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집어등, 용산

박원갑 국민은행 WM사업부 부동산전문위원 | 2013.03.29 10:39

[머니위크]청계광장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디폴트(채무 불이행)는 필자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일부에서 제기된 우려는 기우가 아니라 고통의 현실이 됐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또 한번 무너졌다.

그러다 보니 "일본 롯본기 힐즈의 5배 규모라는 사업자체가 무리한 계획이었다"는 분석에서부터 "좌초될 수 밖에 없는 마천루의 저주"라는 날카로운 비판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일이 다 벌어지고 난 다음 옳고 그름을 재단하는 '후견지명'(後見之明, hindsight)인지도 모른다. 당시로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좌초될 것이라고 예견했던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미빛 청사진이 현실이 될 것으로 믿었다. '서울에도 이젠 외국인에게 내세울 수 있는 기념비적인 빌딩타운이 생기는 구나'라며 즐거운 상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6년간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결국 좌초 위기라는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설사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정상화 된다 하더라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사이 용산의 화려한 미래만을 믿고 빚을 잔뜩 내 베팅했던 투자자들은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다.

땅 한번 파보지 못한 채 부도위기에 몰린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교훈을 던진다. 부동산 개발 청사진에 대한 맹신(盲信)의 위험성이다. 요즘 전국 부동산시장 곳곳에 개발 재료가 널려 있다. 개발 재료 중에는 확실한 것도 있지만 겨우 입안 단계인 것도 많다. 개발이 시작되려면 5년, 심지어 10년 이상 걸려야 하는데도 곧 이뤄질 것처럼 착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땅을 사들인다.

이번 용산국제업무지구도 개발계획이 발표되자 불나방 투자자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투자만 하면 대박이 터질 것 같은 용산은 우리에게 그야말로 '욕망의 집어등(集魚燈)'이었다. 어선의 환한 램프 불빛에 이끌려 몰려드는 오징어처럼 '용산 드림'을 찾아 몰려든 것이다. 용산이 강남을 뛰어넘는 부촌이 될 것이라는 '강남대체론', 용산 부동산 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용산불패론'이 나돌았다.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더니 평당 1억원이 넘는 곳도 넘쳐났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를 안고 욕망의 전차에 탔던 투자자들은 이번 디폴트 사태로 거의 쇼크 상태다. 용산국제업무지구 후광효과를 노리고 급등했던 용산 일대 일부 재개발 지분은 최고점에 비해 40%가량 떨어졌지만 매수세가 없다.

투자는 본질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베팅을 하기 때문에 투기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변적일 수밖에 없는 개발 청사진만을 100% 믿고 투자한다는 게 무모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시장이 혼탁할수록 기본을 지키는 투자를 해야 한다. 수익이 다소 낮더라도 투자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지혜로운 투자법이다. 부동산은 수익성보다는 안전성과 환금성이 먼저다. 고수익을 쫓다가 대박은커녕 쪽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익률과 위험은 정비례하는 것이 원칙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부동산도 공짜 점심은 없다. 그리고 투자의 세계에서 믿을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서글픈 현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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