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주식시장의 예언자들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 2013.08.16 10:34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38>

최근 어느 재벌그룹 회장의 재판 과정에서 비자금 운용의 핵심 인물로 한 역술가가 지목돼 화제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이 보도를 접하고 새삼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

그런데 꼭 100년 전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었다. 당대 최고의 금융재벌 총수였던 J.P. 모건이 에반젤린 애덤스라는 여성 점성술사를 찾아간 것이다. 이미 70대 중반으로 접어든 J.P. 모건은 전해(1912년)부터 월가를 뜨겁게 달군 푸조 위원회의 독점금융 청문회에 불려 다니다 결국 애덤스에게 자신의 사업 운을 물어본 것이다.

점괘는 좋았다. 그의 별자리가 아주 좋은 위치로 이동 중이었다. 알다시피 J.P. 모건의 사업은 이 점괘처럼 계속 번창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해주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그의 운명이었다.(J.P. 모건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13년 3월31일 타계했다.)

대개의 주술사들이 그렇듯 애덤스 역시 다가올 대재앙을 주로 예언했는데 J.P. 모건을 비롯해 당시 철강왕으로 불렸던 찰스 슈왑 같은 유명 기업인들을 단골손님으로 만나면서 점차 월가에까지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다 1920년대 대강세장이 펼쳐지자 ‘월가를 이기는 검증된 시스템(A Guaranteed System to Beat Wall Street)’이라는 뉴스레터를 발행했다.

한 권에 20달러, 그러니까 요즘 돈의 가치로 환산하면 500달러쯤 했던 엄청난 구독료를 받은 이 뉴스레터에는 순전히 점성술에 기초한 그녀의 주가 예측이 실렸는데 꾸준히 주가 폭등을 외쳐대는 애덤스를 사람들은 "월가의 기적"으로까지 불렀다. 1929년 10월 주식시장 붕괴와 함께 애덤스의 명성도 금이 가고 그녀의 점성술도 잊혀졌지만 1931년 죽기 직전 그녀는 반드시 주가가 다시 오를 것이라는 마지막 예언을 남겼다.(믿거나 말거나 그녀의 이 마지막 점괘는 10년 뒤 적중했다.)

내일의 운세를 보듯 시장의 앞날을 점치려는 사람들에게 내가 자주 들려주는 얘기가 있다. 성장주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피셔의 일화다. 그의 저서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의 서문에 아들 케네스 피셔가 남긴 것인데, 1970년대 초 두 사람이 한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첫 날 저녁식사가 끝나자 주최측에서 주가지수 맞추기 대회를 한다며 참석자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다음날 다우존스 지수를 가장 가깝게 맞춘 사람에게 당시 꽤 고가였던 컬러 텔레비전을 상품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다우지수는 900포인트 정도였고 참석자들은 당연히 2~3포인트쯤 변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들 케네스 역시 5포인트 오를 것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필립 피셔는 무려 30포인트 상승이라고 써냈다. 놀라워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껏해야 1% 이내의 변동폭을 예상할 것이고 다우지수가 그렇게 움직인다면 0.1포인트의 차이로 1등이 결정될 텐데 그건 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3%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만일 시장이 진짜로 그렇게 움직인다면 웬만큼 오차가 있어도 1등을 차지할 수 있다.

다음날 다우지수는 26포인트 상승했다. 1등은 당연히 필립 피셔였고 2등은 그와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사실 그는 아무것도 몰랐었지만, 그날 시장이 끝나고 나자 자연스럽게 주가가 폭등한 이유가 알려졌다. 참석자들은 그의 놀라운 예측 능력에 감탄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주식시장에서 예언자의 비밀은 간단하다. 좀 무모해 보여도 과감한 예측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오래 기억하니까. 게다가 이쯤 되면 운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확한 예측을 내놓을 것이라고 스스로 믿게 된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주식시장에도 돌팔이 약장수들이 넘쳐나는데 이들이 특히 활개를 치는 때가 바로 강세장이다. 시장이 좋다 싶으면 사람들 귀가 얇아지는 것이다. 나는 그럴 리 없다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증권회사까지 계열사로 거느린 재벌 총수도 넘어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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