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너머 獨으로 간 신선들, 100년 뒤 고국으로···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 2013.06.29 07:30

구한말 작품 <해상군선도> 한국으로 들고 온 '바바라 미셸 예거후버'

<해상군선도 10병풍> 작자미상, 비단에 채색, 417x153cm /사진제공=서울옥션
3억원부터 시작된 경매, 1000만원 단위로 금액이 높아질 때마다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5억원이 넘어서자 경매사는 2000만원 단위로 호가했고, 누군가는 꾸준히 패들(번호표)을 들었다. "6억 6천! 더 안 계십니까? 네~ '해상군선도', 6억 6천에 낙찰 되었습니다!" 1분 남짓 팽팽했던 시간이 명쾌한 망치 소리와 함께 끝나고 경매장에는 박수가 터졌다.

지난 26일 서울옥션 평창동 본사에서 열린 '6월 미술품 경매' 현장,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 작품으로 관심을 모았던 <해상군선도>가 낙찰되는 순간이다.

"한국의 신선들이 한국에 돌아오게 되어 정말 기쁘고, 저는 오늘 눈물을 참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유찰될까봐 어제는 잠이 오지 않더군요."

구한말 작품인 <해상군선도>의 소장자로 이날 경매현장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한 독일인 바바라 미셸 예거후버 여사(Babara Michel-Jaegerhuber·91)는 작품이 낙찰되자 감격에 찬 촉촉한 눈을 감추지 못한 채 이같이 말했다.

10폭짜리 병풍인 이 작품이 어떻게 독일까지 건너갔고, 오랜 세월이 지나 고국에 돌아오게 된 걸까.

한국 최초의 무역회사 세창양행의 창업주인 독일인 무역업자 칼 안드레아스 볼터(Carl Andreas Wolter)는 고종에게 그림을 비롯한 여러 품목을 하사받았는데, 그 중에 이 병풍도 포함됐다. 병풍을 받은 시점은 1890~1908년 사이로 추정된다. 독일에 돌아간 후 딸에게 병풍을 물려주었고, 다시 외손녀인 미셸 예거후버에게 건네져 보관됐던 것이다.

신선들이 군집해 있는 그림을 뜻하는 '군선도'의 대표적인 유형인 '해상군선도'는 파도와 구름을 배경으로 한 신선그림이다. 가로 417cm, 세로 125cm 크기의 이 병풍은 왕실에서 하사한 작품 인만큼 당대 최고 수준의 화가들이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바바라 미셸 예거후버 여사 /사진제공=서울옥션
그런데 아흔이 넘은 연로한 몸을 이끌고 이 병풍을 다시 한국에 가져온 사연은 뭘까.

"어머니가 생전에 언젠가 반드시 그림을 한국으로 돌려보내서 한국인들이 많이 볼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어요. 물론 어머니의 유언이기도 했지만, 저 역시 미술을 전공한 화가로서 그림을 제 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올해는 한독 수교 130주년이 되는 해라서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한손에는 지팡이,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하긴 해도 건강해 보였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옷매를 여미며 "나 지금 괜찮아 보이냐"고 묻기도 했다. 보청기에 의지했지만 질문을 모두 알아듣고 또렷한 발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에선 강인함 마저 느껴졌다.

"저희 어머니는 어린 시절 20년 정도 한국에 사셨어요. 어머니는 경복궁을 걸었던 이야기며 늘 한국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에 저에게 한국은 무척 가까운 나라죠. 한국말을 진작 배웠더라면 한국과 한국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배우기 시작할까 봐요."

그는 화가로서 이 그림의 미적 가치도 높게 평가했다. "누가 그렸는지 모르지만 세밀하게 그린 선은 무척 아름답고 우아하다"며 "분명 마이스터(명인)가 그렸을 것"이라 했다.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도 지금껏 3대에 걸쳐 이 병풍을 지켜왔다는 그의 눈빛에서 예술에 대한 경외심, 또 한국에 대한 남다른 마음이 묻어났다. 그는 이 작품이 꼭 한국에 돌아와야 하는 이유를 거듭 강조했다.

"이 그림은 유럽 작품이 아니잖아요. 한국 작품은 한국에 있어야죠. 보고 싶을 땐 얼마든지 마음먹고 비행기를 타고 올 수 있으니까요.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은 중요합니다. 독일 동화책은 늘 이렇게 끝나요. '그들이 죽지않았다면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라고. 아마도 이제 이 병풍의 신선들은 고국에서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요?"

베스트 클릭

  1. 1 김호중 팬클럽 기부금 거절당했다…"곤혹스러워, 50만원 반환"
  2. 2 '공황 탓 뺑소니' 김호중…두달전 "야한 생각으로 공황장애 극복"
  3. 3 '보물이 와르르' 서울 한복판서 감탄…400살 건물 뜯어보니[르포]
  4. 4 "술집 갔지만 술 안 마셨다"는 김호중… 김상혁·권상우·지나 '재조명'
  5. 5 "한국에선 스킨 다음에 이거 바른대"…아마존서 불티난 '한국 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