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씨날] 닭과 승합차의 도시

머니투데이 세종=우경희 기자 | 2013.04.20 08:17

식당인프라 태부족 세종 초기상권 아이콘은 '닭과 승합차'

편집자주 | '세종씨날'은 균형발전의 아이콘이자 행정의 새 중심지로 자리잡아 가는 세종시의 생생한 소식을 옷감의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전합니다.

"아빠 왜 치킨 안 먹어?"
기획재정부 공무원 K과장은 지난 주말 서울 집에서 모처럼 가족들과 모여 야식을 먹기로 했다. 아이들 성화에 양념치킨을 주문한 K과장. 그러나 막상 도착한 치킨을 보니 손도 대고 싶지 않았다. "입에서 닭 내가 나는 것 같더라"는 K과장이다.

K과장의 지난주 저녁메뉴를 보면 닭 냄새가 싫을 만도 하다. 1~2차를 백숙과 치킨으로 이어간 날도 있을 정도다.

세종청사 공무원들의 야간동선은 거의 비슷하다. 청사 인근에는 음식점이 없다. 차로 20여 분을 나가야 그나마 식당이 있다. '가든'형 음식들로 대부분 메뉴가 보양식이다. 우선 여기서 닭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인삼백숙, 황기백숙, 닭볶음탕으로 타이틀은 다르지만 어쨌든 닭이다.

1차를 마치고 나오면 암흑천지다. 콜택시나 대리운전을 이용해 거주지별로 헤쳐 모인다. 첫마을파, 오송파, 조치원파, 좀 멀리 대전파다. 2차 메뉴도 대부분 닭이다. 대전이나 조치원은 좀 낫지만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첫마을과 오송에는 '치맥(치킨과 맥주)' 말고는 답이 없다.

정부세종청사 입주 만 4개월을 맞은 세종은 도시조성 초기보다 분명 발전했다. 청사와 지나치게 가까워 구설에 올랐던 기획재정부 옆 아파트는 완공단계다. 나름의 스카이라인이 잡혀간다.


그러나 여전히 상가는 태부족이다. 이런 세종 첫마을에서 유난히 성업 중인 것이 치킨집이다. 상가가 밀집한 5~6단지 인근에만 서너 곳의 치킨집이 있다. 1~2단지 쪽 상가를 제패한 식당도 닭갈비집이다. 닭갈비집 인근 치킨집도 저녁이면 빈자리가 없다. 회식 중 막내 공무원들이 달려가 2차를 할 치킨집 자리를 잡는 모습은 일상이다.

상가가 부족한 세종 공무원들의 닭 사랑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음식점이 부족하고 대형음식점이 새로 들어설 자리도 없다. 반면 치킨집은 좁은 공간에도 쉽게 개업할 수 있다. 깨끗하게 튀기기만 하면 맥주에 곁들일 수 있고 가격도 부담 없으니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대형 육계체인 A사 대전지사에 따르면 최근 첫마을 인근 닭 공급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닭은 초기 세종상권의 상징이 됐다.

세종상권 또 하나의 아이콘은 바로 승합차다. 대중교통이 사실상 거의 없는 청사인근 교통 특성 상 승합차가 발이 될 수밖에 없다. 조치원 소재 B중고차 매매상에는 최근 중고승합차 문의가 세 배 가량 늘었다. 대부분 식당들이다. '봉고차'에서 '콤비버스'까지 문의도 다양하다. 인접한 서너 개 업소가 아예 대형버스를 빌려 점심시간마다 손님을 실어 나르는 경우도 있다.

봄이 오니 청사 인근 동학사에 벚꽃이 피면서 저녁자리가 동학사로 몰린다. 차로 25분가량 걸리니 좀 멀지만 일찍 나서면 크게 늦지 않는다. K과장은 오늘도 식당에서 보낸 노란 봉고차에 몸을 싣고 동학사로 향한다. 메뉴는 백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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