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금융그룹 회장의 실종

더벨 성화용 더벨 편집국장  | 2013.04.17 08:00
더벨|이 기사는 04월16일(15:07) 자본시장 미디어 '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금융권은 인사 전쟁 중이다. 자리가 몇 개인지는 모르겠다. 금융지주 회장 한 자리가 바뀌었고, 최소 두 자리는 예정돼 있다. 그 아래 은행장 자리와 증권사 등 관계사 사장 자리는 경우의 수가 복잡하다. 물론, 치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많으니 상당수가 교체될 것이다. 연쇄인사까지 감안하면 올해 바뀌는 금융계 고위직이 수십여 명, 그들에게 목을 매고 있는 간부들이 수백명이다.

이쯤되면 '전쟁'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돼온 정기전이다. 정치권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금융인들 입장에서는 돈과 명예, 차와 비서와 방이 걸린 심각한 이권 싸움이다.

양상은 치열하다. 이미 뛰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인지 모른다.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인사권을 쥔 쪽에 줄을 대려 분주하다. 더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건 박근혜 정부의 인사 스타일 때문이다. '어디'를 공략해야 하는지 헷갈린다는 얘기다. 누군가는 제대로 줄을 타 기대에 부풀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헤드헌팅회사를 기웃거리거나 몇 년을 안 나갔던 동창회에 얼굴을 내밀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앞으로 몇 달이 훌쩍 지나갈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이 싸움이 표면화되기 전부터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왔다. 교체 대상으로 지목된 금융지주 회장들은 몇 달 전부터 이미 회장이 아니었다. 계열사 대표의 임기가 끝났는데 후임 인사를 미루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사를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을 일이지만, 후자를 택하는 게 그나마 안전하다고 본 것이다.

인사를 미룰 정도면 다른 일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금융그룹 차원의 전략적 선택은 남의 일이다. 회장이 하고자 해도 밑에서는 대충 뭉개는 분위기다. 사소한 일마저 그렇다. 조금 과장하자면, 모든 감각기관은 '자리'를 향해서만 열려있다. 위부터 아래까지 마찬가지다. 회장이 나간다고 발표할 날만 기다리다가, 지금은 다음 회장이 누가 되는지만 쳐다보고 있다.


회장과 한 묶음으로 인식돼온 계열 금융회사 대표가 이제는 혼자 살 길을 모색한다. 1년 전 만 해도 회장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안팎에 떠들고 다녔던 그가 이제는 공식 행사 때 눈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각자도생이다. 몇 년간 소외돼 구석에서 숨죽이던 일부 간부들은 비방과 폭로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가능성 있는 후보들을 기웃거리며 정보를 제공하거나 탐지하는 것도 그들의 주요 일과다. 이제 되살아날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이쯤되면 경영 공백이다. 금융지주사를 정점으로, 은행을 비롯한 관련 금융회사 대부분이 그렇다. 구심점을 잃은 금융회사들은 멀뚱히 멈춰 서 있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이 고단하고 심난한 인사전쟁에 금융권이 치르는 비용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건 쉽지 않다. 특히 계량화하기 어려우면서도 심각한 문제는 종사자들의 열패감과 자기비하다.

몇 년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조직의 엔진이 꺼진다. 능력과 충성심보다는 '네트워킹'이 결과를 가름한다. 정권에 가까이 선 인물이 조직의 수장이 되며, 그의 눈에 들어야 출세를 한다. 그런데 그 수장이 정권교체기 전후 6개월 정도는 실종된다. 경영자의 소신은 사라지고 권위의 행방도 묘연하다. 이런 조직이 과연 잘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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