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과 도법, ‘조르바 붓다’가 되어 만나다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장 | 2013.05.06 09:11

[웰빙에세이] 참나에 이르는 두 개의 길, 장자의 길 붓다의 길

시인과 스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그런데 이 시인과 이 스님은 어울린다. 김용택 시인과 도법 스님, 이 두 분은 잘 어울린다. 왜 그럴까?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지만 어느 한 곳에서 인생 고수로 만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스님은 붓다의 길을 걸었다. 길이 헷갈리면 붓다에게 물었다. 죽은 경전이 아니라 살아있는 붓다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시인은? 그는 장자의 길을 걸었다. 실제로 장자에게 묻고 살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의 삶은 온전히 장자다. 그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살았다. 푸른 강물에 삶을 떠맡겼다. 섬진강과 함께 흘렀다.

나는 두 분을 좋아한다. 두 분의 말과 글을 즐기고, 두 분이 사는 법에서 배운다. 하지만 두 분 모두 직접 뵌 적은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순전히 내 생각과 느낌이다. 무례와 결례는 없어야겠지만 오류는 있을 수 있겠다. 그래도 작은 티끌쯤은 선뜻 눈감아 주실 것이다. 혹시 잘못 짚거나 엉뚱하게 살핀 대목이 있어도 웬만하면 씨익 웃으며 혜량하실 것이다. 두 분이 어디 보통 내공인가.

◆ 김용택 vs 도법

먼저 시인 김용택. 그에게 삶은 유쾌한 농담이다. 희극이다. 그는 진메라는 섬진강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고 그곳에서 나이를 먹었다. 자기가 졸업한 초등학교의 선생님이 되어서 38년을 가르치다 물러났다. 교장이 된 것도 아니고 장학사나 교육감 같은 감투를 쓴 것도 아니다. 그냥 시골 분교의 평교사로 종쳤다. 요약해서 별 볼일 없었다. 대신 그는 애들과 놀았다. 시를 썼다. 신나게 놀고, 열심히 썼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섬진강을 제 것으로 꿍쳤다. '섬진강 시인'이 됐다. 가장 인기 있는 '국민 시인'이 됐다.

다음은 스님 도법. 그의 삶은 묵직하다. 농담이 아니다. 어떤 업보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는 제주에서 유복자로 태어난다. 아버지는 1948년 4.3 사태 때 돌아가시고, 집안은 빨갱이 낙인이 찍힌다. 어머니는 미륵신앙에 심취해 신도들을 따라 전주 모악산 근처로 이사한다. 그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열여덟에 출가한다. 모악산 자락의 고찰 금산사에서 송월주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머리를 깎는다. 어머니는 아들의 출가를 반긴다. 그것이 아들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출가 이후의 삶도 가볍지 않다. 힘이 잔뜩 들어간다. 처음으로 든 화두가 '죽음'이다. 그는 이 화두를 품고 강원과 선방에 파묻힌다. 하지만 공부도, 참선도 그의 갈증을 속 시원히 풀어주지 못한다. 왜 사는가? 죽음은 무엇인가? 그는 다시 붓다를 생각한다. 진짜 붓다라면 어찌 했을까? 그 나름의 답은 마흔이 다 되어서야 찾는다. 오로지 자기만의 깨달음에 집착하는 것이 환상임을 깨닫고 주변과 세상을 둘러본다. 수행과 현실, 自利行(자기완성)과 利他行(사회완성)을 따로 나누지 않는 살아있는 깨달음을 구하기 시작한다.

◆ 한 곳에 머물기 vs 쉬지 않고 떠나기

이제 두 분을 비교해보자. 시인은 평생 한 곳에 머문다. 지리산 자락을 감싼 섬진강변이 그의 전부다. 젊은 시절 순창농고를 졸업하고 잠깐 서울로 올라온 적이 있다. 그러나 배를 곯고 코가 빠져 한 달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제 더 이상의 외도는 없다. 시골에서 꼼짝 않고 어머니와 함께 산다.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다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겸 장남 노릇을 한다. 동생 다섯을 뒷바라지해서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도 보낸다.

스님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한다. 고향을 떠나고, 세속을 떠난다. 해인사 강원에서는 4년 과정의 졸업을 네 달 남기고 보따리를 싼다. 이후 송광사, 봉암사, 해인사 선방 등에서 10여년을 선객으로 지낸다. 하지만 이것도 파한다. 화두에 매달리는 간화선의 선풍에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또 한 번 눈총을 받으며 선방을 뛰쳐나온다. 혹독한 6년 고행을 깨고 '중도주의'를 택한 붓다처럼 다시 길을 찾는다. 2004년부터는 생명평화 탁발순례에 나서 매년 전국을 샅샅이 누비며 걷는다.

◆ 일 안 벌이기 vs 일 벌이기


둘째, 시인은 특별히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는다. 무엇이 되겠다고 다짐하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는다. 어쩌다 선생님이 되고, 어쩌다 시인이 된다. 처음부터 그리 되려고 한 게 아니다. 친구 따라 시험을 봤다가 엉겁결에 혼자만 붙어서 선생님이 됐다. 시인도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쓰다가 보니 그리 됐다. 처음에는 자기가 쓴 것이 시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또 어떤 때는 자기가 쓴 것에 자기가 감동했다. 그것이 시가 됐다. 그는 일을 벌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이 이루어진다.

스님은 일을 벌인다. 일을 만든다. 현실에 맞선다. 길을 묻고 따진다. 궁리하고 모색한다. 진리를 실험한다. 부족한 것을 채우고, 잘못된 것을 고친다. 조율하고 조정한다. 불교청정운동을 이끌고, 종단 개혁에 앞장선다. 지리산 실상사를 중심으로 귀농공동체와 대안학교를 만들어 키운다. 도시와 농촌을 아우르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운동을 전개한다.

◆ 좋은 대로 하기 vs 깨달은 대로 하기

셋째, 시인은 자기 좋은 대로 한다. 잘 웃는다. 잘 웃긴다. 웃기고 같이 웃는다. 말 잘한다. 욕도 엄청 잘한다. 잘 삐지고, 금방 풀린다. 철없는 '어른아이'다. 사람이 좋으니 문단에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다. '김용택 사단'이라 할 만하다. 물론 일부러 만든 조직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그는 쉽다. 평범하다. 평범이 지나쳐 비범이 됐다. 다들 비범을 꾀하다 평범이 되지만 그는 반대다. 그는 출세하려고 안간 힘을 쓰지 않았다. 돈과 성공 대신 자연과 동심에 빠졌다. 섬진강과 꼬맹이들을 사랑했다.

스님은 깨달은 대로 한다. 옳은 길을 간다. 그 길은 평탄하지 않다. 평범하지 않다. 어렵다. 생명과 평화의 기치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종단 갈등을 수습하고 개혁하는 일도 그렇다. 카랑카랑한 스님들 사이에서 중도의 지혜를 짜내기는 쉽지 않다. 그는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풀어나간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비심에 입각한 비폭력 평화주의를 지킨다.

◆ 세상을 즐기되 세상에 물들지 않는다

두 분의 길은 정말 대조적이다. 그러나 결국 한 곳에서 만난다. 더불어 잘 사는 평화의 길에서 만난다. 정답게 이웃하는 마을 공동체에서 만난다. 더 이상 훼손해선 안 될 강과 산에서 만난다. 세상을 아름답게 꽃피우는 생명에서 만난다. 두 분은 늦깎이다. 시인은 늦장가를 가고 늦등단, 늦출세를 했다. 장가는 늦었지만 부인은 빼어난 미인이란다. 스님도 마흔 넘어 세상에 나왔다. 두 분은 오랫동안 안으로 자신을 무르익혔다. 지금도 그런 모습으로 산다. 순응하든, 돌파하든 삶을 피해 달아나지 않는다.

참나에 이르는 두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무위의 길이고, 또 하나는 구도의 길이다. 하나는 장자의 길이고, 또 하나는 붓다의 길이다. 붓다보다는 장자의 길이 쉬워 보인다. 물론 그 길이 훨씬 쉽다. 그러나 현실에서 과연 그런가? 다들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기를 쓰고 있다. 상대를 제치고 이기는데 자기 인생을 몽땅 걸고 있다. 이에 휩쓸리지 않고 진짜로 평범해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시인의 虛虛實實은 욕심을 갖고 따라하면 실패한다. 마음을 텅 비워 진짜 '虛'가 돼야 진짜 '實'이 따라온다.

오쇼 라즈니쉬는 그리스인 조르바와 붓다를 합친 '조르바 붓다'를 신인류의 이상형으로 꼽았다. 세속의 즐거움을 한껏 누리는 동시에 세속에 물들지 않는 내면의 평화를 겸비한 사람, 그가 '조르바 붓다'다. 시인과 스님은 그렇게 만났다. '조르바 붓다'가 되어 만났다. 삶을 즐기고 향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어 만났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느 길을 가고 있는가? 장자의 길이든, 붓다의 길이든, 조르바 붓다의 길이든 내 영혼을 다 바쳐서 가고 있는가? 아무 길이나 이길저길 왔다갔다 하며 삶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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