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 홀리데이로 2년간 1억원 모은 사연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 2013.06.29 06:00

[줄리아 투자노트]

아이가 갈라파고스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창안한 곳, 바다사자와 갈라파고스 거북이, 바다 이구아나, 알바트로스, 물감으로 칠한 듯한 파란 발을 가진 부비새가 사는 곳.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갈라파고스에 갔다가 세 명의 한국 청년을 만났다. 갈라파고스 군도 가운데 산크리스토발 섬으로 가는 배 안이었다.

세 명의 한국 청년은 2년간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한 뒤 지난 5월초부터 뉴질랜드를 거쳐 중남미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4개월 반가량 여행한 뒤 한국에는 8월 중순에 귀국 예정이라고 했다.

나이는 28세에서 30세로 세 명 모두 대학을 졸업한 뒤 번듯한 기업에 다니다 그만두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호주로 떠난 이유를 물으니 한 청년이 이렇게 답했다.

"그냥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보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뭔가를 이루고 싶었어요. 그게 저에겐 통장에 1억원을 찍는 것이었구요. 호주에서 2년간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니 1억원이 모이더라구요. 그 동안 어머니가 호주에 와서 여행도 함께 했구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로 가서 하는 일이란 목장이나 공장에서 하는 육체노동, 또는 청소 같은 이른바 3D(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업종이다. 그 청년들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급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아 허리띠 졸라매고 사니 2년간 1억원 모으는게 가능했다고 한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경력으로 쌓이지도 않고 한국 기업에서 인정 받지도 못하는 목장 일, 공장 일, 청소 등을 하며 지낸 2년이 1억원 모은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도 들었다. 학벌, 집안, 경력 따지는 팍팍한 한국 사회에 잘 안착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1억원이라고 해봤자 서울에서는 전세 하나 얻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돈 아닌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데 한 청년이 이런 말을 했다.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 가면 한국 사람들이 천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호주 친구와 얘기하다 너희 나라에서는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러자 그 친구는 빨간 색과 파란 색 중에 어떤 색이 더 좋은 색이냐고 되묻더군요. 그러더니 색깔에 좋은 색, 나쁜 색은 없고 단지 내가 좋아하는 색과 싫어하는 색이 있는 것처럼 직업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구요."

이 청년들이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2년간의 고된 노동 속에서 다져진 의지와 1억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워 달성한 추진력, 실천력을 보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잘 적응하며 잘 살아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최소한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을 배경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엘리트들보다는 훨씬 더 생동감 넘치는 삶을 살지 않을까 싶었다.

어려서부터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 좋은 직업과 나쁜 직업의 구분을 고정관념처럼 배우며 자라나 좋은 대학을 거쳐 좋은 직업을 가지면 근거 없는 자만심에, 나쁜 대학을 거쳐 나쁜 직업을 가지면 불필요한 열등감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보다야 훨씬 더 건전한 삶을 살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선호의 차이가 있을 뿐인 대학과 직업에 좋고 나쁜 선악의 구분이 있다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우습다. 그 사실을 배운 것만으로도 갈라파고스에서 만난 세 청년의 2년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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