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민폐국가’ 일본과 한국의 ‘민폐교과서’

머니투데이 이승형 부장 | 2013.09.11 06:32
일본 아이들도 ‘밥상머리 교육’을 받는다. 이 가운데 가장 강조되는 훈계는 “남에게 폐 끼치지 않기”다. 공공 예절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행여 이웃에게 폐가 될까봐 자기 집에서도 쥐 죽은 듯 사는 민족이다.

그래서일까. 일본인들은 흔히 ‘질서를 잘 지키는 국민’들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도 일본 관광객들은 매너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조용히 돈 잘 쓰는 이들은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는다.

그런데 이것이 집단, 나아가 정부나 국가 형태로 규모가 커지면 상황은 정반대로 바뀐다. 이 나라의 근현대사를 돌이켜보면 적반하장(賊反荷杖)과 후안무치(厚顔無恥)의 무한 반복이다.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듯 계속 되돌이표를 돌고 있다.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 마냥 똑같은 언행을 되풀이한다.

“침략이라고 규정한 것은 (일본인들의) 자학일 뿐이다” “군인이 전쟁 나갔을 때 휴식을 취하려면 위안부는 필수적이다” “침략에는 정의가 없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등등….

일일이 열거하기에 입이 아플 정도다. 이것은 현직 일본 총리나 도지사, 의원이란 자들의 망언 릴레이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어디 말 뿐이랴. 헌법을 고쳐 과거 군국주의 시대 군대로 돌아가겠단다. 과거 ‘왜구 노릇’하던 버릇이 남은 것인지 영토 확장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반성이나 배려, 예의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는 식이다.

이 나라는 엊그제 2020년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예의 그 거짓말이 튀어나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능 오염으로 이웃 나라 국민들의 걱정이 태산인데 아베 일본 총리는 올림픽 유치 기자회견에서 “도쿄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며 “오염의 영향은 완전히 차단되고 있다”고 했다. 3시간만 노출돼도 사망에 이르는 방사능 오염수 수치나 일본 국민 95%가 이 사태를 심각하게 여긴다는 여론 조사 결과는 남의 일이다.


우리 국민들은 일상다반사로 벌어지는 이런 망동(妄動)에 분통이 터진다. 정신 건강은 물론 육체 건강에 큰 해악을 끼치는 죄를 물어 국민 배상이라도 요구해야 할 판이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그런데 남을 욕하기 전에 우리를 탓해야 할 희한한 일이 최근 벌어졌다. 이른바 ‘뉴라이트’ 학자들이 만든 책이 사단이 됐다. 한국사 교과서로 명명(命名)된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배워 온 역사 상식을 뒤엎는 ‘용기’를 보인다.

친일파를 애국지사로 되살리고, 친일자본을 민족자본으로 둔갑시킨다. 한 마디로 일제 침략 역사를 미화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사회적, 국가적, 역사적 피해를 줬고, 주고 있는 나라를 최대한 옹호하기 위해 애를 쓴다.

저들은 자기네 교과서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버젓이 주장하는데, 우리들은 교과서에다 이러고 있다. 이것은 가히 '이적행위'에 비견될 만하다. 오죽하면 일본 언론들이 “한국 교과서가 일본 식민 지배를 찬양했다”고 쓰겠는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야 할 정도로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훗날 후손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을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일제 침략 역사는 이념이나 사관의 문제가 아니다. 보편적 진리의 문제요, 역사적 상식의 문제다. 물론 민주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은 표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교과서의 모습이서는 아니 된다. 이런 나쁜 교과서는 하루 빨리 소각해야 한다.

얼마 전 한 장의 외신 사진이 눈에 띄었다. 일본군 위안부로서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옥선 할머니가 독일 베를린에서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우리 정부 관계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뉴라이트 교과서 사태를 지켜보며 '어쩌면 차라리 나타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서글픈 생각이 드는 건 필자 하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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