 이곳 회사 CEO들은 매주 한번 씩 전 직원 모아놓고 터놓고 얘기하고 질문 받는다는 거예요. 이게 왜 좋은가 하면, CEO가 단련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거슬리는 질문을 받아봐야 클 수가 있어요. 쪼그라들면 안되죠. 그런데 한국 IT기업 1세대들은 어떻게 보면 20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어요. CEO들이 나서서 실리콘밸리와 네트워킹하고, 그걸 통해 후배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건 선배들 잘못입니다."

사실, 4년간 일했던 KTH를 나서면서, 앞으로의 공백과 새로운 일거리에 대한 불안감도 컸을 터. 훌훌 털고 실리콘밸리 여행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불안하죠. 그런데 나한테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 성장을 해야죠. 인생의 꽃은 딱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때는 젊은 친구들한테 미안한 것이, 내가 반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젊은 친구들 몇 날 며칠 할 일을 제가 두세 번 툭툭 건드려주면 해결되는 일도 많고요. 어떻게 보면 50대 초반 지금이 가장 일을 잘 할 수 있는 때인 것 같아요. '레버리지'가 훨씬 높아진 것이죠. 중요한 것은 조직에 몸담고 있어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자신의 정체성을 혼돈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역할이 정체성이 돼버리면, 그 역할이 사라질 경우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는 것이죠."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실리콘밸리 여행기를 들으며, 어쩌면 우리는 작은 우물 안에서 고집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진단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실리콘밸리, 이곳에도 문제는 많다. 그러나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을 문제로 여기지 않고 있던 사람들도, 함께 그 문제를 알아보고 해결하려고 들여다보고 연구한다는 것. 그것이 다르다. 몇 번씩 장시간 대화에 응해준 최나리씨, 박태웅씨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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