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내 오디오엔인터랙티브 미디어랩(AIM, Audio & Interactive Media Lab)은 국악 대중화를 위해 거문고 소리를 컴퓨터로 합성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이목을 끌고 있다.
고성능 컴퓨터와 스마트기기의 등장과 함께 격심한 변화를 맞은 분야는 단연 음악 산업이다. 실제 악기를 전문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던 모습은 이제 옛 일이 됐다. 작금의 뮤지션들은 컴퓨터로 악기 소리를 재현할 수 있는 '가상악기'(virtual instrument)를 통해 집에서 음원을 직접 제작하는 추세다.
하지만 국악기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기존 서양악기에 비해 가상악기 개발이 부진한 편이다. 때문에 국악 보급과 대중화에 신선한 대안을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AIM 대표인 여운승 교수는 "국악기는 지금까지도 스튜디오에서 실제 악기를 가지고 녹음을 해야 할 정도여서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연주자 인건비를 비롯해 스튜디오 대여료 등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또 "아마추어 또는 일반인들은 UCC나 홈 레코딩 앨범 등을 제작하는 데 있어 국악기 소리를 거의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태평소 소리를 집어넣어 이목을 끈 바 있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같은 음악이 앞으로 나오기 위해선 국악 가상악기 소프트웨어(SW) 제작·보급이 필요하다. 물론 그동안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 국악 가상악기 SW는 이미 녹음된 소리를 재생하는 PCM(pulse code modulation) 방식이라서 특유의 국악기 소리를 자유롭게 연출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다시 말해 같은 악기라도 실력파 연주자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듯, 가상악기도 미묘한 연주 차이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PCM 방식은 연주자의 미세한 표현의 차이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 누가 연주해도 동일한 결과를 들려주게 된다.
특히 가야금과 거문고가 서양 현악기와 구분되는 점은 다소 굵고 격렬한 떨림음인 농현(弄絃, 왼손으로 줄을 짚고 흔들어서 여러 가지 꾸밈음을 내는 기법)에 있다. 표현이 일정치 않고, 그 변화의 폭이 매우 동적인 표현기법이다. 따라서 녹음된 악기 소리를 그대로 쓰는 기존 PCM 방식의 가상악기는 다양한 소리를 만드는 데 한계가 분명했던 것.
이에 따라 AIM은 '물리적 모델링'(physical modeling)과 디지털 도파관 기반의 음원합성(digital waveguide synthesis) 기법을 사용, 컴퓨터에서 국악기의 다양한 소리를 실시간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상악기 시스템을 개발했다.
물리적 모델링은 녹음된 소리를 재생하는 형태가 아니라 악기의 물리적 구조 및 조건을 수학적인 모델로 계산한 후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수행해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법을 뜻한다.
서양악기는 관련 연구가 오랜 기간 심도 있게 진행돼 대부분 악기들의 물리적 모델링이 완성된 상태다. 반면, 국악기의 경우 해당 분야 연구가 한걸음도 떼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국악기는 서양악기보다 음의 떨림이 심한 경우가 많아서 기존 서양악기에 적용된 물리적 모델을 국악기에 적용해봤자 같은 효과를 얻기 힘들다.
그래서 농현 등 국악기의 다양한 연주기법에 의한 소리의 차이 및 변화를 실제와 유사하게 묘사할 수 있는 물리적 모델링 기법 연구·개발이 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미세한 차이와 떨림을 표현할 수 있는 가상악기 시스템에 거는 AIM의 기대는 오직 한 가지다. 여교수는 "우리 시스템을 활용해 만든 국악기 앱이 앱스토어 최고 다운로드 앱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