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7일 낮 12시쯤 최씨는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채 서울 청계천로에 있는 한 빌딩으로 들어갔다. 이야기를 나누는 한 무리의 직장인들과 함께 동료인 척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으로 올라갔다. 점심시간이라 사무실 보안게이트도 열려있었다.
최씨는 지문이 묻지 않도록 장갑을 낀 채 점심식사로 자리를 비운 직장인 이모씨의 책상 서랍에서 CMA 증권카드와 명함을 몰래 훔쳐 달아났다.
현금 인출에 앞서 최씨는 알리미 서비스(결제내역 SMS 통보서비스)를 먼저 해지하기로 했다. 지난번 카드절도로 교도소에 복역했을 때 알게 된 '요령'이었다. 카드를 사용한 내역이 주인에게 문자전송이 될 경우 체포되기 쉽다는 것을 배운 것.
최씨는 이튿날 A증권의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알리미 서비스 해지를 시도했으나 상담원이 주민등록번호를 묻자 말을 돌리며 종로지점 전화번호 및 증권카드 사용법만을 묻고 끊었다.
그 다음날 최씨는 A증권의 종로지점으로 전화를 걸어 서비스 해지를 다시 한번 시도했다. 이번에는 직원이 카드번호와 비밀번호만을 물었다. 카드번호를 부른 뒤 최씨는 카드와 함께 훔친 이씨의 명함에 있던 이메일 주소의 숫자부분 4자리를 불렀다. 그러자 운 좋게도 번호가 들어맞았다. 최씨는 알리미 서비스를 해지할 수 있었다.
이후 최씨는 한 번에 7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29차례에 걸쳐 모두 2750만원을 인출해 사용했다. 알리미 서비스가 해지된 사실을 모르는 카드 주인 이씨는 보름간 도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지난 10월 3일 강원도의 한 콘도에서 검거된 최씨는 "그냥 느낌상 불러준 것인데 우연히 한 번에 맞았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이 8개 시중은행과 신용카드사,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문제가 발생한 A증권만이 SMS서비스 해지사실을 고객에게 SMS로 통보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지사실만 통보받았더라도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경찰은 "SMS 통보서비스가 범행에 악용된 사례로 금융기관의 강화된 고객확인 절차가 요구된다"며 "금융계좌 비밀번호는 명함이나 신분증 등으로 쉽게 유추할 수 없도록 별도 지정할 것"을 당부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빈 사무실에 직원인 척 하고 들어가 CMA카드를 훔친 뒤 2750만원을 인출해 쓴 혐의(특가법상 상습절도)로 최모씨(49)를 검거해 11일 구속했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