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을 넘자]한국인이 중국에서 만든 10대 아동복 브랜드, ‘띵터라이’

머니투데이 따롄(중국)=홍찬선 특파원 | 2013.01.16 06:05

[중국 내수시장 프론티어]<5-2>송영민 사장의 ‘3전4기’의 오뚝이 사업인생

편집자주 | 중국은 한국에게 기회의 땅이다. 한중수교가 맺어진 뒤 20년 동안, 중국의 수출주도 성장전략에서 한국은 발전의 계기를 잡았다. 중국 동부 연안 지역에 자리 잡은 수출기업들에게 중간재와 자본재를 수출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성장단계에 직면해 있다. 바로 내수주도 성장전략이다. 중국은 수출에서 내수로, 양적 성장에서 질적 발전으로 성장발전모델을 전환한다는 목표다. 의지도 강하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와 리커창(李克强) 차기 총리를 쌍두마차로 하는 ‘5세대 리더’는 개혁과 모델전환을 화두로 제시했다. 도시화, 소득분배구조 개선, 지역 균형발전, 내수산업 확대 등이다. 중국 내수는 향후 20년 동안 한국 기업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식품 교육 화장품 의류 SOC 등…. 발 빠르게 이미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해 성과를 내는 한국 기업이 적지 않다. 그들의 성공 사례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한국기업에게 나침반이 될 것이다.

송영민 사장이 맨손으로 중국에서 만든 10대 아동복 브랜드 띵터라이. 사진은 따롄의 중심지에 있는 백화점의 띵터라이 매장.
“중국 사람도 성공하기 어려운 중국에서 중국말도 잘 하지 못하고 중국인과 중국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사람이 비즈니스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중국을 철저히 알고 중국에 뼈를 묵겠다는 각오로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송영민 띵터라이(?特來)아동복 사장은 “한국말을 못하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사업해서 성공한다고 하면 우리는 모두 코웃음 치면서도 정작 중국에서 비즈니스하려는 한국 사람들은 중국에서 사업해서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띵터리아아동복은 송 사장이 2001년,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만든 브랜드. 한국에서 아동복을 만들어 수출하던 송 사장은 1997년 말에 불어닥친 ‘외환위기 파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흑자 도산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아동복을 디자인해서 파는 일에는 자신 있던 그는 부도 후, 인천에서 중국 랴오닝(遼寧)성 따렌(大連)시로 산더미처럼 팔려가는 아동복을 보고 ‘무작정’ 따롄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 “중국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중국 각 지방 기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국 사고방식으로 옷을 만든 것이 착각이었다. ‘내가 만든 옷은 최고이니 한 수 아래인 중국에서는 당연히 팔려야 한다’는 근거 없는 자만으로 가져온 것을 모두 잃고 말았다”(송 사장).

미국으로 도망쳤는데 따롄에서 함께 일하던 중국인 파트너가 찾아왔다. “중국에서 이기면 세계 시장에서도 승리한다”며 다시 시작할 것을 권했다. 이번엔 의류의 중심지인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시작했다. “하루에 4시간만 쪽잠을 자면서 밤새 옷을 만들어 새벽에 리어카에 싣고 가서 팔고 오후에 원단을 끊어 오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6개월 동안 계속했다”(송 사장). 그런 피나는 노력에 감동했는지, 2002년 가을,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아동복 전시회에서 대박이 터졌다. 당시 전시회의 3대 브랜드에 선정돼 주문이 폭주했다.


송영민 띵터라이아동복 사장.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나 할까. 공장을 빌려 옷을 만들었는데 2003년 봄에 사스(SARS, 급성호흡기증후군)이 유행하면서 판매가 뚝 끊겼다. 아무리 좋은 옷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사스가 무서워 매장에 가지 않으니 팔리지 않았던 것.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천재(天災) 때문에 다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송 사장).

2번의 실패로 좌절에 빠져 있을 때 구원의 손길이 따롄에서 왔다. 따롄시 정부가 자금 등을 적극 지원하면서 2005년에 ‘띵터라이(?特來, 특별한 종소리가 온다는 뜻)’가 중국의 아동복 10대 브랜드에 선정됐다. 그동안 중국에 없던 흑백(黑白)을 활용한 디자인이 대 히트를 치면서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짝퉁’이라는 적이 찾아왔다.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절반 가격에 파니 큰 타격을 받았다. 2007년부터는 중국 근로자의 임금도 급등하기 시작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주변에서 피부과 병원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권고가 이어졌다. 중국인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피부 관리의 수요가 증가해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는 것. 띵터라이 아동복의 직접 생산을 중단하고 나이키처럼 브랜드 및 마케팅 관리만 하고 피부과 병원, ‘명동병원’을 2011년 11월, 따롄시의 중심지인 싱하이(星海)광장 인근의 중산(中山)로에 오픈했다.

혈혈단신으로 중국에 온 지 15년. 중국의 아동복 시장에서 ‘3전4기’로 한국인의 근성을 보여줬던 송영민 사장. 따렌시에서 2번째로 정식 허가를 받은 명동병원으로 중국의 의료시장 공략이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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