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70+월50'으로 둘이 살기, 9개월의 테크닉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 2012.12.03 12:03

[웰빙에세이] 120만원에 한 달 살기-9 / 1년의 리듬 만들기

120만원에 한 달을 사는 것도 아홉 달째에 들어서니 1년의 리듬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 몇 달은 그달그달 수지를 맞추는데 급급했다.

그 다음 몇 달도 긴장해서 조심조심 지내보니 점점 해볼 만 하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동안 여섯 달 수지를 맞추고, 두 달 적자를 냈다. 다 합치면 1만5000원이 남는다.

사실상 완전 균형이다. 나는 이 성적에 만족한다. 이런 식이라면 1년이 가능하다. 1년 열두 달, 사계절의 리듬이 보인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건 당초 의도한 대로 120만원에 한 달을 사는 '작은 경제'가 지속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귀촌할 때 혹시나 해서 비상금 1000만원을 떼어 놓았다. 내게 남은 마지막 '목돈'이다. 한 달 120만원에 도저히 살 수 없으면 비상금에서 벌충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1000만원이면 한 달에 40만원씩 2년을 보탤 수 있는 돈이다. 비상금으로 그 정도 시간을 번 다음 궁리하면 뭔가 길이 있겠지! 그런데 지금 리듬대로라면 비상금을 헐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돈은 정말 다급한 때만 쓰면 되겠다.

◆월 30만원으로 1년 리듬 맞춘다

한 달 120만원으로 1년을 사는 리듬을 보면 대충 이렇다. 여기엔 70만원을 쓰는 내 역할이 결정적이다. 내 경우 한 달 고정비가 40만 원 정도다. 의료보험 10만원, 상수도-전기-인터넷-휴대폰 15만원, 자동차 주유 10만원, 용돈 5만원. 이 돈은 거의 줄일 수 없는 돈이다. 자동차 기름 값과 용돈을 옥죄면 조금 더 남길 수 있는데 심심찮게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으니 그냥 40만원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남는 돈이 30만원이다. 매달 30만원의 이 여윳돈을 1년의 흐름에 맞춰 활용하는 것이 월 120만원으로 1년 살기의 관건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난방비. 따져보니 1년에 등유 다섯 드럼이 필요할 것 같다. 한 겨울인 12월과 1월, 2월에 매달 한 드럼이 필요하다. 그 앞뒤로 10월과 11월에 한 드럼, 3월과 4월에 한 드럼을 쓴다면 총 다섯 드럼이다. 여름에 쓰는 온수는 조금 남는 기름 정도면 된다. 보일러 등유 한 드럼에 27만원 안팎이니 30만원을 온전히 남길 수 있는 달에 한 드럼씩 넣기로 하자. 실제로 그만큼 돈을 남긴 지난 8월과 10월에 한 드럼씩 넣었다. 이제 세 드럼만 넣으면 된다. 그렇다면 12월과 1월에 각각 한 드럼, 3월에 또 한 드럼을 넣자.

다음은 자동차 보험. 보험료가 60만원인데 5월, 6월, 7월에 20만원씩 나눠 냈다. 이제 2월, 4월, 9월, 11월 네 달이 남았다. 이 때 남는 돈은 명절과 제사에 쓴다. 올해 추석은 9월이었다. 설은 내년 2월인데 이 달엔 어머니 제사도 있다. 설에 40만원, 제사에 20만원을 쓴다면 60만원이 필요하다. 이 비용은 11월과 2월에 30만원씩 충당하면 된다. 정리하면 1월 보일러 기름, 2월 설과 제사, 3월 보일러 기름, 5~7월 자동차 보험, 8월 보일러 기름, 9월 추석, 10월 보일러 기름, 11월 설과 제사 준비, 12월 보일러 기름. 잘 보면 4월 한 달이 빠진다. 이 때에 남는 30만원은 봄날의 보너스다. 5,6,7월에도 보험료 20만원 내고 10만원씩은 남길 수 있으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도대체 이렇게 빡빡하고 아슬아슬해서야 어떻게 마음 놓고 사냐고 묻는 분도 계시겠다. 사실 아슬아슬하다. 아슬아슬한 스릴이 있다. 하지만 스릴도 스릴 나름. 그것이 일상이 되다보니 별로 스릴 같지 않다. 그러니 이제 나는 거꾸로 물어야겠다. 당신은 돈 버는 재미가 좋으신가요? 직장은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까, 연봉이 팍 깎이지 않을까, 승진이나 보직에서 밀리지 않을까, 실적은 채울 수 있을까, 이 몸이 잘 견뎌낼까, 여기저기 이상한데 어디 큰 고장이 난 건 아닐까, 애들은 언제 다 커서 앞가림하나, 늙으면 뭘 어떻게 먹고 사나…. 이런 스릴이 청룡열차처럼 줄줄이 이어져 이제 짜릿한 맛이 뚝 떨어졌나요? 나야 한 달 120만원에 평생 일 없이 먹고 살 수 있게 됐는데 당신은 어떤가요?

◆살림, 몰라도 너무 몰라요


다음은 동생. 동생은 한 달 살림에 50만원을 쓰는 데 그게 조금 부족한 달이 있고 남는 달이 있다. 이런 편차를 조정하는 기술에서 동생은 이미 숙달이 된 듯하다. 50만원이 넘으면 지출을 다음 달로 넘기고, 조금 남으면 평소에 아쉬웠던 것을 사면서 월평균 50만원을 맞추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 50만원을 조금 더 줄였으면 하는 데 동생은 '불가'란다.

나는 속으로 툴툴댄다. 부엌 살림은 어찌 이리 많나 그릇 몇 개, 냄비 몇 개, 수저 몇 벌, 반찬통 몇 개로 팍 줄이면 안 되나? 혼자 있을 땐 간출했는데 둘이 되니 왜 이리 복잡한가? 1+1=2 여야 하는데 1+1이 3도 아니고 4나 5는 되는 것 같다. 먹는 것도 삶고, 찌고, 끓이고, 익히고, 튀기고, 볶고, 저리고, 말리고, 재우고, 삭이고…. 매일매일 자잘하고 번거로운 일이 끝도 없다. 내가 뭐라 하면 동생은 살림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혀를 찬다. 하긴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르지! 원래 귀촌하면 절간처럼 하고 살려 했는데 완전 꽝이다. 우리 집은 여염집이다.

월 초에도 동생에게 조금 남겨보라고 했다가 핀잔만 먹었다. 이달에는 김장이 있어 남는 게 아니라 넘는 쪽이란다. 공연히 말을 꺼내 눈총을 받는다. 동생은 나중에 약간 남길 여유가 생기면 책도 사고, 영화도 보고, CD도 사고, 드라이브도 하잖다. 문화생활! 그래 그것도 괜찮지. 그래서 이건 두 눈 딱 감기로 했다. 동생이 50만원으로 콩을 볶든 메주를 쑤든 신경 끄기로 했다. 나는 그 돈에서 만 원짜리 한 장도 탐하지 않으리라! 그러고 나니 마음 편하다.

◆23년만의 김장

김장하는 날엔 눈발이 날렸다. 시골에 오니 김장도 하게 된다. 돌이켜 보니 집에서 김장한 것이 23년 전이다. 어머니 생전에는 100포기 한 접도 섭섭해 반접을 더하곤 했는데 돌아가신 다음에는 김장하는 일이 없었다. 조금씩 담가 먹고, 얻어먹고, 사먹었다. 동생도 엄두가 나지 않는지 절인 배추를 주문해서 일곱 포기 정도 약식으로 담글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웃에 노련한 '살림이 여왕'들이 계신다. '주부 9단' 한 분이 거들어 줄 테니 김장을 해보란다.

그렇다면 도전! 배추는 이웃에서 큼직한 것 열 포기에 한 포기를 덤으로 얹어 2만원에 샀다. 여기에 지난 9월 초 앞마당 텃밭에 느지막이 심어 놓은 성긴 배추까지 더하니 양이 제법 된다. 무는 또 다른 이웃에게 10개를 그냥 얻는다. 고춧가루는 이웃 농사지을 때 그 밭에 더부살이로 심었다가 따고 말리고 빻은 것이다. 두어 달 햇볕에 내고 저녁에 들이느라 애썼는데 다 말려 빻으니 4kg 가량 된다. 태양초 만드는 게 얼마나 수고스러운지, 그래서 고춧가루 값이 얼마나 금값인지 이번에 제대로 알았다. 소금도 한 달 전에 천일염 한 포대를 들여 놓았다. 마지막으로 읍내 장에 가서 생새우, 갓, 배, 양파, 생강 등등 몇 가지를 더 산다. 김장 마치고 저녁에 뒤풀이 할 돼지고기와 동태도 조금 산다. 마당 수돗가에서 배추 저리고 씻고, 안으로 들여와 무채 썰고 속 넣고…. 나까지 옆에서 보조한다며 종일 수선이다. 이래서 김장 완료. 김치는 이제 1년 걱정을 덜었다.

김장을 하고도 동생은 50만원 한도를 정확하게 지켜낸다. 아마 몇 가지 씀씀이를 12월로 넘겨 둔 것 같다. 나 역시 뜻한 바대로 40만원을 쓰고 30만원을 남긴다. 그래서 11월은 총 90만원 지출에 30만원 흑자다. 이번에 남긴 돈은 내년 2월 설과 제사 때 보태면 된다.

11월에 나는 월 70만원의 1년 리듬을 다지고, 동생은 월 50만원의 자기 영역을 굳혔다. 이로써 '120만원 프로젝트'는 훨씬 단단해진 느낌이다. 그만큼 속이 더 편해졌다. 한 달 120만원 한도 안에서 나와 동생은 완전 자유다. 그렇다면 꼭 하고 싶은 일과 꼭 해야 하는 일만 해야지. 하기 싫은 일과 안 해도 되는 일,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일은 모두 사절이다.

아니 내친 김에 올 겨울부터는 신나는 용돈벌이를 찾아볼까. 그러면 그 돈은 모두 보너스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내가 슬슬 근질근질한가 보다. 하지만 어떤 벌이든 앞으로는 기꺼이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만 할 것이다. 선뜻 내키지 않고, 잘 할 수 없고, 남에게 폐가 되는 일 하려고 내가 내 일 다 던지고 시골에 온 것은 절대 아니니까!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일은 쓸 데 없는 일이고, 일을 위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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