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인데 오후 3시에 칼퇴근, '꿈의직장' 어디?

머니투데이 이현수 기자 | 2013.06.11 05:45

[정규직 시간제, 대한민국의 실험-1] 시간제 채택 기업 가보니

편집자주 |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내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4대 보험 등 각종 처우를 정규직에 준하게 제공하는 '정규직 시간제'를 말한다. 비정규직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노동계의 우려는 이해가 가지만 '남성 중심의 전일제 일자리'라는 프레임을 바꾸지 않고선 일과 가정의 양립도, 고용률 70% 달성도 힘든게 현실이다. '정규직 시간제'의 현주소, 정착 가능성, 성공을 위한 조건을 짚어 본다.

에어코리아에 근무하는 김지민씨(29)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3시 퇴근한다. 김씨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경력단절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됐다. 정규직인만큼 자부심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임신 5개월에 접어드는 곽은아씨(31)는 오후 3시면 집으로 퇴근한다. 휴식을 취하면서 출산을 준비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정기검진이 있는 날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 전일제로 일하느라 병원을 가지 못해 마음 졸였던 세 달 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곽씨의 직장은 인천국제공항 내에 있는 에어코리아. 탑승객 카운터 수속과 여객 운송에 관한 사무를 보는 곳이다.

곽씨는 정규직이지만 직장 동료들과 달리 주 30시간만 일한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해 근무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똑같이 4대보험에 가입돼있고, 시간당 근무수당도 같다. 다만 줄어드는 시간만큼 임금을 덜 받을 뿐이다. "정규직과 처우가 같고, 원하는 시간동안만 일을 하기 때문에 경력단절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평일에 병원에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좋습니다."

에어코리아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한 것은 지난 2011년. 업무 특성상 전체직원의 70%가 여성인 이곳은 직원들의 경력단절 문제가 큰 고민이었다. 본격적 업무에 들어갈 때쯤 결혼과 임신, 육아 문제가 생겨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이 반복됐다.

"직원들이 출산 육아 때문에 사직하니까, 또다시 신입을 뽑아 가르치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한 뒤로는 회사는 한 번 고용한 사람을 계속 고용하니 좋고, 직원은 일하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어 좋아요. 직원이 원하는 경우엔 언제든지 다시 풀타임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우리 삶에 성큼 다가와 있다. 풀타임 근무는 아니지만 아르바이트도 아닌 형태로, 시간당 근로수당이 풀타임 근로자와 같고 4대보험에도 가입돼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를 "수요에 맞고(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고), 차별이 없고, 4대보험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이 보장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72개 사업장의 866명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일했고, 올해는 198개 직장 699명이 선택했다. 고용부는 2017년까지 목표로 세운 238만개 일자리 중 93만개를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만들어 고용률 70%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곽씨같이 임신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근무시간을 줄인 경우도 있지만, 자기계발을 이유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한 경우도 있다. 에어코리아의 또 다른 직원인 김지민씨(29)는 어학실력을 기르고자 했다. "처음엔 풀타임 정규직으로 입사했지만 공항업무를 보다보니, 영어실력이 부족하단걸 느꼈습니다. 풀타임으로 근무할 때는 공부를 해야한다고 마음만 먹었지 쉽지 않았어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하고 오후 3시에 퇴근하니 여유가 생겼고요, 요즘은 욕심이 생겨서 일어도 공부합니다. 운동할 수 있는 시간도 생겼어요."

이들이 근무시간을 줄일 수 있었던 데는 회사의 특수성도 한 몫을 했다. 공항 업무 특성상 업무 시간대별 편차가 심했기 때문이다. 에어코리아 관계자는 "비행기 이륙 시간에 따라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가 가장 바쁘다. 출근해서 수속하고 정리를 하면 5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직원들이 주 40시간 근무를 채우기 위해 퇴근시간까지 기다리는 일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고심끝에 도입하게 된 제도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였다. 2011년 정부로부터 10명을 승인받아 시행해보니 효과가 났다. 이듬해엔 20명을 승인받았지만 정부 지원금과 상관없이 86명을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채용했다. 올해는 50명을 승인받아 채용중이다. 2011년 1인당 월 40만원(1년)이었던 지원금도 올해는 60만원으로 늘어났다.

물론 시간제 일자리 수혜자는 만족하지만, 한편으론 업무 성격에 따라선 풀타임 근로자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상 임금을 깎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시간제'가 퇴근하면 남은 업무는 '풀타임'이 처리하라는거냐는 불만도 있을 수 있다. 실제 한 항공사는 2011년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했다 직원들 간 마찰로 실패를 맛봤다. 에어코리아는 제도 도입 전 기존 직원들의 반발을 예상하고, 직원 누구나가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장시간 근로를 지양하다보니 채용을 더 늘려야하는 부담도 있다. 에어코리아의 경우 지난 2011년 대비 5~10% 채용을 확대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법 하지만, 직원 개개인의 효율이 올라 외부 평가가 좋아지는 효과도 봤다.
이경희 에어코리아 인사관리 팀장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도입 이후엔 대기시간이 없어져 직원들의 업무 피로도가 떨어졌고, 고객인 외국항공사들 평가도 더 좋아졌다"며 "직원 개개인의 집중도가 올라가면서 서비스 질도 같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김씨는 "삶에 여유가 생겼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자기계발할 시간이 있으니 업무시간엔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된다"며 "급여를 더 받고 싶을 때 다시 풀타임 전환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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