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ezia). 베니스(Venice)라고도 발음 되는 이 도시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 하나로 꼽히는 수상도시이다.
‘베네치아’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곤돌라’라는 배일 것이다. 왠지 이 배는 낭만이란 단어와 연상 되고 배를 모는 사공인 곤돌리에는 이탈리아 가곡인 칸초네를 부르며 물위를 미끄러지면 타고 있는 연인은 행복하게 손을 꼭 잡고 멋있는 도시 베네치아를 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인지도 모른다.
그 다음으로 생각나는 건 ‘비발디(Vivaldi)’가 아닐까 싶다. 베네치아 출생의 클래식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는 머리칼이 붉은 색이여서 붉은 머리 사제로도 유명했고 또 특히 우리가 자주 듣는 <사계(Four Seasons)>로 더욱 유명하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또 다른 작곡가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바로 러시아 출신 미국 작곡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미국 국적으로 바꾼 참 특이한 인생을 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와는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일까?
바로 그의 무덤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본 섬을 출발해서 유리 공예로 유명한 무라노(Murano)섬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 미켈레 섬은 섬으로 이루어진 베네치아란 도시의 특성 상 섬 하나를 공동묘지로 사용하고 있었다.
수상버스인 바포레토가 이 섬에 정차 했을 때 베네치아 사람들에겐 가족을 만나러 가는 곳이기에 몇 명의 사람들이 내렸지만 외국인은 아무도 여기서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
산 미켈레 섬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한적하고 아주 평온한 기분이 몰려와 참 좋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에 꽃이 들려 있는 걸 보니 어디엔가 꽃집이 있는 듯 싶었다.
두리번 두리번, 꽃집을 발견하고 빨간 장미 네 송이를 구입했다.
러시아에서는 장례식에 꼭 짝수 꽃을 올린다. 2,4,6송이. 그런데 콘서트같이 축하의 자리에는 홀수 꽃을 가져간다 . 그래서 콘서트 때 좋아하는 연주자에게 짝수의 꽃을 주면 큰 실례가 된다.
이곳엔 내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살고 있다. 그것도 사이좋게 나란히.
바로 20세기 초 세상을 뒤흔든 러시아 발레단 발레뤼스(Ballet Russe)의 창시자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와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는 음악을 좋아했으나 음악가는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일이 러시아 예술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었다.
1906년부터 약 30년간 꾸준히 매년 전 세계에 러시아 음악, 미술, 발레를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 조지 발란신등과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등 예술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예술가들을 발굴했다.
프랑스 파리와 유럽등지에서 생활 한 디아길레프는 임종을 앞두고 자신이 제일 사랑한 도시인 ‘베네치아’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무덤이 이 곳 산 미켈레 섬(San Michele Cemetery)에 있는 것이다.
발레 슈즈들이 놓여 있고 꽃들이 조금씩 놓여있는 디아길레프의 무덤을 보니 "아... 그래도 나 말고도 이 사람을 찾아 는 사람들이 있구나. 외롭진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포시 나도 그에게 장미 두 송이를 놓아 주며 잠시 그와 침묵의 대화를 나누었다.
디아길레프와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스트라빈스키를 찾았다. 다행이 디아길레프 옆에 있다고 알려준 푯말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스트라빈스키 역시 마지막엔 미국 국적으로 살았지만 두번이나 한 결혼으로 인해 생긴 자식들과의 불화와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그가 제일 좋아한 사람 중 하나인 디아길레프 옆에 묻어 주길 바랬다.
역시, 이 두 사람은 죽어서도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나 보다. 스트라빈스키에게도 장미 두 송이를 놓았다.
왠지 모를 번뜩이는 그의 음악에 매료되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우리’ 셋의 우연한 만남에 감사하며 스트라빈스키와도 침묵의 대화를 조금 나누었다.
"안녕,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구나."
짭쪼름한 바다내음이 코를 간지럽힌다. ‘죽은자’의 휴식처이기에 너무나 고요하다.
가끔 갈매기들만이 끼룩거린다. 고요함이란 이런 거구나. 평온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나도 할 수 있다면 그들과 함께 이곳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또 올께요! 보고싶을 거예요!" 라고 그들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베네치아 본 섬으로 돌아가는 바포레토를 탔다. 벌써 시끌시끌하다. 무라노를 출발해서 본 섬으로 가는 배여서 많은 사람들 손에는 봉지가 한 가득식이다. 아마 예쁜 유리 공예품을 샀을 것이다.
본 섬에 가면 또 관광객들에게 치어서 줄지어 다니는 일을 해야 되겠지. ‘산자의 섬’이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다이나믹하고 쾌활한 곳이니까.
그래도 가끔은 산 미켈레 섬에서 느꼈던 고요함, 평온함이 그리울 것이다.
10분정도 지나니 본 섬에 도착했다. 와글와글 와글와글.
"아, 내가 살아있구나!" 바포레토에서 내리자마자 한 생각이다.
쨍쨍한 6월 중순의 햇빛에 녹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관광객들, 베네치아 시민들 사이에 치이며 또 걷기 시작했다. 이 무리들 사이에서 나만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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