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청소년 재범·노숙자 축소에 투자 이유는

머니투데이 뉴욕=권성희 특파원 | 2012.10.04 08:00

[증세없는 복지의 길, 사회투자] <4-1> 美 뉴욕주 사회성과연계채권(SIB)

편집자주 |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재정 한계에 부닥친 정부, 요동치며 불안한 자본시장에 한계를 느낀 대형투자자, 빈곤인구의 거대한 고통에 대한 해법을 찾는 자선가. 이들이 한 테이블에서 만나고 있다. '사회투자'라는 테이블이다. '사회투자'는 자본이 혁신을 일으키는 원리를 사회 문제 해소에 적용해 '증세 없는 복지', 투자가 되는 복지의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 등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복지국가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대통령선거 후보들에게도 재정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복지 문제를 해결할 비법이 될 수도 있어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머니투데이는 6회에 거쳐 국내외에서 시작되고 있는 사회투자의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한다.

뉴욕시에서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에 다녀온 청소년은 절반가량이 1년 내에 다시 소년원이나 교도소로 돌아온다. 1년 내 50%에 달하는 청소년 재범률은 뉴욕시의 골칫거리이다.

범죄로 인한 사회적 피해도 적지 않지만 재범을 저지른 청소년은 평생 범죄의 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에서 사회적 부담은 장기적으로 누적된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월스트리트 증권 중개인 출신답게 투자 개념의 금융기법을 동원했다. 사회성과연계채권(SIB: Social Impact Bond)이다.

SIB는 범죄 예방이나 노숙자들의 사회 적응 등 정부가 담당해야 하는 사회 복지 분야에 필요한 자금을 민간에서 조달 받아 사용한 뒤 성과에 따라 수익을 지급하는 금융기법이다.

블룸버그 시장은 지난 8월 라이커스섬 교도소에 수감 중인 16~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과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청소년 행동 학습 경험(ABLE)'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미국에 처음으로 SIB를 도입했다.

골드만삭스가 라이커스섬 교도소에서 청소년 교정 프로그램을 운영할 공공정책 평가기관 MDRC에 향후 4년간 960만달러를 빌려주고 라이커스섬 교도소에서 출소한 청소년의 재범률 하락 정도에 따라 수익을 받는 방식이다.

라이커스섬 교도소에서 출소한 청소년의 재범률이 10% 떨어지면 골드만삭스는 원금 960만달러를 회수하고 재범률이 10%보다 더 떨어지게 되면 최대 210만달러까지 수익을 얻게 된다. 이 때 골드만삭스에 갚아야 할 원금과 수익은 뉴욕시가 예산으로 지급한다.

반면 재범률이 10%만큼 떨어지지 못하면 골드만삭스는 최대 240만달러까지 손해를 보게 된다. 이 때 골드만삭스에 갚아야 하는 돈 720만달러는 블룸버그 시장이 설립한 자선재단인 블룸버그재단이 MDRC에 기부한 돈으로 지급된다.

재범률이 10%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뉴욕시 예산에서 나가는 돈은 없다. 재범률이 10% 이상 떨어져 뉴욕시 예산으로 골드만삭스에 빌린 돈을 갚게 되면 MDRC는 블룸버그재단이 기부한 돈 720만달러를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블룸버그재단의 기부금으로 골드만삭스의 손실액을 한정시킨 것은 기존 SIB와 다른 점이다. 지난 2010년에 가장 먼저 SIB를 도입한 영국은 주로 자선단체에서 자금을 조달 받았고 성과가 목표치에 미달하면 조달 받은 돈 전액을 갚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뉴욕시는 손실액을 한정시키는 방식으로 투자 리스크를 낮춰 민간 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넓힐 수 있었다. 뉴욕시가 SIB에 관심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접근한 쪽도 골드만삭스였다. 알리시아 글렌 골드만삭스 사회투자그룹 대표는 이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이 정도 리스크는 우리가 감내할 수 있으며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우리는 상당한 정도의 투자 수익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뉴욕시 ABLE 프로그램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뒤 "이번 투자로 공공 분야가 민간 분야에서 초기 자금을 조달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입장에서도 SIB는 재정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블룸버그 시장은 SIB로 재정 지출이 줄면 세금이 절약된다며 "SIB는 투자자들에게도 수익의 잠재력이 있지만 시민들과 납세자들이야말로 가장 큰 수혜자"라고 밝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도 범죄나 노숙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에 쓸 예산이 부족해 SIB를 도입하기로 하고 막바지 작업 중이다. 제이 곤잘레스 매사추세츠주 행정 및 재정부 장관은 "지금은 노숙자 쉼터 예산도 줄어야 할 형편이라 범죄와 노숙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에 배정할 예산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며 SIB에 눈을 돌린 이유를 설명했다.

SIB는 2가지 점에서 정부 재정에 긍정적이다. 첫째, 당장 정부 예산이 들어가지 않는다. 일단 복지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비용은 민간 자본을 조달 받아 충당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와 주정부는 2009년 경기 침체 이후 세수 부족으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넬슨 A. 록펠러 정부연구소에 따르면 뉴욕주만 해도 지난 1분기 세수조차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여전히 4년 전보다 1.6% 낮은 상태다.

영국 SIB에 투자한 자선단체 록펠러 재단은 이런 이유로 뉴욕시와 매사추세츠주 외에도 L.A.와 코네티컷주 등 다른 많은 미국 지방정부들이 SIB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둘째, 목표한 성과를 달성했을 때만 정부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매사추세츠주의 곤잘레스 장관은 "프로젝트에 일단 돈을 쓴 뒤 성과가 나오기를 희망하는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SIB의 장점은 성과가 나오면 돈을 지불하고 성과가 없으면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매사추세츠주는 평균 5년 이상 길거리에서 지낸 만성 노숙자를 보호하는데 1인당 연간 3만3000달러, 총 4000만달러가 들어간다. 노숙자 사회적응 프로그램으로 노숙자 숫자가 줄었다면 정부로선 재정지출이 확실히 절약되고 이처럼 성과가 증명된 프로그램에 예산을 배정하면 납세자들의 세금을 좀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

SIB는 성과를 분명히 측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재범 방지나 노숙자 감소를 위한 프로그램에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의 교육 수준 향상이나 건강 증진과 같은 영역으로도 SIB를 확대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지역의 고등학교 졸업 비율이나 특정 인구집단의 재입원율을 기준으로 SIB를 발행할 수 있다.

물론 SIB에도 한계는 있다. 컨설팅회사인 맥킨지는 최근 SIB 연구를 통해 SIB의 구조가 너무 복잡해지면 차라리 정부가 필요한 사회 서비스에 직접 자금을 대는 것이 비용 효율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좀더 근본적으로 정부의 역할까지 시장 만능주의적 발상이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크 로젠먼 유니언 인스티튜트&유니버시티 명예교수는 "시장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을 대체할 정도로 민간 이익을 추구하며 투자를 조장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SIB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이에 대해 린다 깁스 뉴욕시 의료 및 인간 서비스 담당 부시장은 "SIB는 민간 자금으로 공공의 선을 향상시키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정부가 성과를 토대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사회정책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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