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ze] 박영수, <쓰릴 미>의 ‘슈넷’

ize 장경진 기자 | 2013.09.05 09:18
© 이진혁(스튜디오 핑퐁)
1. 뮤지컬배우입니까?
Yes. 2009년 서울예술단(이하 예술단)에 입단해서, < 바람의 나라 >의 괴유와 < 15분 23초 >의 민호 역을 맡았다. < 15분 23초 >에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여섯 마디가 내 첫 대사였는데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후 < 윤동주, 달을 쏘다 >(이하 < 윤동주 >), < 아르센 루팡 >(이하 < 루팡 >) 등을 했고, 지금은 < 쓰릴 미 >를 하고 있다.

2. 네이슨입니까?
Yes. 제의가 들어왔을 때부터 난 그냥 네이슨이거니 했다. 같이 캐스팅된 (신)성민이도 날 처음 보더니 “뭐 이런 네이슨 같은 사람을 캐스팅했냐”고 하더라. (웃음) 실제 네이슨은 좀 더 남성적이었지만, 작품 안에서는 유약하고 소심하고 순한 느낌으로 표현되니까.

3. 외모가 도움이 됐습니까?
Yes. 사람들이 나보고 ‘사얼’이라고 한다. 사연이 많을 것 같은 얼굴이라고. (웃음) 뚜렷한 특징이 있는 외모는 아니지만, 머리를 내리는 거랑 뒤집어 까는 거랑 많이 달라서 양극단의 캐릭터를 나름대로 입힐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이번에 < 잃어버린 얼굴 1895 >(이하 < 잃어버린 얼굴 >)에서 고종 역을 맡아서 2:8 가르마를 했는데 그것도 다른 느낌이더라고. < 잃어버린 얼굴 >에서는 차갑고 나쁜 남자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쌍꺼풀 없는 그런 배우들이 대세인 것 같고. 으허허허.

4. 이미지와 성격은 비슷합니까?
Yes. 난 어릴 때부터 소심했고, 나서서 하는 걸 정-말 못했다. 시력이 좋지 않아서 안경을 오래 끼다 보니 자신감도 없었고, 너무 말라서 외모 콤플렉스도 많았고, 그러니 인기도 없었고. 그래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나서서 뭔가를 했는데, 남자애들만 있는 중학교 때부터 그런 게 사라져버렸다. 앞에서는 좋게 얘기하던 사람이 뒤에서 전혀 다르게 얘기한다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상처도 많이 받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좀 쿨한 편인데, 그게 다 상처받기 싫어서인 것 같다. 그래서 작은 자극에도 상처받고, 여리고 잘 삐치는 네이슨이 됐다. 사람에 대한 광적인 믿음과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

5. 무엇이든 잘 믿는 편입니까?
Yes.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라, 어릴 때는 TV나 영화 속 인물이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줄 알았다. 그게 연기라는 걸 알게 된 건 정말 한참 뒤였다. (웃음) 초등학교 때는 < 달려라 부메랑 >을 보고 미니카에 미쳐 있었다. 혼자 방문 잠그고 스틱 분해해서 따로 만들 정도였으니까. 어떻게 하면 빠른 스피드와 회전이 나올까를 고민하고, 휠의 질감을 위해 사포질도 하고. (웃음) 집에서는 내가 자동차 정비사나 과학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 마지막 승부 >를 보고 농구에 미쳐서 농구를 10to10으로 했다. 네덜란드로 유학 보내달라고 얘기해서 엄마한테 한 대 쥐어박혔다. (웃음)

6. 고집이 있습니까?
Yes. < 응답하라 1997 >에 나온 (이)시언이가 고등학교 때 짝꿍이었는데, 둘이 집에 가다가 MBC 아카데미 부산 개원 광고를 보고 우연히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 사체과 준비하다가 갑자기 연기하겠다고 했더니 집에서는 “네가 될 것 같냐”며 하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곧장 수원으로 취업 나가서 에어컨 만드는 일을 했다. 처음 들어갔을 때 머리 좋은 애 있냐고 물어보길래 자신 있게 손들고 학교 좀 싸게 다녔다는 식으로 얘기해서 자재 나르는 일을 했다. (웃음) 라인에서 나사 박는 일보다는 훨씬 수월했는데 부품 기호, 번호, 위치 다 외워서 빨리 갖다 줘야 되는 거라서 머리, 몸 다 쓰는 일이었다. 대학 가기 전까지는 부산에서 아르바이트랑 연극을 병행하며 살았다. 아동극을 할 때는 공연이 아침이니까 호프집 알바를 12시간씩 했고, 본격적인 연극을 할 때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2시간짜리 롯데리아 마감 알바를 했었다. 공익근무 할 때는 치킨 배달을 1년 6개월 정도 했고, 대학도 4수 만에 갔다. (웃음)

© 이진혁(스튜디오 핑퐁)
7. 독특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Yes. 부산에 있는 LG청소년과학관이라는 곳에서 12분짜리 과학 연극을 했다. 소소한 실험을 극으로 만들어 단체관람 투어 끝 무렵에 소개하는 거였다. 예를 들면 금붕어를 액체질소에 넣어서 바짝 얼린 다음 다시 물에 넣어 살려주는 것들. (웃음) 평소에도 과학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재밌게 했던 것 같다. 사실 과학관은 뻔할 수밖에 없는데 사람이 나와서 놀래키고 애드리브하고 그러니까 애들 반응이 난리도 아니었다. 난 거기서 늘 사고 치는 조수였다. (웃음)

8.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입니까?
Yes. 놀이터 가면 애들이랑 5분 안에 친해진다. 지금 서른둘인데 생각은 스물여섯에 멈춘 것 같다. (웃음) 그 애들이 친구면 친구지 마냥 어린아이로 보이진 않는다. 초등학생은 좀 친해지기 어렵긴 한데, 미취학 아동은 일단 던져주면 좋아한다. < 루팡 > 때 음악감독님 딸들이 엄마가 작업할 때 늘 심심해해서 좀 놀아줬더니, 나만 오면 “사암촌!!” 하면서 뛰어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9. 현실 인식을 잘 하는 편입니까?
No. 현실을 바라보려고 하는데 현실은 현실이고 재밌는 건 또 재밌는 거다. (웃음) 그래도 일하는 것에 있어서는 대학 졸업 후 이성적 눈이 좀 뜨였던 것 같다. 이전에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연극을 하는 게 힘든지 몰랐는데,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그러기에는 재정적인 부분이 너무 힘들었다. 여러 오디션을 보다가 예술단이라는 곳을 알게 됐고, 알아보니까 예술단은 월급도 나오고 연습실도 널려 있고 때맞춰 공연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꿈꿔왔던 곳이었던 거지.

10.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Yes. 2009년, < 기발한 자살 여행 >(이하 < 기발자 >)에 캐스팅돼서 계약하고 페이 받으며 연습하고 있었다. 근데 예술단 오디션에 덜컥 붙어버린 거다. 예술단에 가고는 싶고, 상황이 이러니 말은 못하고, 그게 얼굴에 다 표가 나고. (웃음) 안쓰러우셨는지 양꽃님, 성기윤, 김성기 선배님들이 같은 날 제작사 대표님한테 전화해서 “영수 예술단 가서 더 공부하게 보내주라”고 했다는 거다. 대표님이 대체 선배들한테 무슨 짓 했냐고 전화하실 정도였다. (웃음) 송별회까지 받고 나왔다.

11. 예쁨받는 노하우가 있습니까?

Yes. 그냥 늘 내가 막내라고 생각한다. < 기발자 > 때도 반장이라서 조연출님한테 전달 사항 받으면 다 연락드리고, 물통 갈고, (웃음) 청소를 열심히 했다. 잘하는 게 별로 없어서 그런 걸 열심히 했는데 그게 쌓여서 예쁘게 봐주신 것 같다.

12. 노래를 잘합니까?
No. 노래방 가면 늘 그냥 듣는 사람이었고, 4분음표의 박자가 뭔지도 몰랐다. 수난이 얼마나 많았는지 말도 못한다. 허허허. 책 사서 공부하고, 알바해서 5만 원짜리 플라스틱 건반 사서 연습하고. 다행히 완전 음치는 아니었는데 발성 자체가 아예 안돼서 연결된 음이 하나도 안 나는 거였다. 근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왠지 잘될 것 같았다. (웃음) 지금은 잘한다기보다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13. 희망을 본 적이 있습니까?
Yes. < 잃어버린 얼굴 > 오디션 때 < 명성황후 >의 ‘나의 운명은 그대’를 부르고 있었는데, 이지나 연출님이 클라이맥스 가기 전에 노래를 끊어버리시는 거다. 그러고서는 “네가 이렇게 노래를 잘했냐”고 하시는 거다. 행복하더라. 2009년에 < 바람의 나라 >를 같이했는데 내가 그 당시에 얼마나 못했으면. (웃음) 정말 기뻤다.

© 이진혁(스튜디오 핑퐁)
14. 부러운 사람이 있습니까?
Yes. 노래로는 흑인들이 정말 부럽다. (웃음) 그리고 예술단의 자랑 홍경수 선배님! 완전 최고신 것 같다. 성악을 전공하셨지만 너무 성악 같지 않으면서도 기품이 있고 노래가 정직하다. 아마도 예술단의 경험이 성악의 클래식함과 한국적 색을 접목시킬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우와오아. 진짜 대단하다.

15. 친한 친구가 있습니까?
Yes. < 쓰릴 미 >를 같이 하는 (임)병근이랑은 예술단 때도 계속 붙어 있다. 예술단 전체 일정이 5시에 끝나는데, 맨날 둘이서 10시까지 맞지도 않는 피아노 코드 쳐주면서 노래 부르고 그랬다. 각자 모은 MR 가져와서 콘서트도 하고. 남자-여자 역할 나눠서 듀엣도 했는데 < 화성에서 꿈꾸다 >의 ‘꿈길’이 기억난다. (웃음) 그러다 보니 연기할 때도 서로 뭔가를 요구하기보다는 바라봐주고 맞춰준다. 그렇게 맞물려가는 게 좋다. 예술단에 있다 보니 그동안은 대극장 공연을 많이 했는데, < 쓰릴 미 >는 2인극인 데다 네이슨이 극을 이끌어가는 부분이 많아서 사실 굉장히 외롭다. 마지막 리허설 때 너무 외롭고 무섭고 싸늘하고 그래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 얘기를 병근이한테 했더니 자기한테 기대라고 하더라. 너무 고맙다.

16. 애칭이 있습니까?
Yes. 트위터에 이름을 ‘슈’라고 했더니, ‘슈넷’이라 불러주시더라. 귀여운 척을 하려던 건 아니다. (웃음) 형이 하나 있는데 어릴 때 엄마가 난 딸이었으면 했던 게 있어서 애교를 부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 질겁해서 요즘은 자제하려고 하지만, 엄마랑 통화할 때 “영수가~”라는 1인칭도 자연스럽고. (웃음)

17. 의리가 있는 편입니까?
Yes. 처음에 예술단에 들어갈 때만 해도 2~3년 있다가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3년 차가 되니 미친 듯이 연습만 하고 외부랑 작업한 게 하나도 없더라. (웃음) 그러던 차에 < 윤동주 >로 처음 주연을 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예술단에 대한 애착도 강해졌고, 어떻게 보면 이렇게까지 성장시켜준 곳에 대한 의리도 지켜야 할 것 같았다. 점점 단체에 힘이 없어지다 보니, 우리 힘을 보태고 싶어졌다. 우리를 통해 관객들이 좀 더 예술단 공연을 보게끔. 그래서 같이 하는 (김)도빈이나 (이)시후랑도 함부로 나가지 말자는 얘기를 한다.

18. 상상하는 미래가 있습니까?
Yes. 나이 들어서 하고 싶은 캐릭터들이 많다. 세르반테스, 장발장, 스위니. 처음에 < 스위니 토드 >를 볼 때는 이해가 하나도 안 됐다. 왜 굳이 사람을 죽여야 하나. 그런데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의 아픔을 하나씩 알겠더라. 영국에서 1979년에 굉장히 흥행했는데, 당시 시대가 얼마나 암울했으면 이런 코드가 먹힌 건지 그 점도 너무 매력적이었다. 지금 나이에서 한다면… < 오페라의 유령 >의 라울이나 <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이하 < 여신님 >)의 류순호 정도? < 여신님 > 같은 경우엔 내가 보진 못했는데 다들 그 역이 어울릴 것 같다고 얘기 많이 해주시더라.

19. 만족을 잘 하는 편입니까?
No. 난 늘 전에 했던 작품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최근에는 뮤지컬을 5년째 하다 보니 원래 시작한 연극이 너무 끌린다. 학교 다닐 때 아서 밀러의 < 시련 >이라는 작품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정치, 사회적 상황을 비꼬는 이야기였는데 학교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었다. 풀로 하면 3시간 30분짜리라 대사 외우는 것만 2달이 걸릴 정도였는데, 정말 기억에 남고 다시 하고 싶다.

20.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박영수. 1982년생.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진득하게 해내고야 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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