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의 파도'에 좌초된 극동건설

머니투데이 전병윤 기자 | 2012.09.26 13:30

외환위기·글로벌 금융위기 맞아 번번히 경영난

 자금난을 겪으며 부도 위기에 몰린 극동건설은 65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대표 건설사 중 한 곳이다. 1947년 대영건설로 창립, 1953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극동건설은 1950~1960년대 전후복구사업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대연각 호텔(1967년) 경부고속도로(1969년) 포항종합제철항(1970년) 등 굵직한 건설공사를 맡았고 1970년대 해외 건설 붐을 타며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시장에도 활발히 진출했다. 극동건설은 1986년에는 동서증권을 인수, 금융업까지 진출하며 재계 30위권에 포함되는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맞아 경영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 무리한 금융업 진출이 화근이 됐다. 1998년 동서증권의 유동성 위기로 인해 같은 해 3월 극동건설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경영 정상화를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6년 만인 2003년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그해 극동건설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극동건설은 론스타의 지휘 아래 자산 매각 등으로 재무 상황이 호전된 반면, 회사의 성장력은 훼손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4년 뒤인 2007년 극동건설은 다시 웅진그룹에게 인수됐다. 당시 웅진그룹은 극동건설을 기업가치의 3배 수준인 6000억원에 인수했고 헐값에 사들였던 론스타는 거액의 차익을 거뒀다. 당시 극동건설은 론스타의 '먹튀' 논란에 중심에 섰다.

 웅진그룹은 극동건설 인수후 웅진코웨이를 포함한 계열사와 시너지 증대를 꾀하며 부활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론 실패했다. 인수 이듬해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집값 거품이 빠지며 부동산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 미분양아파트가 속출하는 가운데 극동건설 역시 주택개발사업을 위해 빌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로 다시 경영위기를 맞았다.


 웅진그룹은 연초 알짜 회사인 웅진코웨이를 매각하고 경영난을 겪는 웅진폴리실리콘과 함께 극동건설을 살리는 승부수를 띄었다. 하지만 그룹의 재무사정이 날로 악화되면서 1조원이 넘는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으로도 부실 계열사 정상화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비관론이 커졌다.

 극동건설 총 차입금은 올 6월 말 기준 5527억원으로, 1년내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차입금만 4164억원에 달한다. 우발채무는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1461억원, 대출 4364억원을 포함해 총 5825억원이다. 이중 웅진홀딩스가 3885억원의 자금보충 약정을 섰다.

 자금줄이 마른 극동건설은 적어도 3000억~4000억원 가량의 자금을 수혈받아야 할 만큼 사정이 더욱 악화됐다. 현재 극동건설 부실이 웅진그룹의 전체 위기로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웅진그룹은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던 웅진폴리실리콘을 매물로 내놓은데 이어 극동건설마저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결국 극동건설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란 두 번의 큰 시련을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극동건설은 시공능력평가순위(2012년 기준) 38위인 중견 건설사다. '웅진스타클래스'란 아파트 브랜드로 알려졌다. 극동건설은 지난해와 올 초 '세종시 웅진스타클래스' 1·2차를 성공적으로 분양했으며 다음달 한화건설과 동탄2신도시 공동 분양을 준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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