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이스라엘 구석구석을 들추고 지나갔다. '이름' 좀 알려졌다는 사람들은 모두 "이미 한국에 대해서는 할 얘기를 다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어렵사리 만난 이스라엘 창업 전문가들에게 들어본 속내는 국내에서 전해 들었던 것과는 차이가 컸다.
이스라엘을 롤모델로 삼은 한국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한결같이 돌아온 답은 "이스라엘을 좇지 말라"였다. '창업국가'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감춰진 그림자를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인구 800만명에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의 충청도 정도에 불과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 4.5%, 국민 1인당 벤처투자액 170달러, 국민 1만명당 연구개발 인력 140명으로 모두 세계 1위다. 한 해에 창업하는 벤처 기업 수가 유럽 전체의 벤처 기업 수를 능가한다.
한마디로 작지만 강한 나라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중요한 하이테크센터로 꼽힌다. 이스라엘. 실제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반도체칩, 플래시 메모리, 컴퓨터 방화벽, 디지털 인쇄 기술,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 기술 같은 혁신적 제품과 기술이 모두 이스라엘의 벤처 기업에서 나왔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기술력 있는 벤처 기업을 경쟁력 있는 중소·중견기업, 나아가 대기업으로 키워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벤처 기업인 대부분 기업을 키우는 데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신기술을 개발한 뒤 기업(기술)을 외국 기업에 팔아 목돈을 거머쥐는 것에 있다.
성공한 이스라엘 벤처 기업의 약 80%가 외국 기업에 인수된다. 또 창업가의 70% 이상이 이미 창업한 경험이 있는 연쇄창업자이다. 투자환경 역시 마찬가지. 창업 자금을 대주는 소액 엔젤투자는 활발한 반면 기업 성장을 위한 투자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실제 이스라엘에서 개발된 창조적이고 혁신적 기술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기술을 이용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거의 없다. CPU칩은 인텔, 디지털 인쇄는 휴렉팩커드(HP), 휴대전화는 모토롤라 등 이스라엘 기술로 세계시장을 주도해온 기업은 대부분 외국 기업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스라엘이 개발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은 정작 이스라엘 산업 육성과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이스라엘의 창의성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유럽 기업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창업 중심의 성장모델로 인한 부작용인 '이스라엘 패러독스(paradox)'의 실체다. 요시 스몰러 OCS 인큐베이터 책임자는 "혁신적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한 경쟁력 있는 벤처 기업들이 외국 기업 등에 너무 일찍 매각되는 것이 이스라엘 정부의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기업 매각에 성공한 소수의 창업가가 부를 독점하다보니 사회적 불평등도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이스라엘의 '10분위 배율'은 13.6배로 회원국 중 다섯번째로 높았다. 10분위 배율은 최상위층과 최하위층간 소득격차를 파악해 소득 불평등 정도를 알아보는 지수다. 한국의 10분위 배율은 10.5배 OECD 회원국 평균은 9.4배였다.
이 때문에 지난해와 올해 이스라엘에서는 전국적으로 중산층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이스라엘 정부는 현재 논의 중인 2013~2014년 예산안에서 창업지원을 맡고 있는 경제부 수석과학관실(OSC)의 예산을 약 30% 삭감하고 중소·중견기업 육성 및 중산층 지원 예산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우용 대한무역투자공사(KOTRA) 텔아비브 무역관장은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의 창업 생태계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이스라엘 정부는 한국의 중소·중견기업-대기업 생태계를 부러워 한다"면서 "창업국가라는 화려한 겉모습에 반해 무조건적 따라하기에 나서기 보다는 그 강점과 약점, 현상과 이면을 제대로 보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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