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신용등급 'A')는 다음달 3일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3년물 발행을 앞두고 지난 25일 수요예측을 실시했지만 기관 투자자를 한 곳도 모으지 못했다.
기관 수요가 '0'을 기록하면서 발행 금리도 희망가산금리 53~63bp(1bp=0.01%포인트)의 상단인 63bp로 결정됐다. 수요예측 당일 기준으로 잠정발행금리는 3.19%다. 민평금리보다 10bp가량 낮은 수준임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낮은 금리를 고집하다 체면을 구긴 셈이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낮은 금리 고집보다 김 회장의 공백에 대한 투자자들의 평가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회장이 지난 15일 항소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으면서 총수 부재 상황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게 된 데 따른 시장 불안감이 크다는 얘기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한화그룹의 주력 기업이 건설, 화학 등 최근 업황이 부진한 업종에 몰려 있는 와중에 '총수 부재'라는 악재까지 겹쳤다는 게 문제"라며 "그룹 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투자심리가 얼어붙을 경우 한화그룹으로선 자금조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곤욕을 겪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이미 이런 조짐이 몇차례 엿보이기도 했다.
태양광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한화케미칼은 지난 2월22일 1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수요예측에서 한화와 마찬가지로 기관투자자 수요를 한 곳도 모으지 못했다. 한화그룹의 태양광 사업을 이끌고 있는 사령탑은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한화솔라원은 한화케미칼의 자회사다.
지난 26일 15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한 한화건설도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자 수요가 발행물량의 절반에도 못 미친 700억원에 그쳤다. 이달 중순 자금조달에 나섰던 한화에너지는 신용등급 상향조정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타격에 발행금리가 치솟는 불운을 겪었다.
올 초 기준으로 한화그룹이 올해 차환해야 할 회사채는 1조2400억원에 달한다. 한화건설이 4600억원, 한화가 3500억원, 한화케미칼이 2500억원 등이다.
한 증권사 채권 담당 관계자는 "그룹 총수가 실형을 받았다고 해서 경영에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룹 전체의 큰 그림이나 한화그룹을 둘러싼 시장 분위기에는 좋을 게 있겠냐"며 "이런 때일수록 시장과 눈높이를 맞춰 자금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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