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파리에선 100년 전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콘서트가 있다. 바로 '21세기 러시안 시즌(LES SAISONS RUSSES DU XXIEME SIECLE)' 이다.
100년 전 디아길레프라는 러시아 기획자가 이끌었던 발레단인 발레뤼스는 파리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유럽에서 활동 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부제가 오마쥬 디아길레프의 발레뤼스(HOMMAGE AUX BALLETS RUSSES DE DIAGHILEV) 일지도 모르겠다.
매년 다른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리는데 2012년엔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의 발레곡 <불새(L’Oiseau de Feu, The Firebird)>가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디아길레프는 필자가 대학시절부터 몹시 사모(?)하는 분이어서 파리에서 러시안 시즌이 다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성을 되찾고 보니 이미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있었다.
보통 파리 극장은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 가는데 샹젤리제 극장 웹사이트(http://www.theatrechampselysees.fr/)는 어찌 이리 배려라는 게 없는지 영어 버전이 없다.
그래서 이 극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의 프로그램 찾아보기는 거의 '월리를 찾아라' 수준이긴 하다. 하지만 원하는 공연을 찾으면 티켓부킹부터는 영어가 있기 때문에 조금은 편하게 할수가 있다.
한가지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 극장의 좌석은 고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의 경우 내가 자리를 고르지는 못해도 구입한 티켓이 무대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미리 알수있지만 샹젤리제 극장의 경우는 그것마저도 알려주지않는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오페라 가르니에는 환불이 되지만 이곳은 전혀 환불이 안된다는 점이다.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37유로를 주고 예매한 이번 티켓은 무대의 왼쪽 2층에 있었다. 욕심을 부리자면 멀어도 중간이 좋긴 하지만 그래도 무대를 누비는 불새를 음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불새>는 러시아 동화작가 아파나시예프의 동화를 가지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발레곡이다.
1910년 디아길레프가 의뢰하여 스트라빈스키가 쓴 곡으로 같은 해 6월 G.피에르네 지휘, M.포킨의 안무로 오페라 가르니에(L'Opera Garnier)에서 발레뤼스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야기는 사냥을 나간 이반 왕자가 길을 잃고 마왕 카쉐이가 사는 고성에 들어갔다가 불새의 도움으로 마왕을 죽이고 카쉐이의 포로가 되어 있던 아름다운 왕녀를 구출하여 아내로 맞이한다는 줄거리다.
나중에 작곡가 자신이 모음곡으로 편곡했는데 3가지 버전이 있다. 현재는 주로 2번째 버전이 널리 연주 되고 있다.
이 곡으로 무명이었던 스트라빈스키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고 온 유럽이 주목하는 작곡가로 부상했다. 특히 그 색채적인 관현악법과 리듬의 다양함이 20세기의 음악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뭔가 음침한 음악의 시작은 듣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며 무대 커튼이 언제 열릴까 라는 설레임을 준다.
막이 열리고 금빛 사과가 달려있는 사과나무를 보면 불타는듯한 빨간 옷을 입은 불새가 등장할 시간이 임박했음을 한눈에 알수있다. 아주 가볍고 빠르게 지나가는 불새와의 첫 만남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감마저 들게 한다.
'불새'는 발레 중에서도 가장 동화 같은 발레이기에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고 공연을 보는 동안 모든 걸 잊고 나 자신이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불새'를 보고 나오니 파리의 밤은 깊어있었다. 어디서 보든 멋있는 에펠탑이 여기서도 보인다. 이젠 현실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직도 콘서트 현장의 흥분과 떨림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의 말처럼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 '샹젤리제 극장'은...
이 극장이 자리잡고 있는 몽테뉴 거리(Avenue Montaigne)는 샹젤리제의 프랭클린 디 루즈벨트역 부근에서 뻗어나온 가로수길이다. 이 곳엔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나 니나리치(Ninaricci)같은 명품 브랜드들의 본사가 집중되어있다.
이 길은 알마광장(Place de l'Alma)에서 끝나며, 광장 주변에 샹젤리제극장(Theatre de Champs-Elysees)이 있다. 이 극장은 조각가 부르델과 화가 M.드니가 인테리어를 맡아 1913년에 개관했으며, 같은 해 니진스키가 대본과 안무를 맡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초연된 장소이기도 하다.
◇ 클래식도 즐기고 기부도 하는 <착한 콘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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