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떠난 신림동 고시촌…"직장인들 모여라"

머니투데이 송학주 기자 | 2013.04.27 06:03

1960년대 판자촌 →1970년대 대학가 →1980년대 고시촌→?

서울 관악구 대학동 인근에 위치한 광장서적 옆 광장문구 앞에 철문이 내려져 있다. / 사진=송학주 기자
 올 초 서울 신림동 일대 고시촌의 상징으로 꼽혀온 서점인 '광장서적'이 문을 닫았다. 현재 그 자리에는 1층 문구점과 2층 음식점이 들어섰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1978년 문을 연 '광장서적'은 80년대 이른바 '운동권서적'을 취급하는 사회과학서점으로 유명세를 떨친 후 90년대부터는 고시수험서를 판매하면서 주변 고시촌정보가 한데 모이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이 전총리가 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동생이 대신 서점을 맡아 운영하다 지난해말 1억6000만원 상당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지난 25일 찾은 '광장서적' 자리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고 한 블록 떨어진 건물에 위치한 '광장서적'이 운영하는 '광장문구' 입구는 철문이 굳게 내려져 있었다.

1978년 설립된 신림동 '광장서적' 자리에 문구점과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 사진=송학주 기자
 '광장서적'의 폐점은 신림동 고시촌의 현재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법시험이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됨에 따라 고시생 수가 크게 줄어들어서다. 거주자와 유동인구 감소로 이 지역 부동산경기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거리에서 만난 고시생 김모씨(27)는 "'광장서적'은 그간 책값의 10%를 쿠폰으로 제공했는데 선배들이 합격해 하나둘 떠날 때마다 선물로 주고간 추억이 깃든 곳"이라며 "고시생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고시촌도 옛날 같지 않다"고 말했다.

 ◇1960년대 '판자촌'에서 1980년대 '고시촌'으로
 신림동은 관악구 서남쪽에 위치한 동으로 동북쪽으론 봉천·남현동, 경기 과천시가 있고 서남쪽으론 구로구, 남쪽으론 경기 안양시, 북쪽으론 동작구 신대방동과 접했다. 이름은 관악산 기슭 숲이 무성한 곳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

 63년까지 경기 시흥군에 속하다 서울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신림동으로 바뀌었다. 10년 뒤 관악구 신설로 이에 속하게 됐다. 예전 신림본동에서 13동까지 불리던 것이 현재는 서원동, 신원동, 서림동, 신사동, 신림동, 난향동, 조원동, 대학동, 난곡동, 삼성동, 미성동으로 이뤄져 있다.

1970년대 신림동으로 이전한 서울대학교 정문 모습. / 사진=송학주 기자
 60년대 초 서울 도심 철거민의 집단이주가 추진되면서 봉천동과 신림동 일대에 형성된 판자촌 때문에 '낙후된 곳'이란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70년대 서울대학교가 이전하고 80년대 지하철 2호선 개통, 90년대 주택재개발사업 등을 통해 현재의 신림동이 형성됐다.

 이중 대학동(옛 신림9동)은 서울대가 있는 곳으로 고시촌이라는 독특한 동네가 형성돼 대규모 하숙집, 원룸, 고시원, 고시전문서점 등이 들어서 있다. 특히 '녹두거리'가 유명한데 80년대 동동주를 팔아 가난한 학생들에게 인기를 누린 '녹두집'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지리적으로 고시촌은 '상원서적'이라는 고시전문 서점에서 시작해 3~4블록이 해당된다. 도림천을 사이에 두고 고시학원과 고시전문 독서실 50여개, 서점·복사가게도 수십 곳이 성업 중이다. 또 PC게임방, 노래방, 비디오방, 만화방 등 '방' 문화가 유독 발달했다.

 근처에서 20년간 인쇄·복사점을 해왔다는 이모씨(53)는 "90년 후반까지는 시위관련 전단지 인쇄물과 전공서적 제본이 주종을 이뤘는데 이젠 고시관련 인쇄물이 가장 많다"며 "이마저도 인터넷 강의와 고시생 수가 줄면서 많이 감소했다"고 한탄했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 원룸 단지 모습. 아래쪽으로 '녹두거리'가 형성돼 있다. / 사진=송학주 기자

 ◇전국에서 예비군이 가장 많은 곳에서 '슬럼화' 우려지역으로

 신림동 고시촌은 2009년 로스쿨제도가 시행되면서 변모하기 시작했다. 5만명에 달했던 이 지역 고시생 인구는 지난해 3만5000명으로 줄더니 올해는 2만5000명까지 급감했다. 한때는 예비군에 편성된 젊은 남성만 6만명이 넘었던 지역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500개 넘는 고시원 건물의 공실률은 평균 30∼40%고 심한 고시원은 방 2개 중 1개가 비어있는 상태다. 일부 고시원에는 외국인 노동자와 저소득층이 유입됐다. 게다가 지역 내 퇴폐유흥업소가 늘면서 취객 등 치안이 악화되는 문제까지 겹쳐 '슬럼화'를 걱정하고 있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신림동 고시촌이 자리한 대학동의 인구는 △2009년 2만3420명 △2010년 2만3455명 △2011년 2만3354명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인구가 빠져나가는 만큼 주변 상권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대학동 인근 한 음식점 주인은 "고시생들이 많이 빠져나가서 장사가 잘 안된다"며 "심지어 고시식당의 경우 한 달치 식비를 미리 받고 야반도주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 인근에 위치한 고시식당 옆 전봇대에 원룸, 고시원 매물이 빼곡히 붙어 있다. / 사진=송학주 기자

 T고시독서실 관계자도 "몇 년 전만 해도 꽉 찼던 유명 독서실이었는데 현재 정원 320명에 겨우 절반 정도만 나간 상태"라며 "각종 세금과 전기료 등을 감당하려면 정원의 80% 정도는 차야 유지가 되는데 경영상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털어놓았다. 수익이 줄었지만 오히려 2009년까지 월 15만원하던 독서실 비용을 지금은 12만5000원으로 내렸다.

 고시촌의 명물인 고시원과 원룸도 마찬가지였다. 서림동 인근 J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거래가 없다보니 문을 아예 닫는 중개업소도 늘고 있다"며 "1년 전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45만원하던 원룸도 지금은 보증금 100만원에 35만원으로 낮춰도 찾는 사람이 없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강남순환고속도로 6공구 공사현장 앞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사진=송학주 기자

 ◇고시생 떠난 자리 직장인 잡아라
 최근 신림동 고시촌은 고시식당과 PC방 등이 있던 자리에 커피전문점과 주점이 들어서고 있다. 후줄근한 차림의 고시생 대신 젊은 대학생과 직장인이 가득하다. 전세난 등이 겹치면서 값싼 방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대학동 인근 S공인중개소 관계자는 "2~3년 전부터 값싼 원룸을 구하는 직장인이 늘면서 이 동네도 고시원을 원룸으로 개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혜택이 많고 정부 지원도 받는 고시원으로 인허가를 받아놓고 주방시설과 화장실을 갖춰 불법 개조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로 인해 관악구 내 고시원 수는 2009년 652개에서 2011년말 942개로 급증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바람에 공실률이 20~30%에 달하다보니 원룸주인끼리 경쟁이 과열돼 집값은 더 내려가는 상황이다.

 교통여건 개선도 또하나의 요인이다. 신림동 주민들은 내년 개통 예정인 강남순환고속도로에 거는 기대가 크다. 게다가 신림선 경전철(여의도돥서울대)도 들어설 예정이다.

 대학동에서 30년간 하숙집을 운영한 최모씨(65)는 "요즘은 고시생보다 직장인이 많아 하숙집 운영하기가 수월하다"며 "교통상황만 개선되면 물가가 저렴하고 집값이 싼 신림동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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