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 땅 보상비 수십억씩 받았지만…"

머니투데이 송학주 기자 | 2013.02.10 14:53

설날 찾은 동탄신도시, 고향 잃고 재산 다툼에 부모·형제와 등돌려

↑10일 설날 아침에 한 어르신이 홀로 성묘를 가기 위해 눈 싸인 길을 걷고 있다.ⓒ송학주 기자
"여기서 평생을 살았는데 이렇게 명절 분위기가 안 나는 설날은 처음이야. 예전엔 동네마다 윷놀이 대회가 벌어지는 등 설 내내 잔치였는데 지금은 성묘 가는 사람들도 없고 사람 사는 맛이 사라졌어."

10일 오전 일찍 차례를 마치고 성묘를 나섰다. 가던 길에 동탄 2기신도시 건설이 한창인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목리 초입에서 송종수(70·가명) 할아버지를 만나 선산이 위치한 근처 야산까지 태워 드렸다. 전날 내린 눈으로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산길을 홀로 걸어 올라가셨다.

할아버지는 "여기는 신도시로 지정돼 개발되기 전까지는 하루에 버스가 10대도 안 들어오는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다"며 "대대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아 정부로부터 수십억씩 보상받고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고향을 등진 아쉬움을 토로했다.

"땅이 많으니 보상도 많이 받아 행복하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다"며 "보상비 때문에 부모·자식 간에, 형제끼리 등 돌리고 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라며 말문을 닫았다.

↑동탄2기신도시 인근 도로에 설날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다.ⓒ송학주 기자
◇주민 떠난 곳엔 정적만…동탄 원주민들은 '실향민'=동탄2기 신도시로 지정돼 부지조성공사가 한창인 동탄면 목리·신리 일대는 '황량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설날만 되면 집집마다 한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뛰어놀던 곳이었다.

마을 곳곳에는 아직 철거하지 못한 폐건물들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성묘를 가기 위해 산으로 향하던 김모(45)씨는 한숨부터 지었다. "몇년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산소에 가려고 나왔는데 길을 찾을 수가 없다"며 "정부의 강제적인 신도시 개발로 원하지도 않았는데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른 지역 사람들은 동탄에 살았다고 하면 '돈 좀 벌어겠다'며 부러워한다"며 "하지만 실상은 대대로 땅을 물려받은 대지주들이야 그렇지만 많은 원주민들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동탄2기신도시 예정지인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목리 인근 버스 정거장 모습. 실제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송학주 기자
◇재산 다툼에 가족간 '정(情)'은 사라진지 오래=동탄2기 신도시 원주민들은 각종 택지개발 보상금이 풀리면서 속칭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적지 않아 세간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집터를 빼앗기고 유랑민으로 전락한 사람들도 많고 가족이 서로 반목하는 등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얼마 안 되는 보상금에 생계의 터전을 빼앗기고 살길이 막막해진 것이야 그저 안타깝고 말 일이다. 하지만 보상금 문제로 가족이 되돌아가기 어려운 불화의 강을 건넌 경우도 많았다.

이모(71)씨는 지난 추석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추석에 내려온 형제들끼리 치고 박고 싸움질을 했다"며 "보상금 5억이 나왔는데 큰형이 3억을 갖고 1억씩 나눠주겠다고 하자 둘째, 셋째 동생이 반발해 싸움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그 이후로 형제들은 의절한 채 남남으로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탄초등학교 신리분교 모습. 동탄2기신도시 예정지로 조만간 철거될 예정이다.ⓒ송학주 기자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한 할머니가 뼈 있는 말을 던졌다. 그는 "동탄이 신도시로 결정되고 나자 발길을 뚝 끊었던 자식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더만 이제 보상이 끝나고 자식들한테 나눠주자 이번 설명절 때는 찾아오지도 않는다"며 한숨을 지었다.

평생을 지켜온 땅 대신 받은 얼마간의 돈. 그 돈으로 인해 멀어진 가족,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살가운 이웃들을 바라보며 아침에 만난 할아버지의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다"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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