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방사능' 올림픽과 뉴욕 '무단횡단'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 2013.09.09 07:22

[이슈 인사이트] 신호등에 달린 가짜 버튼이 뉴욕 무단횡단 줄여···'통제의 환상'


# 일본 도쿄가 '방사능 논란'에도 불구하고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최종 결정됐다. 7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25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다.

총회 직전 후쿠시마 원전에서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 유출이 발견되고 당국이 이를 방치했다는 정황도 드러났지만, 경쟁자 터키 이스탄불과 스페인 마드리드에 대한 우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총회 프레젠테이션에서 "원전 오염수 문제를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아베 총리의 이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 검사 시절 '마피아'를 소탕해 인기를 얻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1998년 '무단횡단' 단속령을 내렸다. 작은 범죄부터 막아야 큰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무단횡단 단속령은 몇달도 채 가지 못했다. 단속령 철회를 요구하는 뉴욕시민들의 대규모 시위에 밀렸다. "지나가는 차가 한대도 없어도 멀뚱멀뚱 기다리라는 말이냐"는 주장이었다.

이후 맨해튼을 비롯한 뉴욕은 횡단보도 위에서의 무단횡단이 사실상 허용됐고, 경찰 바로 앞에서 버젓히 무단횡단을 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도시가 됐다. 지금 뉴욕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관광객이다.

그도 그럴 것이 뉴욕은 대부분의 도로가 일방통행이다. 때문에 무단횡단에 따른 사고율이 지극히 낮다. 다만 문제는 파크애비뉴처럼 양방향 통행이 되는 큰 도로가 간혹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런 도로에만 무단횡단 단속을 위해 인력을 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신호등에 달린 '버튼'이다.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보행 신호를 켜달라고 누르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대부분의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신호등에 버튼을 달아둔 곳은 무단횡단이 현저히 적다. 사람들은 자신이 버튼을 눌러 보행신고를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는 일을 더 오래 참아낸다.

심리학적으로 이를 '플라시보 버튼'(Placebo button)이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전혀 약효가 없는 약을 주고 먹으라고 하면 환자가 정말로 약을 나았다고 느끼는 '플라시보 효과'(위약 효과)에서 따온 말이다. 플라시보 버튼은 실제로는 아무런 통제력이 없음에도 자신이 통제력을 행사한다고 믿게 하는 역할을 한다.


플라시보 버튼의 가장 큰 효과는 사람들의 불만을 줄인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대형 빌딩에 가짜 온도조절기를 달아둔 경우가 종종 있다. 중앙 냉난방을 하는 빌딩에서는 어느 온도에 맞추더라도 춥거나 덥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가짜 온도조절기를 달아두고 각자 조작할 수 있게 하면 불평하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든다.

이런 현상들을 모두 묶어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라고 한다. "원전 오염수 문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아베 총리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IOC 위원들은 믿었다. 일본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국체'(國體) 사상에 따라 천황과 내각을 '어버이'라고 생각하는 일본 국민들은 정부가 방사능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오늘도 열심히 스시를 먹는다. 일본인들에게는 정부가 '플라시보 버튼'인 셈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저장탱크 인근에서 측정된 시간당 방사선 양이 지난달 31일 1800밀리시버트(mSv)에서 지난 3일 2200mSv로 단 3일만에 20% 이상 급증했다는 점 등에 비춰 일본 당국이 방사능 오염수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시간당 2200mSv는 사람이 3시간 동안 노출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방사선 양이다.

이번 올림픽 개최지 선정으로 아베 총리는 하나의 '업적'을 쌓았고, 일본은 무려 1645조원(150조엔: 다이와증권 추정)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만약 일본이 올림픽 전까지 방사능에 대해 완벽한 통제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세계 최고의 젊은 운동선수들을 방사능 피폭의 위험에 노출시킨 '이기적인 국가'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이 뇌리를 스친다.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힘을 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을 잘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후쿠시마 원전사고 2주년을 맞아 환경보건시민센터가 3월1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후쿠시마 핵사고 2주년 사진·포스터 전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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