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계]마침표 없는 테러와의 전쟁

머니투데이 차예지 기자 | 2013.04.30 06:00

'제로 다크 서티'...9·11 테러 이후 10년 만의 빈 라덴 제거 작전

편집자주 |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국제 뉴스, 따라잡기 힘드셨죠? [영화로 보는 세계]가 영화 한 편을 통해 최신 이슈를 시원하게 파헤쳐 드립니다. 국제면을 가장 먼저 보는 독자들이 많아질 때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쓰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올해 3월에 개봉한 '제로 다크 서티'에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테러범 고문을 통해 알카에다의 정보를 얻어내는 CIA의 행위에 대해 명확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마치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는 듯이. 사진=제로 다크 서티 홈페이지

"대포 소리 같은 폭발음이 들렸다."
"테러 현장은 전쟁터 같았다. 9·11테러가 떠올랐다."

지난 15일, 올해로 117회를 맞는 유서 깊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대형 테러가 발생했다. 일반인 참가자들이 결승선으로 밀려오던 오후 2시 50분, 보스턴 보일스턴 거리에서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폭탄이 두 차례 터졌다.

결승선 근처에서 친구와 가족을 응원하러 나온 사람들의 환호성은 순식간에 비명으로 변했다. 잘린 팔다리가 여기저기에 흩어지고 길바닥은 다친 사람들의 피로 흥건하게 변했다. 이번 폭발로 3명이 죽고 180여명이 다쳤다.

사건 발생 직후 많은 미국인들은 알카에다 등이 배후인 ‘제2의 9·11 테러’가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국제 테러 조직에 대한 미국의 공포는 여전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에 파견된 여성 CIA 요원인 마야는 자폭 테러로 인한 동료의 죽음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데 집착한다. 사진=제로 다크 서티 홈페이지

그러나 연방수사국(FBI)이 영화 1만편 분량의 주변상황 데이터를 샅샅이 분석한 결과, 용의자들은 체첸공화국 출신의 타메를란 차르나예프(26)와 조하르 차르나예프(19) 형제로 밝혀졌다.

수사당국은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벌인 끝에 보스턴 서북부 워터타운 주택가로 숨어든 조하르를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 형인 타메를란은 교전 중 사망했다. CNN 등 언론이 생중계한 만 하루 동안의 테러 용의자 검거 과정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형제들은 그들을 쫓는 경찰과 영화 속 시가전을 방불케하는 추격전을 벌였다.

형제는 경찰에게 총을 쏘며 도주했으며 차량을 탈취해 차 주인을 인질로 잡고 도망쳤다. 또한 따라오는 경찰에게 폭발물을 던지며 거세게 저항했다. 조하르 검거에는 적외선 카메라가 장착된 블랙호크 헬기와 로봇이 동원됐다.

사건이 종료되자 미국인들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역사적 순간"이라며 "USA"를 외치며 환호했다.

보스턴 테러 사건을 보다 보면 빈 라덴을 암살 작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2012)’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증언을 바탕으로 연방수사국(CIA)가 10년 간의 추적 끝에 빈 라덴을 ‘단죄’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제목인 제로 다크 서티는 ‘자정에서 30분이 지난 시간’을 의미하는 군사 용어이며 미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빈 라덴 은신처에 도착한 시간을 뜻한다.

9·11 테러 이후 미 정보부는 매년 거액의 예산을 들여 빈 라덴을 추적하지만 단서를 잡지 못한다. CIA 요원인 마야(제시카 차스테인)는 이 작전에 투입돼 파키스탄에 발령받자마자 알카에다 조직원을 고문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처음에 고문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하던 마야도 폭력적으로 조직원을 심문하는데 익숙해진다. 영화 속 TV에 등장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고문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연설을 한다. 하지만 CIA 요원들은 그 장면을 묵묵히 바라만 볼 뿐이다.

한편 테러리스트의 자폭 테러로 친한 동료를 잃은 마야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급기야 자신도 테러리스트의 블랙리스트에 올려 출근길에 총격을 받았으나 간신히 살아남는다. 이제 마야는 빈 라덴을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불타 오른다.

빈라덴 추적 10년 만에 마야는 마침내 목적을 이룬다. 그러나 그토록 원하던 결과였지만 그의 얼굴은 허탈함과 공허함으로 뒤덮힌다.

이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의 빈 라덴 암살 작전이다. 빈 라덴을 사살하는 과정은 특수 제작된 야간투시경으로 촬영됐으며 음향 효과는 최소화돼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진=제로 다크 서티 홈페이지

빈 라덴이 죽은 후 알카에다는 국제 테러조직으로서의 위상이 많이 위축됐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난 줄 알았던 테러 공포는 '현재진행형'이다. 외신들은 타메를란이 어머니와 인터넷의 청년 무슬림 단체 등을 통해 급진 이슬람 사상을 받아들여 미국에 대한 '성전'을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테러가 종교적 이유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동생 조하르 또한 체첸 반군 지도자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등 형과 함께 이슬람 과격 사상에 빠져든 정황이 포착됐다.

그러나 이번 테러가 개인적 증오가 동기인 '자생적 테러'일 가능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은 이들 형제가 미국에 적응하지 못한 울분을 테러에 쏟아 부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슬람 교리가 이들에게 '명분'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용의자 형제의 삼촌인 루슬란 차르니는 "형제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을 증오했다"고 말해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타메를란은 권투시합을 위한 훈련중 인터넷 게시판에 “난 미국인 친구가 한 명도 없고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적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9·11테러 10주년을 앞두고 “가장 우려스러운 테러는 테러단체에 의한 테러가 아니라 ‘외로운 늑대’의 테러’”라고 우려한 바 있다. "증오에 사로잡힌 개인이 저지르는 테러는 더 큰 피해를 주면서도 추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 더 조사해봐야 정확한 이유가 나오겠지만 형제가 테러조직과 연관되지 않았을 경우 이번 보스턴 테러는 오바마 대통령의 3년 전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미첼 실버 전 CIA 요원은 “보스턴 테러 사건은 빈 라덴 사살 이후에도 미국 내에 여전히 다양한 테러 위협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앞으로 행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조잡한 형태로 테러를 저지를 경우 더 탐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9·11 테러를 일으킨 ‘괴수’는 처단됐지만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 공포는 모습을 바꿔 계속되고 있다. 이에 해외 테러조직에 대한 추적과 예방에 치중해온 미국의 테러 정책 방향에도 앞으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빈 라덴은 죽었지만 미국은 이제 '이웃집 미국인'인 제2, 제3의 조하르의 테러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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