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모임서 '주식 얘기'로 가장 열받는 사람은

머니투데이 강상규 미래연구소M 소장 | 2013.09.20 10:00

[행동재무학]<32>가치분석, 노력한 만큼 비례해 대가가 오진 않는다

편집자주 | 주식시장이 비효율적(inefficient)이라 보는 이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알파를 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림=강기영 디자이너
“OO주식은 큰 호재가 있대” “∆∆주식은 3개월째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네.”

추석 명절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으레 단골 메뉴로 나오는 얘기 가운데 하나가 주식 얘기다. 특히 올해처럼 추석직전 증시가 깜짝 랠리를 펼쳤고, 또 추석연휴 기간중 미국 FOMC의 예상치 못한 양적완화 유지 발표로 인해 다우지수와 S&P500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해외에서 호재가 만발할 때면 주식 얘기를 빠뜨릴 수 없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주식투자를 하는 가족들 저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큰 집은 빠른 정보에 근거한 단기 매매에 집중하고, 이서방네는 가치분석에 따른 장기투자를 고집하고, 막내는 챠트를 보며 저항선과 지지선에 초점을 두는 등 주식투자 전략이 각양각색이다. 물론 주식은 위험하니 절대 하지 말라는 가족도 있기 마련.

하지만 이중에서 주식 얘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단연코 가치분석을 하는 이서방이다. 이는 투자성과 때문이 결코 아니다. 단지 가치투자를 하기 위해선 많은 정보와 지식을 필요로 하기에 그만큼 할 얘기가 많아서다. 그러나 반대로 속으로 가장 열받는 사람도 바로 가치투자에 매달리는 이서방이다. 왜냐하면 가장 많이 알고 할 얘기도 많지만 주식 얘기를 하면 할수록 자랑할 만한 투자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기 매매하는 큰 형님은 용케도 돈을 벌고, 막내는 챠트만 보고서도 적절히 샀다 팔았다 하며 재미를 보는 것 같은데, 열심히 공부해서 가치주에 투자한 이서방은 수개월째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다.

가치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부으며 시장 초과수익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과거의 많은 연구들은 대부분의 경우 가치분석이 뛰어난 성과는커녕 오히려 더 큰 손실을 입을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The Quest for Alpha』의 저자 래리 스위드로(Larry Swedroe)가 제시한 가치분석 실패의 한 예를 살펴보자. 1999년 어느날, 세계 최고의 반도체 칩 제조업체인 인텔은 막대한 수익으로 현금 보유가 100억달러가 넘어서자 심각한 고민에 쌓였다. 1999년 당시의 인텔은 성장속도가 매우 빠른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지금의 애플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인텔의 이사회는 100억달러가 넘는 현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게 적절한 판단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이때 인텔의 주가는 주당 120달러 근처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자사주 매입이 적절한지의 여부는 인텔의 적정가치를 알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인텔의 적정가치가 120달러보다 더 높다면 현재 120달러에 거래되고 있는 인텔의 주식은 저평가(undervalued)되고 있는 것이므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게 옳다.

그러나 만약 인텔의 적정가치가 120달러보다 적다면 자사주 매입을 하면 안되고 대신 보통주를 추가 발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인텔 주식은 고평가(overvalued)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인텔의 적정가치를 파악해 보자. 그런데 이 작업이 쉬울까? 1999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로스앤젤레스(UCLA)의 브래포드 코넬(Bradford Cornell) 경영학 교수는 인텔의 적정가치 파악이 얼마나 어려운지 간단한 수치를 들어 보여줬다.

주식의 적정가치를 파악하기 위해선 크게 두가지의 항목을 추정해야 한다. 첫째는 미래 현금흐름이고 둘째는 이 현금흐름을 할인하는 데 사용되는 주식 리스크 프리미엄(equity risk premium)이다.

일단 코넬 교수는 문제를 쉽게 하기 위해 미래 현금흐름은 시장에 널리 알려져 있는 추정치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미래 현금흐름을 할인하는데 사용되는 리스크 프리미엄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다. 만약 리스크 프리미엄이 3%이면 인텔의 적정가치는 204달러에 달할 것이고, 5%이면 130달러(그당시 인텔 주가 수준), 그리고 7.2%로 가정하면 인텔의 적정가치는 고작 82달러에 머물게 된다.

다시 인텔의 이사회로 되돌아가 보자. 누구보다도 회사의 고급정보를 잘 알고 있는 이사회의 멤버들이라면 인텔의 미래 현금흐름 추정과 리스크 프리미엄 파악쯤은 ‘누워서 떡먹기’ 아니었을까?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인텔의 이사회는 자사주 매입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아니 인텔의 적정가치를 산출하기 위해 그 당시 최고의 애널리스트로부터 자문을 구했지만 결국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회사의 미래 현금흐름과 리스크 프리미엄을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얘긴데, 1999년 인텔의 이사회가 내렸어야하는 결정은 자사주 매입이 아닌 보통주 추가발행이었다. 왜냐하면 2013년 현재 인텔의 주가는 겨우 23달러 정도에 거래되고 있으니 1999년 당시 인텔의 주가 120달러는 아주 고평가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엔 힘들게 노력한 만큼 비례해서 대가를 얻지 못하는 게 많다. 가치분석도 그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가치분석 자체가 확실치 않은 추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 추정치가 틀리면 아무리 베스트 애널리스트라 할지라도 잘못된 결과치를 얻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가치분석을 바탕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이서방도 추석 가족모임에서 주식얘기가 나오면 열 받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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