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없어도… "삼성 시험보러 오세요"

머니투데이 이창명 기자, 오동희 기자 | 2012.09.17 05:44

[기획]'희망채용, 한국사회를 바꾼다'… 저소득층 취업 지원 '사회 통합' 첫 걸음

"일반 대졸자의 취업길이 좁아지더라도, 기업들이 사회적 역할을 더 늘려갔으면 좋겠습니다."

1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단국공업고등학교에서 삼성 신입채용 직무적성검사(SSAT)를 치르고 나온 응시생들은 '같은 취업 경쟁자'인 '저소득층 취업자'에 대한 기업의 배려에 이같이 대답했다.
(서울=뉴스1) 이명근 기자 = 삼성그룹 신입채용 직무적성검사가 열린 16일 오후 서울 강남 대치동 단대부속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마친 구직자들이 검사장을 나서고 있다. 2012.9.16/뉴스1

이날 SSAT는 10대 그룹이 지난 13일 기초수급자 및 소득이 최저생계비 120% 이하인 차상위계층(이하 저소득층)에 대한 채용을 늘려가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뒤 처음으로 열린 공채 시험이었다.

삼성그룹은 앞서 하반기부터 공채인원의 5%를 저소득층으로, 35%를 지방대 출신으로 선발하는 '함께가는 열린채용'을 발표한 바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민간기업의 채용 할당은 전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학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와 휴학을 반복하고, 돈이 없어 스펙을 쌓기 위해 해외어학연수를 다녀올 염두를 못 냈던 사람들, 졸업 후에는 당장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비싼 학원비를 대가며 취업재수는 꿈도 못 꾸던 저소득층 취업자들에게 희망의 문을 열어주는 기업의 새로운 도전 '희망 채용'이 시작된 것이다.

삼성을 시작으로 올 하반기에는 LG, 롯데, SK, 포스코가 신입사원 공채시 저소득층에 가산점을 부여하거나 별도 채용비율을 설정키로 했고, 그 스타트로 삼성이 이날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시험을 치른 것.

이날 서울 부산 대전 등 전국 69개 고사장에서 5만여명이 치른 SSAT 시험 응시자 중에는 저소득층 취업대상자가 포함돼 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저소득층이라는 이유로 취업 후 주변의 편견 등이 생길 수 있는 것을 사전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인사팀'은 채용장소와 일정 외에는 외부에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채용 시험에 응시한 응시생들 대부분은 저소득층 및 지방대 채용 비율 등 삼성그룹의 채용제도의 변화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시험을 치르고 나온 대학생 홍모씨(27)는 "저소득층 응시생들에게 입사 기회를 늘린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고졸자나 저소득층에게 대기업 입사 기회를 폭넓게 열어준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응시생들도 기업의 사회적 역할 확대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홍씨와 함께 시험에 응시한 이모씨(30)는 저소득층이나 고졸자 채용을 늘리면 일반 대졸자 입사기회가 줄어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삼성은 저소득층 자녀 중 해당 대학총장의 추천을 받아 SSAT를 치른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기존 응시자들과 같이 면접과 건강검진 등을 거친 후 채용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 3급 공채(학력 응시제한 철폐로 대졸사원에 준하는 직급을 일컫는 명칭)로 4500명을 채용할 예정이며, 5%인 약 225명을 저소득층 응시생을 대상으로 해서 뽑는다.

기업들이 저소득층 채용을 확대하려는 것은 열정적이고 진취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스펙'이 약하다는 이유로 대기업 취업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학생들에게 사회 첫발을 내디디는 시작에서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가난의 대물림을 막는 것은 사회 통합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며 "대기업에 다니는 1명의 자녀가 그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중산층의 폭을 두텁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해 대학을 졸업하는 저소득층 청년은 약 7000~8000명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 대기업이 모든 저소득층을 고용할 수는 없지만 이 같은 분위기가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분위기가 이어질 경우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이다.

물론 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다 하는 것은 좋지만 능력위주의 선발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응시생 임모씨(30)는 "저소득층 자녀들에 대한 혜택을 강조한 나머지 능력위주의 선발이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극심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저소득층 채용과 같은 사회적 통합적 운동이 벌어져야 하고, 그 시발점이 '희망 채용'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기업들의 새로운 채용 시도는 단순한 사회적 책임 때문만이 아니라 기존 지방대 출신이나 저소득층 사원 채용 결과에 대한 회사의 긍정적 평가 결과가 반영됐을 것"이라며 "이같은 채용시스템은 기업의 사회기여에 대한 평가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될 것"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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