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꽃미남 CEO' 최홍, 알고보니 판자촌서…

머니투데이 이해인 기자 | 2013.09.13 07:22

[행쇼!대한민국⑤] 판자촌 고아에서 외국계 CEO까지···최홍 ING 자산운용 대표

편집자주 | 가난하면 행복하기 어렵지만, 넉넉하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이제는 더 이상 소득 증가가 행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삶의 목적이어야 함에도 어느새 삶의 뒤켠으로 밀려버린 '행복'. '행쇼! 대한민국'에서 자신 만의 행복을 찾은 사람들을 만나본다.

최홍(52) ING 자산운용 대표./사진=머니투데이


#1973년 가을, 부산 영도의 무허가 판자촌. 공동묘지 위에 대충 걸쳐 놓은 움막집에서 바싹 마른 한 소년이 뛰쳐나온다. 하나 뿐인 가족인 외할머니는 새벽에 배추장사를 하러 나가셨다. 아버지는 태어나기도 전에 행방불명됐고, 어머니는 소년이 8살이 되던 해 재혼과 함께 떠났다. 오직 달리고 있는 순간에만 현실을 잊을 수 있었던 소년은 이를 악물고 산꼭대기까지 뛰어오른다.

#2013년 9월9일 아침, 국회의사당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여의도 IFC(국제금융센터) 20층. 강렬한 눈빛의 미중년이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한다. 훤칠한 키, 근육질 몸의 꽃미남으로 부자집 귀공자로 컸을 것 같은 그가 바로 40년 전 판자촌의 그 소년, 최홍(53) ING 자산운용 대표다.

최 대표는 부산 영도의 판자촌에서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부산 영도는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정착지였다. 자갈 위에 판자를 깔고 생활하기도 했고, 공동묘지 위에 움막을 올리기도 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보니 어쩌다 밥을 짓다 불이 나면 온 동네가 화재에 휩싸였다.

최 대표는 "가난보다는 어머니가 떠난 충격 때문에 외로움이 더 괴롭고 힘들었다"고 했다.

극빈층이 모여사는 판자촌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그는 오로지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 물고 공부에 매달렸다. 훗날 수녀가 된 최 대표의 초등학교 동창은 최 대표에 대해 "어두우면서도 강인했던 친구"라고 표현했다.

독하게 공부한 끝에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고등학교의 성적 경쟁은 차원이 달랐다.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혼자 공부하는 데 한계가 왔다. 자연스레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니는 동급생들에 밀려 한단계씩 성적이 내려갔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학업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신경 쇠약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때마다 최 대표를 지탱해 준 것은 외할머니와 운동이었다. 그는 "강하면서도 따뜻한 외할머니의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당시 판자촌의 다른 사람들처럼 좋지 않은 길로 빠졌을지도 모른다"며 "축구나 달리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힘들었던 시절을 버텨냈다"고 했다.

끝까지 마음을 다잡고 공부한 끝에 최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당시 판자촌에서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진학한 사람은 최 대표가 유일했다. 삶이 전환점을 맞은 순간이었다. 대학에서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이후 같은 대학에서 석사 과정까지 마친 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모두들 그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교수가 될 것으로 봤다. 미국 명문 경영대학원 교수의 연봉은 2억원 안팎에 달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종신교수로서 평생 직위가 보장된다.

그러나 그는 도태될 위험을 무릅쓰고 월스트리트 행을 택했다. 남들은 모두 말렸지만, 그는 '안정'보다는 '도전'에 더 끌렸다. 최 대표는 "만약 누군가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유'라고 답한다"며 "인생의 주인으로써 내가 원하는 결정을 내리고, 그 속에서 웃을 수 있는 자유가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홍 ING 자산운용 대표의 2011년 멘즈헬스 쿨가이 선발대회 당시/사진=멘즈헬스


이후 한국에 돌아온 최 대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적립식펀드를 도입하고, 랜드마크자산운용의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1년에는 한 헬스 잡지가 주최한 '쿨가이 선발대회'에 출전했다. 멋진 몸매 뿐 아니라 교양까지 겸비한 진정한 '쿨가이'를 뽑는 이 대회에서 최 대표는 20∼30대들을 누르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최 대표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뛰어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낀다"며 "쿨가이 선발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도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좋아했지만 20∼30대 청년들과 어울려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과정이 더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의 남은 꿈은 딱 2가지다. 70대 이후에도 생각만큼은 20대처럼 늘 깨어있는 것과 자신을 키워준 세상에 보답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지만 제가 받은 것들을 돌려 줄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 중이다"

누구보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는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게 많다고 생각한다. 그의 '행복'의 원천은 다름 아닌 여기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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