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룡감독의 한국적 사고와 불문율 논란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2013.05.25 10:03

[장윤호의 체인지업]

↑지난 21일 광주 KIA전에 앞서 김응룡 감독은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을 꼽아달라고 하자 "올해는 초반 독주하는 팀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삼성이 이러다 다시 우승할 수도 있겠다 싶다. 9개 팀 가운데 가장 전력이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 OSEN
프로야구에도 확실하게 문화적 차이가 있다. 야구 역사의 길고 짧음, 프로 의식의 정도나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프로야구, 그리고 메이저리그에는 그들만의 ‘예의(禮儀)’나 ‘불문율(不文律)’이 존재한다.

류현진이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거가 됐다고 해서 단 기간에 메이저리그의 예의와 불문율을 알 수는 없다.

박찬호는 LA 다저스 시절 처음으로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1996시즌 6월 시카고 컵스전에서 승리 투수가 된 날, 자신이 메이저리그에 복귀하면 입겠다고 아껴둔 양복이 절단 당한 적이 있다.

동료들이 축하의 신고식을 해준 것이었는데 박찬호는 라커룸에서 의자를 집어 던지며 흥분해 취재 기자들까지 혼비백산했다.

그는 2009년 1월 방송에 출연해 “당시가 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고생한 후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첫 날이었다. 그런데 양복을 입으려고 하니 옷이 반팔과 반바지로 잘려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데뷔나 좋은 일이 있을 때 양복을 잘라 입는 관례를 몰랐다.”고 밝혔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한 짓으로 오해를 한 것이며 축하의 세리머니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만약 양복 절단 신고식이 열리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8년 만에 현장에 복귀한 한화 김응룡감독(72)이 21일 광주 구장에서 열린 KIA전에 앞서 ‘이러다 삼성이 우승하겠는데’라며 삼성의 3연패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OSEN’이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김응룡감독은 선두권의 넥센에 대해 역전승을 이끄는 끈질긴 야구를 한다고 칭찬했고 KIA는 부상을 우승 변수로 꼽았다. 경기 전 기자들과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을 꼽아 달라’고 하자 편하게 대답한 것이었다고 한다.

한국프로야구 문화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질문에 친절한 대답이 분명하다. 그런데 만약 메이저리그라면 어떨까? 일본프로야구였다면 가능했을까.

아직 5월도 지나지 않아 페넌트레이스의 1/3도 안 치른 시점이다. 꼴찌 팀도 차근차근 치고 올라가면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하다.

한화의 감독에게 기자가 우승 후보를 물으면 그 질문 자체부터 실례가 된다. 한화의 감독은 당연히 한화가 우승 후보이고 5월도 안 지난 시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한화 감독으로서 당연히 우승을 목표로 경기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김응룡감독으로부터 우승 후보로 평가 받지 못한 구단들의 감독이나 선수들, 프런트의 기분은 어떨까. 아직은 모든 팀들이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화는 물론 제9구단 NC 다이노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

류현진과 추신수가 투타에서 활약하면서 과거 박찬호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기자들의 메이저리그 취재가 늘어나고 있다.


과거 처음 메이저리그를 취재하던 기자들은 불문율과 예절을 몰라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LA 에인절스 구장에 취재를 왔던 모 기자는 라커룸에서 인터뷰 후 박찬호에게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가 거절당하고 매우 기분 나빠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라커룸에서는 스틸 카메라를 사용할 수 없고 선수에게 사인이나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금지돼 있다. 기자는 그 불문율을 몰랐던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현역 감독에게 다른 팀이나 선수에 대해 코멘트를 요청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규정이나 규약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불문율’이다. 질문을 하면 감독은 즉시 얼굴색이 달라진다. 왜 다른 팀에 대해 자신에게 묻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감독이나 선수, 프런트가 리그에 대해서나 타 팀 관련해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평가나 언행을 범하면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징계를 받게 된다.

지난 5월7일 LG의 김기태 감독과 넥센 염경엽 감독이 잠실구장서 열린 3연전을 앞두고 경기 전 만나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광주일고 동기생 친구들이다.

5월19일에는 KIA 김진우와 LG 류제국, 두 선발 투수가 ‘친구 간의 선발 맞대결’을 앞두고 경기 전에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LG 류제국은 덕수정보고를 졸업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 탬파베이에서 2007시즌 1승2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출신인데 비록 고교시절 라이벌이자 친구였지만 한국 프로 데뷔전을 앞두고 상대 팀 선발 투수를 만났다는 것은 의외였다. 유니폼을 입은 상태라면 위의 두 경우 모두 메이저리그에서는 금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9년 현 넥센의 김병현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박찬호가 소속돼 있던 같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의 LA 다저스와 뱅크원 볼파크(현 체이스 필드)에서 처음으로 경기를 하게 됐다.

선발 대결도 아니고 단순히 팀간 경기였다. 박찬호를 취재하던 특파원들은 이들이 처음 메이저리그에서 만나는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잔뜩 긴장하고 사진 기자들은 망원 렌즈로 만반의 촬영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들은 경기 전 훈련 교대 과정 때 외야에서 잠시 인사를 나누었을 뿐 그것으로 끝이었다. 박찬호는 이에 대해 “메이저리그에서는 아무리 한국인들의 만남이라고 해도 경기를 앞두고 상대 선수를 만나는 것은 아주 조심해야 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구장이 전쟁터이고, 유니폼은 군복과 같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유니폼을 입었다면 경기 전 상대 감독을 찾아가거나 선수를 만나는 것은 금지돼 있다. 불문율이다. 물론 사복으로 갈아입고 사적으로 만나는 것은 자유롭다.
과연 한국적인 사고는 무엇이고 진정한 프로 의식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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