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셋째 대학 무상교육'으로 행복한 임신?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 2013.09.27 13:42

[40雜s]출산 장려효과 미미…40·50대 '셋째' 늦깎이 대학생도 지원?

편집자주 |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때 쯤이었을거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아빠는 나중에 어디에서 살거야?"라고 물었다.
'이게 뭔 소린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그 앙증맞은 말에 한참을 웃었다. '저 조그만 머릿 속에도 20 몇년쯤 뒤의 주거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니..헐'
(물론 지금은 고1이 된 딸이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런 호루라기"라는 말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몇년 전 집을 팔고 전세 세입자로 돌아선 탓에 '우리 집'은 없다는 걸 딸도 아는 터라 물어볼 일도 없지만).

나이 50을 바라보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20년 뒤를 잘 머리에 떠올리지 못하는 대책없는 아빠다.
그런데 어제 발표된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우리 젊은 예비 아빠 엄마들은 20년을 기다리는 안목으로 '사랑'을 나눠야 할 것 같다. 셋째 아이 대학 들어갈 때는 등록금을 정부에서 내주겠다니 말이다.

정부는 '국내 대학의 셋째 아이 이상 재학생에 대해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등록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정책목표는 "행복한 임신과 출산을 장려하고 대학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이다.
'20년 뒤 내 아이(정확히는 '셋째'만)는 대학 학비 안들테니, 빨리 첫째 둘째 낳고 행복한 마음으로 '복덩어리'인 셋째를 만들라는 말이다.
연간 1인당 450만원, 내년에는 1학년 대상(2만7000명)이지만 2017년에는 4학년까지 11만명에게 5000억원을 통 크게 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Q:출산 장려정책일까?

내년 대학 들어가는 셋째들의 등록금을 내준다는 건, 이미 애들을 셋 이상 낳아 키운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될지언정 당장 효과적인 출산장려 정책은 아닐 것이다.
셋째 아이 대학 등록금을 대줘야 하는 40, 50대는 이미 대부분 생산 의욕 내지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여윳돈 생긴 김에 아이 하나씩 더 낳자고 작심하고 나설 것 같지는 않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결혼할지 말지, 아이를 낳을 지 말지, 셋째를 낳을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타깃이 되는 게 상식이다.

Q:왜 '셋째'만 ?

아이 셋을 낳아 애국한 40~50대 베이비부머들에 대한 보상이라 하더라도 중요한건 '셋째'가 아니라 '세 명'이다. 첫째 둘째는 '애물덩어리'이고, 셋째만 '복덩어리' 취급 당하게 해서야 될까.
셋째는 대학 갈 생각이나 능력이 없다면 어쩌지? 첫째나 둘째가 대학가겠다고 해도 "우리집은형편이 어려우니, 돈 안드는 셋째가 대학가거라"라고 비정하게 타일러야 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특목고 다자녀 특례입학도 왜 꼭 '셋째'만 대상이어야 하느냐는 불만이 많아서 2013년부터는 첫째자녀부터 가능하도록 했다).

Q:'셋째'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 없어서 애 하나 낳기도 힘들어 결혼도 못하는데 아이 서넛 가진 사람이면 그래도 먹고 살 걱정은 없는 사람일텐데, 결국 부자 표 얻으려고 그런 공약 한거냐"는 반발이 당장 나올수 밖에 없다.
물론 피임에 관해서 무지하거나, 가난해서 피임도 제대로 못해서, 혹은 종교적인 이유나 생명 존중 신념으로 아이들을 서 넛씩낳은 사람들이 더 많은 건지 통계적으로 확인해봐야 할 일이긴 하다.
하지만, '늦둥이는 부의 상징'이라는 말이 꼭 우스개는 아닐 터인데, 소득에 상관없이 무조건 셋째 아이 등록금을 정부가 내주겠다는 건 한참 '오버'다.

Q: 대학 보내기에 앞서 키우는게 더 힘든데?

아이가 넷이어서 즉시 수혜를 보게 된 선배까지도 (표정관리 일수는 있지만)"돈 준다는데 나쁠것 없지만 애 키우는데 돈 안들게 해주는게 백배 낫다"며 "이 돈으로 엄마 직장 근처에 제대로 된 탁아소 지어 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매년 '대학 들어가는 셋째' 말고, 매년 '태어나는 셋째'에게 매달 40만원씩 보육비를 4년간 준다면 그 돈으로 기저귀 우유 사고, 병원 가고, 옷 사입고, 육아원비에도 보태니 훨씬 요긴하게 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의무교육기간만이라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국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 없어서 못한다는 '방과후 돌봄교실' 지원으로 돌리거나, 학교 수업자재 구입비용
같은 쪽에 예산을 돌리는게 백번 시급한 일이다.

Q:차라리 펀드를 들어주든지

대학생에게 '덤'처럼 주는 연간 450만원의 돈은, 국가에서 나와서 곧바로 학교로 들어간다. 대학이 생산이나 투자를 하는 것도 아니니 니 소비 유발효과도 적다.

반면 육아를 위한 필수적인 지출은 기업 수요로 이어져 소비유발계수가 높다. 경제 발목을 잡고 있는 수요 디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우는데도 훨씬 보탬이 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대학 나와 봤자 취직도 잘 안돼서 먹고 살 길도 막막한데, 아예 아이 셋 낳은 가구에는 1년에 450만원씩 노후 연금을 들어주거나, 적립식 펀드를 들어주는 건 어떤가. 매년 5000억원씩 시장에 투입되는 '금융시장 안정기금' 역할도 하고 말이다.





Q:무상보육, 월급쟁이 증세 논란?...이 돈이면 되는데

재원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기초연금 규모에는 비할 바가 못되지만, 연간 5000억씩, 10년이면 5조원이다.
319만명에 달하는 0~5세 영·유아의 비용 부담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죽자 사자 싸우고 있는 판이다. 서울시가 요청하고 있는 보육비 보조금이 3700억원. 셋째 아이들 대학등록금으로 싹 해결되는 돈이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이 '월급쟁이 증세'라는 분노를 사 결국 재개정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그렇게 해서 정부가 얻을 수 있었던 세수증대 효과가 겨우 연간 4000억원이었다. 그렇게 난리를 쳤던 만큼의 돈을 셋째아이 등록금에는 그토록 쉽게 어물쩍 줘버리겠다는 것이다.

Q:'복지'하자는데 왜 딴죽?

여기서 좀 헷갈릴 수 있다.
기초연금 무상보육 같은 '보편적 복지' 공약이 후퇴했다고 비판할 거면 셋째 아이 등록금 지원을 반대하는 건 모순 아니냐고.

하지만 노인에 대한 기초연금이나 아이들 보육문제는 '기초적 생존권'에 해당되는 일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사회가 존립하기 위한 기본적인 활동이고, 젊을 때 사회에서 일하고 은퇴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
그래서 선택적이건 보편적이건, 노인부양이나 아이들 보육이 '복지'의 영역이라는데까지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그런데 대학을 가고 말고는 사회의 생존문제가 아니고 개인의 선택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진학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고졸취업, 스펙타파'를 외쳐대는 나라에서 대학생들에게 '출산지원' 명목으로 소득과 무관하게 세금을 지원하자는데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다.

과도한 학비로 인해 '반값 등록금' 요구가 나올 정도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럼 차라리 등록금을 낮추든지, 소득과 학업을 고려한 장학금을 대폭 확대하는게 맞다.
대학생은 노인이나 아이들과는 달리 '선택적 지원'이 필요한 곳이라는 말이다.

Q:겨우 5000억원, 공약에 있던건데 왜 이제야?

연간 100조 단위의 기초연금을 논하는데 쩨쩨하게 연 5000억 푼돈 갖고 뭘 그러냐는 소리는 제발 하지 말자.
기초연금 10만원이네 20만원이네를 두고 온 나라가 이렇게 시끄러운데 1인당 한 달 40만원꼴의 통큰 돈이 줄줄 새나갈 구멍을 예산에 턱하니 넣어두고 말이다.
어차피 정권 영원히 갈 것도 아닌데 '2017년까지 눈딱감고 1조2000억원만 주고 말자'는 생각은 설마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대통령 선거 공약에 다 나와 있는건데 이제 와 시비 거냐고 할지 모른다. 맞다. 더 큰 문제에 정신 팔려 제대로 못보고 넘어온 잘못이 크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하는 말대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하게 청구서가 날아들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드는거 아닌가.

'셋째 대학 무상교육'은 이번 예산안 가운데 복지정책이 다뤄야 할 영역, 정책의 우선 순위를 되짚어볼 상징적인 아이템이다.
현오석 부총리는 "공약은 최대한 실현되도록 하는게 맞다"고 했다.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자세이긴 하지만, 그 정도를 넘어 혹시라도 '까라면 까야지'라는 '무영혼, 무소신'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

그건 그렇고,
이제 마흔 다섯 된 내 동생(셋째)도 어제부터 만학의 꿈을 키우고 있지나 않을까? 여든 넘은 우리 아버님도 넷째인데, 노년을 심심하게 보내시느니 집근처 정원미달된 대학이나 한번 다시 가보시라고 할까.
아, 그러고보니 넷째인 우리 집사람도 있네. 아이 다 크면 뭐할까 궁리하는데 대학 두번 나온것도 부족해 또 가 볼까 하는 소리 나오겠다.

양에 안 차는 대학에 등록금 꼬박꼬박 내고 다니고 있는 1,2학년 '셋째 대학생'들도 이참에 다시 한번 시험쳐보고, 군대 제대하고 대학 졸업하고도 직장 못잡은 셋째들도 다시 대학으로 '피난'오면?
'셋째 아이'에 나이나 재수여부를 기준으로 뒀다간 위헌 소송 날 판이고, '부모 생존'을 조건으로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일터...
대학 들어가는 셋째가 2만7000명 아니라 갑자기 5만, 10만명으로 늘어 대한민국에 '제2의 대학 르네상스'가 꽃 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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