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안철수, 한가위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 2012.09.29 05:37

[김재동의 틱, 택, 톡]

“낯선 여행지에서 발견한 오후의 장미를 보는 느낌은 막연한 의구를 채워주기 마련이지만, 장미의 오후를 보기 위해 어떤 곳을 방문한다는 건 그 이상의 열망이 동반되어야 한다.” -체 게바라

한가위다. 이름 붙은 날 이란들 그날이 그날이겠지만 설이랑 한가위만큼은 아직도 민족을 대이동시키며 이름값을 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기세등등한 덕에 한반도에 꿀이라도 묻은 양 극성맞게 달라 들던 태풍이 잠잠하리라는 점. 즐라왓도 에위니아도 꼬리 만 채 힐끔이며 지나칠 것이라니 덕분에 휘영청 보름달을 만끽할 모양이다.

이번 한가위, 달빛만큼이나 풍성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대선정국이야기. 지난 19일 안철수 교수까지 합류함으로써 대권을 두고 솥발형국, 3자 정립(三者鼎立)이 짜여졌다. 팍팍한 살림살이 부실한 상차림이겠지만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이름이 전 대신, 갈비 대신 젓가락질을 부추길만하다.

예상은 했었지만 끝까지 예단은 할 수 없었던 것이 안교수의 출마선언이다. 자의랑 무관하게 호출된 사람이다. 끊임없이 불러냈는데 정작 나올지 말지까지 강제할 순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나왔다.

그는 대선출마선언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합니다.”

선언문이 보여준다. 국민뿐 아니라 그에게도 열망이 있었던 것이다. 돈 많고 명망 있고 세평 ‘착한’ 안철수란 개인이 ‘대권’이란 장미의 오후를 보기위해 굳이 정치판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면 “많은 사람들이 정치라는 험한 곳에 들어가 괜히 만신창이 되지 말라”고 만류도 했던 모양인데 끝내 나선 것이다. 결국 ‘국민의 호출’은 마중물일 뿐, 그 마중물을 맞아 자신 속의 또 다른 열망을 퍼 올리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그는 인터뷰 기사 몇 건 너머, 자신의 책 건너편 멀리서 보호받던 자연인의 안락을 떨치고 시시콜콜 행적을 대중에게 몽땅 드러내야 하는 가시밭길에 접어들었다.


연암 박지원이 〈종북소선자서(鍾北小選自序)에서 원근법을 설명했다. “먼 곳에 있는 물에는 물결이 없고, 먼 곳에 있는 산에는 나무가 없으며, 먼 곳에 있는 사람은 눈이 없다”고. 그 말처럼 멀리 있어 실루엣만으로 충분했던 처지에서 이목구비를 밝히고, 표정을 드러내고 종당에는 잔주름과 땀구멍까지를 낱낱이 공개할 처지가 된 것이다.

실제로 25일 그가 “다리를 건넜고 건넌 다리는 불태웠다” 고 발언했을 때 많은 이들이 생경함을 느꼈을 것이다. 머쓱한 표정과 살짝 어눌한 음색의 순둥이 이미지가 보이기엔 확실히 낯선 결연함이었다. 그런 재미.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길보다는 돌아오지 않는 길을 선택하겠다”던 체 게바라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재미가 있다.

의사에서 혁명가로, 쿠바혁명이 성공한 후엔 정치가로, 그리고 다시 쿠바를 떠나 혁명가의 길로 되돌아간 체 게바라는 스스로 모험가를 자처했다. 의사에서 컴퓨터백신개발자, 사업가, 교수를 거쳐 정치가가 된 안후보도 인생을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다. 현재는 정당정치의 판을 깨는 정치현실의 혁명도 시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안철수 후보가 마침내 땀구멍까지를 드러냈을 때 과연 탁영탁족(濯纓濯足: 물 맑으면 갓끈 씻고 물 탁하면 발을 씻는다는 ‘어부사’의 구절)하는 어부가 될는지, 신목자 필탄관(新沐者 必彈冠: 머리 감은 이는 관을 털어 쓴다. 역시 ‘어부사’ 구절)하는 굴원이 될는지도 궁금하다.

안철수 후보의 등장으로 박근혜 후보도 문재인 후보도 달라졌다. 요지부동이었던 박 후보는 어렵사리 故 박정희대통령 치세를 비판했고 오매불망 후보단일화를 외치던 문 후보 역시 “3자경선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 샐뻔한 양자대결구도가 삼자각축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올 한가위 고향방문은 그래서 제법 시끌법석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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