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카트 꽉 채워도 여전히 텅빈 내마음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 2013.07.13 10:17

[노엘라의 초콜릿박스]

오랜만에 대형 마트에 쇼핑을 갔다. 카트를 끌고 다니며 이것저것 채우기 시작했다. 당장 필요한 몇 가지를 사고 나니 카트가 한참이나 비어있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왠지 서운한 맘이 들어 더 살 것이 없는지 매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보다 보니 꽤 쓸모 있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가지고 있으면 내 삶이 더 윤택해 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나는 물건들. 어느덧 내 쇼핑카트는 꽉 채워져 가고 있었다.

라우션버그의 그림 중 <지워진 드 쿠닝의 그림(Erased de Kooning Drawing)>이란 작품이 있다. 이 그림은 그림이라기보다 때가 탄 듯이 보이는 그냥 하얀 캔버스다. 화가란 모름지기 빈 캔버스를 그림으로 채우는 법인데 이 작품엔 그림이 없다. 그는 빈 것을(empty) 창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유명 화가였던 드 쿠닝을 찾아가 그의 그림을 산 뒤 그림을 지워버렸다. 한때 물감, 목탄, 크레용, 연필 등으로 채워져 있던 이 그림은 라우센버그의 한 달 가량 걸린 노력 끝에 빈 캔버스로 돌아왔다. 모두가 캔버스를 채우려 할 때 그는 비운 것이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이제 내 쇼핑 카트는 넘치기 일보 직전이다. 조금 전까지 비었던 바구니가 꽉 채워진 것을 보니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진다. '그 동안 내 마음이 허전했었나?' 그러고 보니 최근 스트레스가 늘어가면서 난 내 안을 무언가 만족스러운 것들로 채우길 바라고 있었던 듯하다. 다시 한 번 찬찬히 들여다보니 일 년에 한번 쓸까 말까한 계절용품에 몸에 좋을 리 없는 군것질 거리 등이 가득했다. 단순히 무언가로 가득 채워보려는 욕심. 그러나 내가 채운 이것들이 과연 나를 만족시켜줄까.


빈 집, 빈 잔, 빈 수레, 빈 자리… 모두 쓸쓸한 느낌이 드는 단어들이다. 비어있음에는 허전함과 외로움이 공존한다. 하지만 비어있다는 건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내기도, 남을 위해 자리를 남겨두는 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고 꽉 차있던 무언가를 비워낸다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고 삶에 대한 회고이기도 할 테다.

마트에서 나오기 전, 난 카트에 꽉 채워 넣었던 물건들을 다시 하나씩 하나씩 제 자리에 내려놓았다. 지워지리란 걸 알면서 선뜻 라우션버그에게 그림을 내준 드 쿠닝의 마음도 그랬을까.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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