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엔화약세에 침묵하나

머니투데이 강상규 미래연구소M 소장 | 2013.02.08 06:30

[마켓로드]버냉키 FRB의장이 13년전 ‘엔화약세’ 직접 제안

소위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공격적인 통화완화 정책으로 인해 일본의 엔화가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는데도 미국 정부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위원회(FRB)에선 별다른 언급이 나오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엔화의 약세는 토요타와 닛산자동차와 같은 일본기업들의 대미 수출경쟁력을 강화시켜 경쟁사인 미국의 GM이나 포드(Ford) 등 빅3 자동차 업체들이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엔화 약세는 미국의 경쟁기업들 뿐만 아니라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의 기업들과 독일 기업들에도 마찬가지 이유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한국과 독일의 재무장관은 일본 엔화 약세를 불평하는 목소리를 작으나마 간헐적으로 내고 있다.

그러나 유독 미국은 빅3 자동차 업계에서만 엔화 약세에 대한 경고를 보낼 뿐 정부관계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012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은 거의 12%나 증가했고 일본과의 무역적자 규모도 약 580억 달러로 늘어난 상황을 감안하며 미국의 침묵은 더욱더 의아스럽다.

그러나 엔화 약세의 배경에 FRB의장인 버냉키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
로 많지 않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 2000년초 프린스턴 대학 교수이자 FRB 이사로 재직하면서 일련의 통화정책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내용은 바로 금리를 상당기간 유지했음에 불구하고 불황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일본을 향해 과감한 통화정책을 채택, 불황에서 탈출하라는 것이었다.

버냉키의 불황 탈출안은 ▷1단계: 장기국채 매입으로 장기금리 인하 유도, ▷2단계: 제로 단기금리 상당기간 유지, ▷3단계: 3~4%의 인플레이션 용인, ▷4단계: 엔화 약세 추구 순으로 단계적 진행되는데, 이러한 제안은 당시에 보기에 정말 전통적이지 않은(unconventional) 통화정책이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선거에서 승리한 후 ‘아베노믹스’란 강력한 통화완화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지금 아베 총리는 버냉키 의장이 지난 2000년초에 일본을 향해 촉구했던 바로 그 내용을 고스란히 따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화완화를 무제한적으로 진행하고 인플레이션 타겟을 2%로 대폭 상향조정하며, 심지어 정부관료가 공개적으로 엔화 약세를 지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결국 미국 중앙은행장인 버냉키 의장은 자신이 제안한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 뭐라 말 할 수 없는 처지다. 게다가 버냉키 의장 자신도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을 불황에서 건지기 위해 자신의 생각에 따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있다. 다만 마지막 단계인 달러화 약세 추구만은 마지노선으로 남겨 놓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 교수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지난해초 미국 경제가 불황의 터널에서 매우 더딘 회복을 보이자, 버냉키 의장을 향해 왜 자신이 제시한 불황탈출 통화정책을 신속하게 실시하지 않냐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2단계 까지만 적용하며 경제회복을 지켜보던 버냉키 의장은 결국 지난해말 3단계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달러화 대비 유로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어 미국 수출기업들의 유럽지역 수출경쟁력은 강화되고 있다. 교역규모가 가장 큰 중국의 위안화는 엔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일단 강세 기조에는 큰 변동이 없다. 즉 미국은 일본의 엔화 약세로 일방적인 손해를 입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엔화 약세에 그다지 우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게다가 엔화 약세로 인해 일본 경제가 불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소비가 늘면 미국 상품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게 되어 결국 미국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어느 수준까지 엔화 약세를 용인해야 미국에 유리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단 미국이 침묵하는 동안 일본 엔화는 계속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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