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IB, 항구로 돌아오다

더벨 성화용 더벨 편집국장  | 2012.12.11 08:28
더벨|이 기사는 12월10일(13:16) 자본시장 미디어 '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금융투자회사(IB)들이 속속 '항구'로 돌아오고 있다. 비바람은 심해지는데 어망은 텅 비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고기잡이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럴 때는 모진 풍파를 피해 귀항하는 배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IB들은 항구에 머무는 동안 배곯이를 참는 일이 가장 힘들다. 그래서 허기가 찾아오기 전에 나눠먹을 동료의 숫자를 줄이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 '위험 회피'와 '구조조정'. 이 두 개의 무기력하고 살벌한 어휘가 요즘 IB들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됐다. 예외가 없다.

당장 돈이 안되는 조직은 없애는 게 능사다. 길게 보는 건 무의미 하다. 임기가 1, 2년도 안 남았는데 그 이후를 보고 준비하는 게 무슨 말라비틀어진 호기란 말인가. 비용은 쥐어짜는 게 좋다. 불고기 먹던 걸 설렁탕으로 낮추고, 그나마 돈 쓸 일이 생기면 건건이 타서 쓰게 해야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직원들 사기쯤이야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생각할 일이다. 그나마 잘리지 않고 남아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고객관리도 속 편할 때 얘기일 뿐. 일단 내가 살고 나야 고객이 있는 것 아닌가.

한 두 곳의 월급쟁이 선장(CEO)들이 이런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싶으면 대다수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모두들 돛을 접고 항구로 들어온다. 선원을 줄인다. 배급도 함께 줄인다. 궁핍을 참으며 바다만 하릴없이 바라본다.

따지고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전문경영인들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험한 시기를 맞으면 선택의 폭은 제한된다. 남들과 비슷하게 가야 한다. 남들이 쉬면 함께 쉬고, 남들이 자르면 함께 잘라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나중에 책임질 일이 적어진다.

하우스마다 사정이 있고, 그 나름의 고충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IB산업 전체로 보면 이런 '귀항(歸港) 연대'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날이 개고 물길이 보인다 싶으면 또 다시 한 떼로 출항을 하기 때문이다. 대개 허기에 지쳐 헛것이 보일 때쯤 어로(漁撈)가 시작된다. 무리로 움직이는 시장참여자들의 속성이 그렇고, 경영자들의 저렴한 안목이 그렇다.


이 쯤 되면 잔류 선원들의 체력은 바닥이다. 새 선원을 구하느라 애를 먹는다. 보급도 제대로 안 돼 있다. 배는 삐걱댄다. 그러다 정작 몰려 나가는 곳엔 먹을 게 없다. 처음엔 그물에 제법 고기들이 걸려 올라오는 듯 보이지만 호황은 잠깐이다. 결국 이전투구와 출혈경쟁으로 선혈이 낭자해질 뿐이다. 몰려 들어왔다 몰려 나가는 대가다. 수수료는 1bp로 떨어지고, PF에 물리고, 그렇게 지칠 때쯤 다시 비바람이 몰려온다.

이 고단한 악순환을 끊기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어느 한 곳이라도 위기가 왔을 때 늠연히 버티며 새 사업에 투자할만한 용기와 잉여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IB는 위험을 능동적으로 떠안아 이익을 내는 비즈니스다. 위험을 회피해야 하는 커머셜 뱅크(Commercial Bank)와는 전략적 지향이 달라야 한다. IB는 고깃배를 몰고 위험한 항로에 들어서야 그물이나 낚시를 드리울 수 있다. 양식업을 주로 하는 커머셜 뱅크와는 업의 특성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위기를 맞아 잠시 항구로 배를 돌릴 수는 있다. 그러나 IB가 항구에 닻을 내리고 긴 시간 머물게 되면 존재의 이유도 함께 잃게 된다. 그 동안 항구를 드나들며 어찌 어찌 살아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렇게 연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참에 항구에 정박한 IB들에게 아예 업을 포기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묶어 두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존 A.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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