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시간 일, 연봉 3천" 파리바게뜨 점주의 눈물

머니투데이 원종태 기자 | 2013.01.31 16:56

동네빵집 500m내 출점금지 가닥… "큰돈 버는 줄 알지만 비슷한 사람 부지기수"

"적게는 1억5000만원에서 2억원을 투자해 파리바게뜨 가맹점으로 장사를 해왔는데 이제 와서 가맹본부가 신규 출점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누굴 믿고 장사를 하란 말입니까?"

2009년부터 서울 구로3동 에이스트윈타워에서 18평짜리 파리바게뜨 매장을 시작한 최성만(42)씨는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동반성장위원회가 제과점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한다는 소식에 이같이 항의했다.

동반성장위는 내달 5일 본 위원회를 열고 제과점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최종 지정하면서 파리바게뜨 같은 대규모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동네빵집 500m 이내'에서 신규 출점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관철시킬 계획이다. 전국 주요 상권마다 동네빵집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동네빵집 500m 거리 제한'이 도입되면 신도시 같은 특수 상권 외에 기존 상권에서는 신규 출점이 불가능할 전망이다.

최 씨는 "본사가 가맹점을 신규 출점시키지 못하고 정체된다면 가맹점을 대상으로 한 각종 지원이 약해지거나 끊길 수밖에 없다"며 "우리도 개인 빵집주인과 똑같은 소상공인인데 왜 우리만 이런 피해를 떠안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하루 17시간 일해 연봉 3000만원"=아파트형공장이 밀집한 지역 특성상 최 씨 부부는 새벽 6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장사를 한다. 새벽부터 낮 12시까지는 부인이, 그 이후 폐점 때까지는 최 씨가 가게를 지킨다.

최 씨 부인은 새벽에 출근하자마자 제빵 기능사를 도와 도너츠와 고로케를 2시간 가까이 튀긴다. 제빵 기술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일은 도와줄 수 없어서다. 최 씨 빵집은 월 평균 1500만원 정도 매출이익을 올린다. 이중 월세로 500만원, 제빵 기능사와 샌드위치 기능사 인건비 400만원을 주고 나면 600만원이 남는다. 빵집은 손님들이 붐빌 때는 잔일이 많기 때문에 혼자 감당이 안 된다. 아르바이트생을 1명씩 교대로 쓰는데 주말 전담 아르바이트생 인건비까지 합치면 매달 300만원이 나간다.

이제 남은 300만원이라도 고스란히 최 씨 부부 몫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리비와 전기료, 수도료 등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최 씨 부부에게는 매달 240만원이 남는다. 부부가 하루 17시간을 일해 연간 2880만원을 버는 셈이다. 연봉 개념으로 나누면 각자 1440만원 꼴이다.

최 씨는 "2009년 개업 당시만해도 월 매출이익이 1800만원을 넘었는데 주변에 하나둘씩 빵집이 생기며 2010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매출이 줄었다"며 "남들은 파리바게뜨 매장을 갖고 있다면 큰 돈을 버는 줄 아는데 가맹점주 모임에 나가보면 나 같은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최 씨는 그나마 건물주가 월세를 올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지난 2009년부터 관악구 봉천동에서 17평짜리 파리바게뜨 매장을 운영하는 김명철씨(가명, 51세)는 지난해부터 월세를 35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올려줬다. 건물주는 임대료가 비싸면 점포를 원상 복귀하고 비워달라고 압박했다.


김 씨도 제빵 기능사와 샌드위치 기능사, 아르바이트 등 인건비를 주고, 월세를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이 많지 않다. 김 씨는 "우리는 주말도 없고, 명절도 없고, 하루종일 매장에만 매달린다"며 "아이들이 꽤 컸지만 최근 3∼4년동안 번듯한 가족 여행 한번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매장에서 일하는데 저녁 식사 시간을 전후해 헬스클럽에서 1시간동안 운동하는 것이 유일한 자기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체력이 딸리면 매장에서 오래 버틸 수 없어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김 씨는 지난해 자신의 매장과 길 하나를 두고 개인 제과점이 들어서는 것을 목격했다. 이 개인 제과점은 개장 몇달 후부터 자리를 잡고 장사가 부쩍 잘됐다. 반면 김 씨 가게는 상대적으로 매출이 줄었다. 하지만 김 씨는 그 개인 제과점을 탓하진 않는다고 했다. 김 씨는 "그 개인 제과점 주인도 나처럼 아침 7시에 출근해 도넛과 고로케를 튀기면서 새벽 1시에 퇴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본사 지원 줄어들텐데..어쩌나"=언뜻 보면 동반성장위의 적합업종 지정은 파리바게뜨 가맹점이 이전처럼 급증하는 것을 막아 가맹점주도 득이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들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수익을 지켜주던 본사의 일부 지원이 끊길 수 있다는 점이다. 팔다 남은 케익 재고를 본사가 되사주거나 본사가 일정금액을 보전해 줘 계절별로 할인행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등의 지원이다. 직접 구입하면 3000만원어치에 달하는 오븐이나 쇼케이스를 무상으로 임대해주거나, 1000만원 상당의 가맹비와 교육비를 면제해주는 것도 가맹점주가 누렸던 혜택이다.

실제로 지난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일 가맹점'에서 500m 이내에서 신규출점을 금지시킨 이후 지난해 연말까지 8개월간 파리바게뜨 신규 출점수는 40개에 그쳤다. 전문가들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2011년 통계를 보면 전국에 동네빵집이 1만1000개에 달하기 때문에 동네빵집 500m 거리제한이 도입되면 사실상 파리바게뜨 신규 출점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매년 자발적으로 가맹점주가 매장을 폐점한 곳에서도 파리바게뜨 재출점이 힘들 전망이다. 이 역시 동네빵집 500m 제한 룰에 걸리기 때문이다. 파리바게뜨에 따르면 연간 폐점 가맹점수는 2011년 76개, 지난해 53개였다. 사실상 동반성장위의 결정은 사업동결이 아니라 사업축소가 되는 셈이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 못해 가맹점을 이전하려고 할 때도 동네빵집 500m 룰에 걸려 재출점이 힘들 수 있는 것도 모순이다.

일부 가맹점주들은 파리바게뜨 사업 축소가 1년에 수차례씩 본사가 가맹점주를 위해 대신 개발해주는 신제품 출시가 가로막힐까 우려한다. 빵은 보기와 달리 유행을 많이 타고 유행기간도 짧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구개발이 뒤따라야한다.

파리바게뜨는 지난해 1000억원이 넘는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200여개 신제품을 개발, 가맹점주들의 영업을 도왔다. 전문가들은 "프랜차이즈 산업은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여서 신규출점이 멈추는 순간 넘어지게 돼 있다"며 "크라운베이커리와 고려당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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