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사고가 국내에 알려진 것은 새벽 2~3시 무렵 CNN방송을 통해서였다. 곧이어 신문사 국제부의 ‘와이어(해외 통신사들의 기사가 종이로 출력되는 단말기)’를 통해 AP, AFP 등의 기사가 숨 가쁘게 쏟아졌다. 사회부, 국제부 기자들이 모두 호출돼 ‘호외판’ 신문을 찍었고, 우리 국민들은 아침이 되어서야 이런 호외와 방송을 통해 비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날 아침비행기를 타고 괌에 도착한 취재팀은 기사송고와 본사와의 연락을 위해 전화기부터 확보해야 했고, 사고관련 소식은 하루에 한번뿐이던 미 교통안전위원회(NTSB) 브리핑에 의존해야 했다. NTSB가 며칠 후 사고현장을 공개하기 전까지 우리 국민들은 외신에 나온 사진만 반복해서 봐야 했다.
우리 국민이 접한 사고관련 뉴스는 늘 한발 늦었고, 뉴스의 소스도 조사당국과 유족으로 한정돼 있었다. ‘현장(당국과 유족) → 신문 혹은 방송 → 국민’의 일방적 경로뿐이었다.
2013년 7월6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나기 사고. 특파원으로서 사고 현장을 접하게 되면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재난 현장도 아니고, 탑승객 가족의 모습도 아니었다. 실체가 없는 어떤 것이다. 바로,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라는 소셜미디어.
그러자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은 소셜미디어를 인용해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은 부사장이 트위터에 올린 사고현장 사진은 CNN과 NBC 등이 즉시 방송으로 내보냈다. 사고기에 타고 있던 아버지가 보낸 사진을 받아, 공항으로 가던 딸이 트윗을 하자, 이 역시 CNN 등이 보도에 인용했다. 발생과 사고현장 실시간 스케치, 그리고 사진은 소셜미디어의 특종이었다.
이어 미국의 거의 모든 신문방송사들은 트위터와 유튜브에 계속해서 올라오는 사진과 동영상들을 “소셜미디어에 발췌했다”면서 자사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소셜미디어가 전통미디어의 뉴스 소스가 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셜미디어의 뉴스를 그대로 다시 전한 셈이다.
트위터에는 이윤혜·김지연 승무원의 헌신적 활동에 대한 탑승객들의 목격담이 이어졌고, 사고현장에서의 이들 승무원의 사진도 올라왔다. NTSB 조사팀이 워싱턴 본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도착하기도 전에 관제탑과 조종사간 대화록이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교통전문기자를 지냈던 미체린 메이너드는 포브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번 사고는 트위터와 유튜브 시대에 발생한 첫 번째 주요 항공기 사고”라고 평했고, 시카고트리뷴 출신으로 디지털미디어를 연구하고 있는 진 퀸은 “이번 사고만큼 미디어의 붕괴를 잘 보여주는 케이스 스터디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전통미디어가 헉헉거리며 소셜미디어를 팔로잉해야 했던, 전례 없던 광경이었다. 기자의 펜과 카메라보다 시민의 스마트폰이 더 강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괌 사고와 샌프란시스코 사고. 공교롭게도 두 현장을 모두 취재하게 된 기자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16년 차이지만, 정보의 전달방식은 마치 수백 년의 차이가 나는 듯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되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전통미디어는 어떻게 소셜미디어와 협력을 할 수 있을지. 아니, 시대와 기술은 광속으로 빨리 가고 있는데, 세상의 대한 우리의 생각은 변화도 발전도 없이 구태의 모습으로 그대로 있지 않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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