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블루스]막무가내 고객, 만만한 게 '불친절'

머니투데이 김남이 기자 | 2013.09.14 06:50

백화점 점원 K씨, '소비자 과실' 판정불구 민원에 해고 위기 몰려

백화점 의류매장 매니저 K씨는 하마터면 직장을 잃을 뻔했다. '불친절' 논란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고객에게 불친절 했을까.

얼마 전 K씨가 근무하는 매장에서 대학생 A씨가 옷을 사갔다. 그는 며칠 뒤 줄어든 옷을 들고 나타나 "빨래를 했는데 옷이 망가졌다"며 환불과 정신적 피해보상 등을 요구했다. K씨는 A씨의 세탁방법이 잘못된 것으로 판단해 규정을 설명하고 환불을 거절했다.

그러자 A씨는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했다. 소비자원의 결론은 '고객부주의'. 올바른 세탁법을 따르지 않은 A씨의 부주의가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K씨는 이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된 것으로 알았다. 정작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A씨는 백화점에 "K씨가 고객에게 불친절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K씨는 억울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고객이 불친절하다고 느꼈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

문제가 계속되자 K씨는 해고 위기에 몰렸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의류업체 직원은 옷값보다 비싼 백화점상품권과 선물 등을 갖고 A씨를 직접 찾아갔다. 한참을 기다려 A씨를 만난 업체 직원은 거듭 사과한 뒤 '불만'을 취하하겠다는 약속을 가까스로 서면으로 받았다. 결국 A씨는 옷값보다 많은 보상을 챙겼다.

K씨의 사례처럼 서비스업이나 유통업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고객의 목소리다. 객관적으로 시비가 가려지는 품질문제가 아닌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태도'를 두고 제기되는 불만에는 속수무책이다.

이를 악용하는 '블랙컨슈머'는 홈페이지의 불만접수 게시판을 적극 이용한다. 직접적으로 감사팀이나 인사팀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 해당 직원들이 매우 곤혹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근거 없는 것으로 확인돼도 인사에 영향을 받거나 마음고생을 해야 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고객이 '직원이 친절하게 대했다고 하지만 나는 매우 불쾌하게 느꼈다'고 말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며 "처음에는 무시하던 회사도 계속 문제를 제기하면 회사 이미지 때문에 담당 직원에게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지시한다"며 허탈해 했다.

이 관계자는 "처음에는 제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만 이상이 없으면 그때부터 갖은 트집을 다 잡는다"며 "제일 만만한 것이 직원 불친절"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에는 한 상담직원이 '됐는데'라고 말한 것을 두고 "'데'는 반말"이라며 지인들과 함께 고객센터를 방문해 합의금 150만원을 챙긴 50대 남성이 기소되기도 했다. 그는 여러 고객센터를 돌며 2억여원을 뜯어낸 전문 블랙컨슈머였다. 고객보호를 위해 만든 고객센터가 고객 '생떼' 창구로 변질된 것이다.

지난 4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중소기업 200여개사를 대상으로 '블랙컨슈머 대응실태'를 조사한 결과 소비자의 악성클레임 대응방안과 관련해 83.7%가 '그대로 수용한다'고 답했다. 기업의 이미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 대응보다 소비자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다.

불황 시기에 고객은 왕처럼 모셔야 한다. 하지만 그 왕이 전횡을 일삼는 폭군이라면 서비스분야 '직딩'의 삶은 고달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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