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은 2차대전 중 러-독 간 주요 전장을 묘사한 벽화로 꾸며져 있다. 특히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전투를 다룬 전시관의 벽화는 그 치밀한 필치는 물론 강렬한 역사적 사실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오래 잡아 끈다.
2차대전 당시 소련을 침공한 히틀러는 레닌그라드를 밖에서 포위했다. 보급선을 끊고 집중 포격하면 금방 항복할거라 예상한 것이다. 그런데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포탄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극한의 상황에서 하루 100g의 빵을 배급받으며 900일간 기적적으로 도시를 사수한다.
보는 이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벽화 한 켠에 묘사돼 있는 음악회와 발레공연 홍보 벽보다. 언제 포탄이 날아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배고픔과 싸우면서도 공연을 올리고 또 즐겼다. 러시아인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의 이 문화적 자부심을 승전만큼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우리나라에 알려지는데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문화 예술이 유럽에서도 대단히 높은 수준에 속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푸쉬킨이나 차이코프스키, 톨스토이 등은 물론이고 서방으로 망명한 대문호와 화가들도 부지기수다.
특히 볼쇼이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발레는 원조인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그것보다 한 단계 위다. 볼쇼이는 관객들에게 발의 움직임을 잘 보여줄 수 있도록 무대를 15도 기울여 극장을 지었다. 기울어진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기술은 차치하고라도 그 발상 자체로 이미 한 차원이 높다.
2차대전 전승기념관과 볼쇼이 발레는 2차 세계대전 승전으로 대표되는 근대사와 '문화'의 두 축이 지금의 러시아라는 나라를 만들었음을 잘 보여준다. 현지 관계자는 "푸틴 대통령이나 지하자원, 불곰 정도로 러시아를 설명할 수 없음을 역사와 문화가 웅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19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된 G20 재무장관회담에 이어 오는 9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G20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이 레닌그라드,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다. 푸틴과 양자회담도 계획되고 있다. 러시아 극동개발에 힘입어 FTA(자유무역협정)를 포함한 포괄적인 경제협력을 계획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박 대통령의 방문이 좋은 기회다.
현지 관계자들은 경제협력의 좋은 파트너로 단단한 양국관계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먼저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역시 전쟁이라는 격동의 근대사를 겪고 남다른 문화적 자부심을 지닌 한국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강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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