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사라지는 연세대 '공학원 순두부'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 2013.06.22 14:39

대학명물 '연대순두부' 28일 '장사 끝'…임대료 인상에 학생수 감소 '응찰 포기'

↑연세대 공학원 구내식당 '평화의 식당' 측은 지난 20일 식당 입구에 영업 종료 공지문을 붙였다. /사진=박소연 기자
추억의 한 자락에는 맛과 냄새도 자리잡고 있다. 뭉근히 끓어오르는 순두부 맛은 가격 대비 '최고'였다. 술 마시고 쓰린 속을 붙잡고 찾아간 곳도 '거기'였다. 졸업 후에도 청춘이 녹아있는 추억의 맛을 잊지 못해 가끔 들렀다. 하지만 이제 '거기'가 없어진다. 기억의 편린 속에는 순두부와 함께 한 청춘이 녹아 있는데도.

◇30년 역사의 ‘공학원 순두부’
서울 연세대학교 30년 전통의 '공순이'(공학원 순두부)가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 22일 연세대 공학원 사무국에 따르면 연세대 공학원 지하 1층 구내식당 ‘평화의 집’은 오는 28일 문을 닫는다.

지난 21일 오전 11시. 시험 기간이지만 연세대 ‘평화의 집’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청춘들은 식당 입구에서 발길을 멈췄다. "여기 없어진대." "진짜? 왜?” “아줌마 여기 없어지면 뭐 들어와요? 서운한데” 식권을 수령하는 학생들은 한 마디씩 했다.

지난 20일 '평화의 집'은 영업종료 공지를 붙였다. 재학생과 졸업생 사이에 아쉬움의 목소리가 배어났다. 공학원 순두부는 왜 사라지는 것일까.

‘공학원 순두부’ 역사는 지금은 허물어진 옛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이하 연신원) 건물 옆 단층짜리 부속건물 식당 '평화의 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경숙씨(62·여) 일가는 ‘평화의 집’에서 1984년 가을학기부터 연신원 기숙사 학생식당 운영을 시작했다. 연신원 식당이 1991년쯤 문을 닫은 후에도 백씨는 2~3달 후 세워진 한국어학당 건물에서 식당을 이어갔다.

1999년 신축 공학원에서 보증금 12억1000만원에 임대료 없이 ‘평화의 집’ 이름으로 14년간 영업했다. 직원 6명으로 시작한 공학원 식당은 개업 한 달 만에 직원을 12명으로 늘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햇수로 벌써 30년째.

↑연세대 공학원 순두부찌개. 연대생들에게 '공순이'란 애칭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다. /사진=박소연 기자

‘순두부찌개’는 30년 간 굴곡을 겪었다. 연신원 초기시절 일본인 주방장이 개발한 순두부찌개는 주방장이 떠난 뒤 동일한 맛을 내기 위한 갖은 실험 끝에 현재의 맛을 30년째 이어오고 있다.

연신원에서 1984년 900원으로 시작한 순두부찌개는 공학원에서 2300원으로 시작, 29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돈가스와 갈비탕 등 ‘스페셜 메뉴’를 제치고 판매량 3분의 1을 차지하는 1등 메뉴. 백씨는 “보통 잘 팔리면 값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린 거꾸로 생각했다"며 "누구나 좋아하고 먹는 음식이니 최대한 안 올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연신원 시절 당시 학생식당보다 조금 높은 가격으로 ‘부르주아 식당’으로 불렸던 ‘평화의 집’은 세월이 지나면서 학내에서 가장 저렴한 식당으로 통한다. 2년 전 학생식당이 리모델링을 하면서 2000원대 메뉴는 찾아보기 힘들다.

◇임대료 인상vs학생수 감소… 응찰 '포기'
그간 많은 것이 변했다. 백씨는 학교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14년 전에도 공개 경쟁입찰을 실시했지만 당시만 해도 수의계약에 가까웠다. 5년 단위 '제한경쟁 공개입찰'(3년 계약 후 1년 단위 연장)이 적용되고 나서도 백씨는 여러 번 재계약을 했다. 이전에 없던 임대료가 계약 때마다 인상돼 14년 만에 관리비와 합쳐 2000여만원에 육박하게 됐다. 5년 전 재입찰을 받은 후엔 리모델링까지 해야 했다.

14년 전엔 학생식당에 관심이 적었는데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돌자 장기계약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생겼다. 조미료로 음식 질이 떨어진다는 불만도 나왔다.

이번 업체 선정 과정은 투명하게 이뤄졌다. 공학원 사무국은 운영위 방침에 의해 지난 4월 임대보증금 12억1000만원, 1㎡당 월 임대료와 관리비 1820만원 선에 공학원 구내식당 임대 공고를 냈다. 현재 '평화의 집'이 부담하는 가격선.


사업 설명회 때 여러 대기업이 관심을 보였지만 1차 공개입찰엔 기존 임차인 '평화의 집'만 응찰을 했다. 백씨는 제시된 임대료보다 300만원을 낮춰 응찰했지만 단독 응찰이라 무효 처리됐다. 5월 2차 입찰에 아무도 응찰하지 않자 공학원 측은 6월 3차 입찰 때 보증금을 7억원으로 낮췄다. '1식 2000원~4500원 유지'라는 조항도 삭제해 가격대 제한을 풀어줬다. 3차까지 유찰될 동안 사무국 측은 '평화의 집' 측에 협상을 해오지 않았다. '평화의 집'은 응찰을 포기했다.

백씨는 "5년 전만 해도 하루에 3000명이 몰리고 순두부찌개가 1350개까지 팔렸지만 올 봄 신입생 절반이 송도캠퍼스로 옮겨가며 매출이 급격히 감소했다"며 "내년부터 신입생 전원이 송도캠퍼스로 가고 백양로 지하개발공사도 예정돼 있는데 학생 대상이라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더 이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식당은 복지 차원에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현재는 이런저런 비용 부담으로 수익을 내야만 하는 체제"라며 "음식을 더 잘 만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현재 3차 입찰에 응찰한 2개 업체의 서류심사가 끝나 '평화의 집'이 문을 닫는 28일 최종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평균 1500여명의 학생이 찾던 공학원 식당의 영업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30년 간 연세대에서 식당을 운영해온 백경숙씨가 21일 학생들 식권 계산을 해주고 있다. /사진=박소연 기자

◇30년 '추억' 떠나보내는 아쉬움
30년 간 수많은 학생들이 ‘연대 순두부’를 거쳤다. 비교적 저렴하고 부담 없는 ‘연대 순두부’는 다른 학교 학생들도 '원정'을 가서 먹을 만큼 '대학가 명물'이었다.

순두부가 견딘 세월만큼 추억과 사연도 쌓였다. 연신원 시절 학생이 교수가 돼서 공학원을 찾아왔다. 유학을 떠난 졸업생들이 수십 년 만에 학교를 찾았다가 순두부를 먹고 추억을 떠올렸다.

수십 년 간 카운터에서 직접 학생들을 맞은 백씨는 “다른 아쉬움은 없고 고향 같고 집 같이 정든 학교를 떠난다는 게 서운할 뿐”이라고 했다. 서른 살 '꼬꼬마' 시절 연신원 주방에 들어왔던 한일석씨(59)는 이제 머리가 희끗했다.

“내가 먹는 음식처럼 청결하고 정성스레 만들려고 했죠. 직원들은 30년간 학생들에게 지어주는 밥을 삼시 세끼 같이 먹었고." 한씨의 ‘고집’으로 순두부와 짝궁인 돈가스는 냉동육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고기를 두드려 만들었다.

한씨는 순두부의 인기 비결이 '세월'에 있다고 했다. “아무리 고급식당에서 먹어도 엄마 밥이 맛있지 않나요? 음식 맛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먹으며 입맛에 배는 걸 겁니다. 연대 순두부에 대한 학생들의 애착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는 "30년 간 큰 사고 없이 양심적으로 운영했다는 게 보람이자 자부심"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졸업생들도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해 입사해 학교를 떠난 김모씨(26)는 "공학원 순두부 맛과 냄새에는 새내기가 돼서 선배들과, 선배가 돼서 후배들과, 사랑했던 사람들과, 티격태격 친구들과 함께한 기억이 서려 있다"며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되새길 수 있는 냄새"라고 아쉬워 했다.

문모씨(31)는 “신입생 땐 최고가였는데 10년 동안 밥값이 안 올라 대학원 땐 가장 저렴했다”며 “'한 턱 쏠게' 하며 데려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아쉽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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