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으로]韓, 소통 외치며 왜 '갑''을'이 있나요?

머니투데이 타드 샘플 한국전력 해외사업전략 처장(특별 보좌관) | 2013.01.16 13:51

소비자와 소통 강조하면서 조직 내에선 위계질서 탓에 '불통'

요즘 필자가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가 '언더커버 보스'다. 매회 어느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일주일 동안 변장을 해 안락한 사장실을 떠나 직원들과 함께 근무하며 회사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알게 된다. 결론적으로 일반 직원들의 의견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CEO는 더욱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시각을 얻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 기업을 다니고 있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필자는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CEO뿐 아니라 한국 기업의 모든 근로자들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언더커버 보스'와 같은 프로그램은 어떠한 관계에서 스스로를 더 하위의 입장 또는 '을'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교적 위계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한국의 경쟁 문화 속에서 한국인들은 '갑'이 되거나 '갑'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같이 고군분투한다. 나에게 아랫사람이 존댓말을 하거나 윗사람이 반말을 할 때마다 자신이 '갑'인지 '을'인지 항상 인지하게 된다. 또 내가 '갑'인가 '을'인가에 따라 남들이 나를 얼마나 존중해주는가도 확연히 다르다('갑'이면 많은 존중을, '을'이면 조금 존중하거나 아예 존중하지 않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두가 '갑'이 되거나 '갑'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이해된다. 남으로부터 존중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니 더욱이 공감할 수 있다.

갑·을 관계 및 소통과 관련하여 한국 기업들이 기업문화의 일부분으로 '소통 향상'에 중점을 두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앞서 언급한 한국의 엄격한 문화적 위계질서 때문에 양자간 소통이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을'의 입장에 선 자들은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기를 두려워하거나 꺼려하는 반면 대부분의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은 '을'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아웃라이어-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책에서 한 장 전체를 한국의 위계 문화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기업들, 특히 서비스 분야의 기업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고객 및 이해관계자들과의 양자간 소통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기업 내부에서의 양자간 소통은 미약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비즈니스의 시대에 갑·을 관계를 따지려는 생각은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인 또는 한국 기업과 관계를 맺었을 때 내가 '을'이고 해당 한국인 또는 한국 기업이 '갑'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또한 '갑'과 '을'의 입장에 따라 기대되는 의무나 책임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알지 못 하는 외국 기업들이 불이익에 처할 수도 있다.

아마 모두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을'의 입장에 서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누군가 나를 멸시했던 말투나 태도 또는 의견을 무시했던 기억은 내가 '갑'이 되었을 때 잊혀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회사의 '갑'들이 나를 '을'로 대했는데 이제 나도 '갑'이 됐으니 아랫사람들을 '을'로 대해도 돼'라는 생각을 정당화하는 군대에서와 같은 태도를 버려야 한다.


또한 서로가 직급과 경험에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상호간의 존중은 모든 직원들간에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 반하여 한국 근로자들은 윗사람에게 상당한 존중을 표하지만 아랫사람에게는 그러지 못한다. 그 결과 내부 효율성과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을'의 의견을 묻지 않거나 직무 밖의 하찮은 업무를 시켰을 때에도 마찬가지 결과가 초래된다. 반대로 무능력한 '갑'에게 과분한 정도의 경의를 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지금과 같이 경계가 없는 일터에서 '을'들의 수동적 태도(시키는 대로만 하기'는 전근대적 사고 방식이다. 요즘에는 경력도 많고 외국어 및 해외 경험 등의 능력이 더 우수한 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회사에서 상급자들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직급이나 나이가 다르더라도 모두를 똑같이 존중하고 직원들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유능한 인재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직장 동료 또는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갑·을을 따지고 그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겸손함과 열린 생각과 '존중'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할 것이다. '언더커버 보스'의 CEO들처럼 '갑'이라는 안락함에서 벗어나 상급자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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