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불공정한 게임에서 이기는 기술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 2013.08.30 10:27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39>

요즘 야구 보는 맛에 산다는 사람들 꽤 많다.류현진 선수가 뛰는 LA 다저스 경기 덕분인데, 나도 열심히 보는 편이다. 잘 깎인 녹색 잔디가 시원하게 펼쳐진 멋진 경기장,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날아가는 하얀 점,열광하는 수만 명의 관중들.

그런데 알다시피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는 단순히 선수들의 기량을 겨루는 게임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을 수 있는가를 겨루는 게임”이 된 지 오래다. 어느 구단이든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무조건 최고의 투수와 타자들을 사들여 성적을 올릴 수 있다. 베이스볼이 아니라 머니볼이 된 것이다.

머니볼? 그렇다. 꼭 10년 전 월가에서큰 화제를 모았고 재작년에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바로 그 책 제목이다. 메이저리그를 소재로 한 이 책이 왜월가에서 주목을 받았고 출간되기도 전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는지는 부제인 ‘불공정한 게임에서 이기는 기술(The Art of Winning an Unfair Game)’이 설명해준다.

살로먼브라더스 채권 세일즈맨 출신의 칼럼니스트 마이클 루이스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했다. “메이저리그 팀 가운데 가장 가난하다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어떻게 그토록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까? ”빌리 빈 단장이 선수들을 끌어 모은 오클랜드는 2002년 시즌에 뉴욕 양키스와 똑같은 103승을 거뒀는데, 오클랜드의 연봉 총액은 양키스(1억2600만 달러)의 3분의1도 안 되는 4000만 달러였다.

이 책에서는 그 답으로 빌 제임스의객관적인 야구 데이터 분석을 제시한다. 빌리 빈의 스승 격인 빌 제임스는 1977년에 처음으로 ‘야구 개요서’를 자비로 출판했는데, 그 내용은 야구인들의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는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었다. 가령타자를 평가하는 데 타율이나 타점보다 출루율과장타율을 더 중시하고 도루 능력은 아예 무시해버렸다. 투수를 평가할 때도 방어율이나 피안타율뿐만 아니라 삼진과 사구(四球), 피홈런처럼 야수들의 능력이나 운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요소를 따로 떼어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돈키호테 식 발상이었다. 이런 접근방식에 숨겨진 관점은 이렇다.“인간의 두 눈은 야구 선수와 야구 경기를 평가하기 위한 자료들을 찾아내기에 너무나 부적절한 도구다.”

빌리 빈은 이같은 통계 분석에 기초해 저평가된 선수를 데려왔고, 덕분에 저예산으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월가에서 이 책에 환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공정한 게임을 이겨낸 것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빌리 빈 단장은 아직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가 거둔 최고 성적은 지구 우승 5회, 게다가 디비전 시리즈에서 이겨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나간 것은 2006년 딱 한 번뿐이고, 거기서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4-0 스윕으로 패해 월드시리즈 무대는 밟아보지도 못했다. 빌리 빈의 한계일까.

여기 또 다른 인물이 있다. 존 헨리다. 그는 금융시장과 야구 경기에서 발견되는 비효율성에 주목했고, 환상 속에서도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야구에 대해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에 따라 경기가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주식시장에서도 다들자기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는착각과 시장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금융시장의 비효율성은 이런 편향과 잘못된 믿음에서 나오는데, 존 헨리는그것에 맞서 억만장자가 됐고 그 돈으로 2002년에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을 사들였다.

그는 빌 제임스의데이터분석을 신봉했을 뿐만 아니라 머니볼을 만들어내는 돈의 힘도 믿었다. 그래서 구단주가 된 뒤 거액을 들여 커트 실링과 데이비드 오티스 같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했고, 레드삭스는 86년만에 밤미노의 저주를 풀고 2004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2007년에도 우승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제일 부유한 팀이 된 LA 다저스의 요즘 경기 모습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불공정한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역시 이론과 통계만 갖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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