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를 기다리며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 2013.03.22 18:25

[김재동의 틱, 택, 톡]

지난 1974년 제작된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리메이크된단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고 한다. 5월 개봉예정이란 얘길 듣고 꼭 한번 보련다 마음먹어본다.

스콧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보았다. 피츠제랄드에겐 정말 미안하다. 소설도 몰입해 한 호흡에 읽어버리기엔 지루했고 영화도 졸지 않고 보기까진 노력이 필요했다. 헌팅캡이나 중절모 쓴 로버트 레드포드의 맵시가 그나마 위안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참 인상깊었다’는 느낌은 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소설이나 영화가 그 지루한 나레이션속에 내게 남긴 정조(情操) 하나가 있다. 화려하고 부박한 파티의 이미지. “그의 푸른 정원에서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속삭임이 샴페인과 별들 속에서 나방이들처럼 오고갔다...”라고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묘사한 향락의 유혹이 작품을 특정 짓는 이미지로 내게 남아있다. 그 덧없고 치명적인 유혹의 장면이, 어둠속에서 쓸쓸히 만 건너편의 초록불빛을 지켜보는 개츠비의 영상으로 치환될 때의 그 어떤 상실감 -내 스스로는 그 애매모호한 정조를 상실감으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의 매력. 정현종 시인이 번역해 1984년 중판한 나달나달한 책을 다시 집어들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확실히 있다.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 직후 급격한 경제부흥기, 일명 ‘재즈시대’의 미국 뉴욕근교 롱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1922년부터 1929년 사이 주식 수익 증가율이 무려 108퍼센트에 이르렀다는 통계자료도 있다하니 당시의 호경기를 짐작케 한다. 서술자인 닉 캐러웨이도 증권 일을 하기 위해 답답한 중서부를 떠나 동부로 온 인간이다.

이 당시를 두고 피츠제랄드 당대의 또 다른 거장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로스트 제너레이션, '잃어버린 세대'라고 불렀다. 1920년대의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거부하며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대와 다름없었다. 개츠비에서도 데이지가 자기 딸을 두고 한 말은 시대를 정의하는 의미심장함이 있다. “계집애여서 좋아. 그리고 이 애가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되는 게 최상이야. 귀여운 바보가 되는 게”


개츠비앞에 ‘그레이트(위대한)’란 수식을 붙이게 만든 이유도 이런 세태에서 비롯된다. 부박한 몰가치의 시대에 이방인 개츠비는 어쨌거나 자신의 가치(데이지에 대한 사랑)를 확고히 견지해 나간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만(灣) 바로 건너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저택을 장만한 후 그녀가 자기 파티에 흘러들어오기를 5년이나 기다리면서 파티의 불빛을 나방이들한테 나눠주었던 것이다. 데이지를 지키기 위해 교통사고의 가해자를 자처해 끝내 죽음에 이르고 마는 파토스의 주인공. 닉 캐러웨이를 감동시키고 독자들을 감동시킨 개츠비의 매력이다.

최근 사회지도층 성접대 사건으로 세상이 술렁인다. 이와 관련,신임 법무차관이 사퇴했다. 뉴스를 보자면 향락지상주의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있다는 느낌이 든다. 100년 전 피츠제럴드가 묘사한 동부의 풍경 속에 헤밍웨이가 일컬은 잃어버린 세대들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데이지가 표현한 ‘귀여운 바보’들이 되고자 하는 여자들과 그런 여자들에 열광하는 남자들. 영혼을 저당 잡히고 획득한 돈과 권력을 오로지 향락에 투자할 뿐인 사람들.

개츠비의 장례를 앞두고 그 아버지는 어린 시절 개츠비의 결심을 내놓는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담배 피우기나 껌 씹는 걸 삼간다. 이틀에 한번 목욕한다. 매주 유익한 책 이나 잡지 한권을 읽는다. 매주 3달러 저금한다. 부모에게 잘한다.” 개츠비는 적어도 인생에 대한 예의, 신념은 갖고 있던 사람이다.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물론 반복할 수 있고말고요!" 단호한 개츠비의 음성처럼 “이 사회를 정화할 수 없다고요? 물론 정화할 수 있고말고요!”하는 신념의 목소리들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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