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노숙자...박원순 해법은 '사회투자기금'

머니투데이 이경숙,최석환 기자 | 2012.09.28 09:55

[증세 없는 복지의 길, 사회투자]<3-1>아시아 지자체 최초,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편집자주 |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재정 한계에 부닥친 정부, 요동치며 불안한 자본시장에 한계를 느낀 대형투자자, 빈곤인구의 거대한 고통에 대한 해법을 찾는 자선가. 이들이 한 테이블에서 만나고 있다. '사회투자'라는 테이블이다. '사회투자'는 자본이 혁신을 일으키는 원리를 사회 문제 해소에 적용해 '증세 없는 복지', 투자가 되는 복지의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 등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복지국가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대통령선거 후보들에게도 재정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복지 문제를 해결할 비법이 될 수도 있어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머니투데이는 6회에 거쳐 국내외에서 시작되고 있는 사회투자의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6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7층에 있는 시장 집무실에서 니콜라스 아자르 SOS그룹 부회장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 안경 쓴 이가 윤영각 삼정KPMG 회장이다.ⓒ서울시

지난 6일 오후 2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외국인 투자ㆍ컨설팅사 대표를 집무실로 불러 도움을 청했다. 윤영각 삼정KPMG 회장, 전 푸르덴셜투자증권 사장인 정진호 미스크(MYSC) 대표가 배석한 자리였다.

"시 재원과 민간 출연으로 사회투자기금을 만들려고 하는데 도와줬으면 합니다."

외국인은 반색했다.

"좋은 말씀입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도 백악관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사회혁신 분야에 민간과 정부 재원을 1 대 1로 매칭한 기금을 조성하고 있어요. 세계적인 투자은행에서도 이에 투자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사회투자기금은 뭐기에, 또 이 사람은 누구기에 박 시장이 도움을 청하는 걸까. 버락 오바마 정부도, 세계적 투자은행도 관심이 많다는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란 뭘까.

◇아시아 지자체 최초의 사회투자기금=박 시장이 만난 사람은 니콜라스 아자르, 프랑스의 그룹SOS 부회장 겸 투자ㆍ컨설팅사 CDI(Le Comptoir de I'Innovation) 대표다. 그룹SOS는 연간 5억5000만 달러, 우리 돈 6140억여 원의 매출을 올리는 사회적기업 그룹이다.

이 자리에 배석한 윤 회장은 회계사·변호사·컨설턴트 등 3000여 명 규모의 삼정KPMG 최고책임자다. 정 사장은 증권사 경영인 출신의 투자전문가다.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 겸 모금가 출신이다. 시장경제와 시민사회의 상징적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들을 모은 키워드는 '사회투자'였다. 사회투자란 전체 사회의 균형 발전과 미래 성장 동력을 이끌어내는 투자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사회 비용을 낮추는 투자 △출산율 높이는 투자 △신성장동력 ·중소기업 육성 등 고용량을 늘리는 투자가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원조는 북유럽과 프랑스 등 유럽선진국이다. 이들 국가에선 정부 정책으로 사회투자를 진행한다. 영미권에선 세계금융위기 후 민간과 정부가 공조를 시작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년부터 민관 매칭형 사회혁신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캐머런 영국 총리가 올해 세계 최초 사회투자은행 '빅소사이어티캐피털(BSC)'을 은행권 휴면예금과 기부금으로 출범시켰다.

서울시가 예정대로 올해 중 기금을 출범시키면 아시아 지자체 중엔 최초의 민관 합동의 사회투자기금이 탄생하게 된다.

◇부채 18.7조 원 서울시의 '증세 없는 복지' 전략=서울시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양극화·고령화·고용 없는 성장 등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 문제를 혁신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지원체계를 지속 가능하게 짜는 것. 서민기업·사회적기업 등 금융 사각지대를 해소할 재원을 지속적으로 마련하는 것.'

양질의 일자리 감소, 자원 부족, 빈곤 같은 고질적 사회 문제는 늘어나고 있지만 늘릴 수 있는 예산은 한정돼 있다. 서울시 올해 예산 21조7829억 원 중 사회복지 예산은 5조1646억 원으로 이미 26%를 차지하고 있다. 6월말 기준으로 서울시의 부채는 3조1761억 원으로 산하기관의 부채까지 합하면 18조7731억 원이 넘는다.

시는 기금을 매칭 조성하는 방식으로 재원 부족의 한계를 넘고자 한다. 2014년까지 일반회계에서 총 1500억 원의 기금을 출연하고, 나머지 500억 원은 기업·금융기관·시민의 기부금을 모을 계획이다.

김의승 시 경제정책과장은 "지자체가 사회투자를 복지 예산으로 지원하면 그 돈은 끝없이 소진되지만 사회투자기금을 통해 투자하면 일부 손실은 있어도 직접 재원을 주는 것보다는 손실이 적다"고 설명했다.

문제 해소책의 마련에도 민간의 참여가 필요하다. 지자체 공무원의 제한된 인력으로 복잡한 사회 문제의 해소책을 만들어 실행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서울시가 사회적 배려 기업뿐 아니라 사회성과연계채권(SIB·Social Impact Bond)에 투자하겠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채권은 사회 문제를 해소하는 혁신적 구조를 만든다는 뜻으로 '사회혁신채권'이라고도 불린다.


권혁소 시 경제진흥실장은 "올해는 시 예산과 민간 기금 조성 실적에 따라 사업을 운영할 것"이라며 "내년엔 사회적기업과 소셜하우징을 본격 지원하고, SIB 사업도 시범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 도출·민간 모금이 과제=문제는 '인식'이다. 일반인은 물론 정책입안자, 행정학자, 복지학자 등 전문가들한테조차 사회 문제 해소에 시장을 동원하는 사회투자전략의 구조는 낯설다. 사회투자는 여러 주체가 참여해 사회적 비용을 낮춰야 성공하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의 인식과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영국 BSC를 탐방한 문진수 사회적금융연구원장은 "BSC 역시 낮은 대중 인식으로 고전하다가 캐머런 총리가 BBC에 출연해 설명한 다음부터 인지도가 급상승했다"며 "아무리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다가서지 못한다면 소리 없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운영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한 서울시의회 의원은 "기금은 효율성보다는 공공성 확보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민간위탁을 결정할 때도 신중해야 한다"며 "기금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의회와 협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형 사회적기업 이로운넷의 원낙연 미디어 담당 이사는 "단일 기관에 대한 민간위탁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미국 지역개발금융기관(CDFI)기금처럼 여러 위탁기관을 선정한 후 해당기관이 펀딩, 혹은 펀드레이징 받은 만큼 매칭해주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팁]김의승 서울시 경제정책과장의 사회투자기금 일문일답

- 지원대상인 사회적 배려기업이란?
"사회적 약자 고용, 청년실업 해소, 자원 재활용, 제3세계 빈곤퇴치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사회적기업·공정무역기업·마을기업·자활공동체가 해당된다."

- 소셜하우징(social housing)도 지원대상인데.
"자투리 땅에 원룸형 주택을 건설해 LH나 SH공사에 매입형 임대주택으로 저소득층에게 제공해 투·융자금과 수익금을 회수할 계획이다."

- 시가 2013년부터 시작한다는 사회성과연계채권(SIB·Social Impact bond)이란 무엇인가.
"정부가 환경, 노인일자리, 노숙자, 학원폭력 등 복지서비스를 민간전문 사업자에게 맡기고 사업에 필요한 자본을 일종의 특수목적채권을 발행해 대기업, 자선재단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제도다. 민간사업자가 해당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시행해 감세 효과가 충분히 나오면 투자자들은 정부로부터 투자원금과 약정이자를 받으며, 사업효과가 없을 때는 단순 기부금으로 처리한다."

- 사회투자기금의 운영 일정은?
"지난 10일 사회투자기금 민간위탁 동의안이 시의회에서 부결됨에 따라 시의회의 지적사항을 보완해 10월에 민간위탁 동의안을 재상정할 계획이다. 10월엔 운용관리 종합계획과 내년 기금재원을 확보하고, 내년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 위탁기관은?
"종교·사회단체 등 외부 비영리법인이 맡을 예정이다. 조만간 민간위탁운영평가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의뢰해 민간위탁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검토한 뒤 7~8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위탁기관을 공개 모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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