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초에 1억' 컴퓨터의 역습···15조 주문실수 왜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 2013.01.09 05:11

8일 오후2시 이후 물량 처분 추정···전량 처분땐 약 129억원 손실 예상

#7일 오후 2시께 홍콩의 한 운용사 트레이딩 데스크가 초고속 전용선(DMA)를 통해 코스피200 선물에 대한 매수주문을 냈다. 시장 상황을 봐 가며 소량 주문을 알고리즘 방식으로 컴퓨터에 입력했다.

원칙적으로는 한 번 주문을 내면 접수 신호가 들어온 후 주문이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된다. 하지만 주문 접수 신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컴퓨터는 주문이 나가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같은 주문을 무한대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주문 당 0.03초, 1시간 만에 15조6000억원(12만 계약)의 초유의 매수 주문를 냈다. 컴퓨터의 무한 반복 주문을 막을 수 없었던 트레이더는 전용선을 끊어버리는 극단적 조치로 주문을 중단시켰다.

그렇게 국내 코스피200 선물 시장에는 유례 없는 15조원대 규모의 선물 매수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12만 계약의 매수주문 중 2만5000계약이 체결됐고, 경유 회원사인 KB투자증권은 이튿날인 8일 거래소에 3000억원의 증거금을 납부해야 했다.

◇먹통된 컴퓨터, 전용선 끊을 때까지 '무한 주문'= 주문 전용선으로 불리는 DMA(Direct Market Access)는 트레이딩 데스크와 거래소를 직접 연결해주는 고속 매매 시스템을 말한다. 0.01초만에 수익률이 뒤바뀔 수 있는 환경에서 매매 체결속도를 높이기 위해 등장했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전용선이 부메랑이 됐다.

DMA매매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이뤄진다. 이는 특정 주문처리를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내재화해 사람의 개입 없이 주문이 자동으로 생성되는 방식이다. 이번 주문실수는 일차적으로는 알고리즘 컨트롤에서 발생한 것으로 업계는 추정했다.

한 증권사의 투자공학팀 관계자는 "사람은 일일이 손으로 확인해 주문을 내기 때문에 속도는 느리지만 문제가 생길 경우 즉시 취소가능하다"며 "하지만 시스템 매매는 체결 속도가 워낙 빠르고 자동으로 주문이 들어가 통제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고는 단순한 알고리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매매 알고리즘 입력이 잘못됐다고 해도 중간에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공학 전문가는 "DMA를 통한 주문 시스템에는 일괄취소 기능이 있어 특정 계좌의 주문을 한꺼번에 취소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번 사고는 일괄취소 기능마저 작동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회원사인 KB투자증권의 유효성 확인 기능도 무력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거래소는 DMA를 통해 국내주식이나 파생상품에 투자할 경우 반드시 국내회원사를 경유하며 주문 유효성을 체크하도록 정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효성 체크 기능이 마비돼 고객사가 KB투자증권에 예치한 금액을 초과하는 주문(2만5000계약)이 체결됐다.

또 다른 전문가는 "원래 고객이 주문을 내면 증거금(예치금)에 합당한 수준에서 주문이 나가고 그 이상이면 멈추게 돼 있다"며 "유효성 체크는 증권사 서버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이번에 체크 과정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결국 도미노처럼 '15조원대 선물 주문'이 그대로 이뤄진 것이다.

한편 이날 증시에서 사고를 낸 운용사 측은 물량 대부분을 처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200 선물시장의 거래량은 평소 14만 계약을 크게 웃도는 23만 계약까지 치솟았고, 오후 2시 이후 미결제약정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심상범 대우증권 연구원은 "야간선물 및 주간선물시장에서 미결제약정이 크게 감소했다"며 "이들 물량이 한꺼번에 나오면서 코스피200 지수는 오늘 2.02포인트 하락했으나 코스피200 선물이 2.80포인트 더 큰 폭으로 하락 마감했다"고 설명했다.

손실금액은 이날 코스피200선물의 가중평균 매도단가인 266.99를 기준으로 2만5000계약을 전량 처분했다면 129억원에 이른다.


◇주문속도를 줄여라! 0.01초의 경쟁 = 전용선을 이용한 초고속 DMA 주문은 각국 거래소가 글로벌 시장에서 영리단체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등장했다. 금융공학, 금융IT의 발달로 거래소들은 글로벌 유동성 확보를 위해 너도나도 DMA를 채택했다.

특히 알고리즘에 기반한 고빈도매매(High Frequency Trading)가 증가하자 이를 수용하기 위한 속도 경쟁에 불이 붙었다. 고빈도매매란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단시간에 다수의 호가를 발생시켜 매매를 체결시키는 것이다.

회원사를 경유하는 시스템이지만 국내에서도 2010년 기준 코스피200 선물 옵션 매매의 97.5%인 9011조원이 DMA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DMA에 대한 사전 위험관리나 내부 주문관련 유효성 체크가 미비할 경우 주문 오류로 시스템 위험이 크게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0년 5월 미국 다우지수가 장 마감 직전 1000포인트 가까이 폭락한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사건 이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DMA관련 규제를 강화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시장 및 결제리스크 방지를 위한 DMA관련 거래소 업무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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