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제임스 킨과 주식 고수의 덕목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 2013.06.21 10:30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34>

월가 역사상 최고의 주식 고수를 꼽는다면 누굴까? 지난 200여년 간 혜성처럼 등장했다 바람처럼 사라져 간 전설적인 투자가들을 떠올려본다.

객관적인 성적표나 채점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물음에 답하는 데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1) 합법적으로 활동했을 것. (2) 자기 돈으로 투자했을 것. (3) 평생을 투자에 전념했을 것. (4) 끝이 좋았을 것.

우선 투자든 투기든 불법적으로 했다면 그건 사기꾼이지 고수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내부자 거래와 주식 물타기를 일삼았던 다니엘 드루나 자기가 규합한 작전 세력까지 배신하곤 했던 제이 굴드는 아웃이다.

남의 돈이 아니라 자기 돈으로 목숨 걸고 투자하는 것, 그리고 시장에 전념하는 자세는 고수의 기본 덕목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자금이나 뮤추얼펀드를 운용했던 필립 피셔와 존 템플턴 같은 펀드매니저들은 빼야 한다. 한창때 시장을 떠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버나드 바루크와 조지프 케네디도 탈락이다.

마지막으로 투자의 세계에서는 끝날 때까지는 절대로 끝난 게 아니다. 현란한 투자 기법을 선보이다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제시 리버모어는 여기서 걸리고,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워런 버핏 같은 현재진행형 투자가들도 제외된다.

그래도 아직 많이 남겠지만 내가 답한다면 “월가의 백여우(Silver Fox)”로 불렸던 제임스 킨(1838~1915)을 꼽을 것이다. 그는 월가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명석한 두뇌의 투자가였고, 주식 거래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네 가지 기준은 당연히 모두 충족시켰다.

킨은 시장의 타이밍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냈다. 그는 자신이 매수할 종목을 선정해 물량을 확보해가는 동안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종목을 인기주로 만들어 대중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가 사들인 종목은 주가가 올라갈수록 수요가 늘었고, 그는 자신이 매수했던 물량을 어렵지 않게 처분하면서 두둑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는 특히 주로 강세장에 승부를 건 낙관주의자였는데, “곰(약세 투기자)이 5번가의 고급 맨션을 짓는 것 봤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거부가 된 다음에도 최선을 다해 주식 투자를 하는 까닭을 묻자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샤냥개는 천 번째 토끼라 해도 열심히 좇지 않는가? 산다는 게 결국 투기다. 투기 마인드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다.”

킨은 시세조종의 달인으로 불렸는데(그가 활동하던 시절엔 시세조종 행위가 불법이 아니었다) 시세조종을 하더라도 철저히 저평가된 종목만 대상으로 했다. 현재 주가보다 훨씬 높은 내재가치를 지닌 주식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당시 작전세력이 선호했던 이리 철도 같은 허섭쓰레기 주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킨의 수완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그에게 시장조성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미국 주식시장 사상 최초의 ‘10억 달러’ 기업 공개였던 U.S. 스틸이 대표적이다. J.P. 모건을 비롯한 당대의 거물들이 보유지분을 처분하기 위해 부탁한 것이었다. 1901년 봄 그는 U.S. 스틸 주가를 55달러까지 끌어올렸고, 그가 부탁 받은 물량을 무난히 처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그가 손을 떼자 U.S. 스틸은 1903년에 10달러까지 떨어졌다.)

그 역시 여러 차례 좌절을 겪었는데, 큰 손실을 보고 절치부심하던 시기에 바로 이렇게 남의 부탁을 받고 시세조종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럴 때도 그는 따로 대가를 받는 대신 자기도 함께 참여해 거기서 투자 수익을 얻었다.

킨은 영국 태생의 가난한 이민자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광산에서 번 돈 몇 백 달러로 주식 투자를 시작해 2000만 달러의 유산을 남겼다. 바루크의 자서전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아주 힘든 하루를 보낸 킨이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얼마나 상심이 크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때로는 이렇게 끔찍한 날을 겪는다네. 그러나 늘 다시 회복했어.”

그는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돈을 잃은 적은 있었지만 어떤 경우에도 용기는 잃지 않았다. 진짜 고수의 제일 중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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